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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코리안 J리거'로 인터뷰를 할 당시만 해도 '대물'이 될 줄 몰랐던 박지성.아시아 축구를 대표한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박지성이 지난 14일 박지성축구센터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수원 = 임영무 기자 |
[스포츠서울닷컴ㅣ요시자키 에이지 칼럼니스트]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번)이 현역 은퇴를 선언한 지 열흘이 조금 넘었다. 지난 22일과 24일 PSV 에인트호번 선수로 K리그 클래식과 친선 경기를 펼치는 그를 보며 글쓴이는 좀 다른 시각에서 박지성 현역 시절을 살펴보려 한다.
글쓴이는 19세이던 박지성이 교토 퍼플상가에서 뛸 때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것을 비롯해 5번이나 개별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에인트호번과 맨체스터 현지를 찾아가기도 했다. 2010년에 발행한 박지성 자서전 '나를 버리다'의 일본어판 번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박지성과 여러 인연을 맺었다.
2001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글쓴이는 한국의 모 축구 전문지 일본방문기 취재 코디네이터로 인터뷰 현장에 있었다. 도쿄의 한 호텔 카페에서 '최연소 코리안 J리거'를 만난다고 했다. 사실 당시 한국인 선수 가운데 최고였던 가시와 레이솔의 홍명보(45), 황선홍(46) 두 스타 취재를 이미 마친 터라 인터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나타난 '단발머리 소년'이 바로 박지성이었다. 다른 한국 선수와 비교해 떨어지는 카리스마로 당시 그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단 인터뷰를 끝내고 글쓴이가 그에게 던진 "너 몇 살이야? 스무 살? 나도 지금 네 나이 때 한국어 시작했어. 늦은 건 없으니 죽을 각오로 공부해"란 말은 여전히 기억 속에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용했던 그가 훗날 이렇게 대물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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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교토의 3-4-3 포메이션에 적응하며 2002년 월드컵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사진은 지난 2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PSV 에인트호번 코리아투어 수원 블루윙즈와 친선 경기 장면. / 수원월드컵경기장 = 최진석 기자 |
2003년 6월 '월드컵 1주년 논픽션'에서 박지성을 주제로 글을 쓰는 기회를 얻었다. 박지성은 그해 1월 1일, 교토를 일왕배 결승 우승으로 이끌고 유럽의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떠난 뒤였다. 그와 관련해 관계자 위주로 취재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만일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당시 만난 기무라 교토 사장은 박지성 영입 목적에 대해 "용병보다는 일본의 어린 선수와 섞여 경쟁하라는 생각이었다. 그냥 선수 무리 안으로 던져보려 했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박지성은 교토 입단 첫해 일본어 통역 없이 뛰었다. 훗날 일본 국가 대표로 성장한 마쓰이 다이스케(33·주빌로 이와타)와 교토에서 호흡을 맞추며 성장했다. 2001년 명지대를 떠나 J리그 진출 때 교토보다 상위권인 J리그 내 다른 구단의 영입 오퍼가 있었다는데 '만일 교토에 입단하지 않았다면'이란 생각을 해본다.
박지성은 교토 소속이던 2002 한일월드컵을 경험한 뒤 눈에 띄게 성장한 경기력을 보였다. 거스 히딩크(68) 감독의 지도로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측면 공격수로 변신한 뒤 '누구도 못 막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게르트 엥겔스(57) 당시 교토 감독은 "몸이 완전히 커졌다. 오른쪽 사이드에서 상대 몸싸움을 견디며 공을 다룰 수 있었고 근력도 붙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엥겔스 감독이 교토에서 히딩크 감독과 마찬가지로 3-4-3포메이션을 가동한 것도 박지성의 기량을 쌓는데 좋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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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기타큐슈 출신 축구 전문 프리랜서 기자. 오사카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졸업. 주간 사커매거진 한국 소식 코너 담당(11년). 스포츠지 '넘버'에서 칼럼 연재(7년) 최근에는 축구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정치, 북한 사정 등의 글을 쓰기도 한다. 박지성 "나를 버리다", "홍명보의 미라클" 등을 번역, 일본에 출판했다. |
기량이 한층 성장한 2002년 가을, 박지성의 에인트호번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무라 교토 사장은 일본에서 1년 더 뛴 뒤 가라고 반대했다. 당시 박지성 측 관계자를 에인트호번으로 보내 '이적은 없다'는 의사를 전하려 했으나 도리어 에인트호번에 설득당하며 유럽행을 권유받았다. 박지성도 유럽행을 결정하자 기무라 사장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때 일본에 잔류했다면 박지성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박지성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로 떠난 뒤에도 종종 일본을 그리워했다. <다음 편에 계속>
정리 = 김광연 기자
fun3503@sportsseou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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