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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Japan TV] 포르노영화 감독, 할리우드를 정복하다

2009-03-03 11:18
[ing… Japan TV] 포르노영화 감독, 할리우드를 정복하다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 영화가 두 편이나 수상하는, 일본 영화계로서는 놀라운 쾌거를 이루어냈다. 특히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는 한국 언론에서는 수상 사실만을 간단하게 보도했지만 일본에서는 개봉한 지 6개월이 지난 영화임에도 좌석이 없어서 영화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붐이 일고 있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장의사 관련 학교에도 응대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작년 10월 <굿’ 바이: Good & bye>라는 제목으로 단출하게 개봉해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굿’ 바이: Good & bye> 스토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로 첼로 연주자였던 고바야시 다이고(모토기 마사히로 분)는 도쿄에 있는 오케스트라 소속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악단이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된다. 하지만 40대의 첼리스트를 받아주는 악단은 어느 곳에도 없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1천8백만 엔(약 2억8천만원)짜리 첼로를 팔고, 그 돈으로 아내인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일거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그는 여행 가이드를 뽑는다는 곳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는데, 그곳이 공교롭게도 장례식 전문회사였다. 보수가 좋아서 다이고는 장의사(일본에서는 ‘납관사’라고 한다) 일을 시작하게 되지만 아내에게는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다. 다이고는 처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점차 장의사 일에 프라이드를 갖게 되고, 반대했던 아내도 차츰 다이고를 이해하게 되면서 장의사로서 자리를 잡아 나가며, 어린 시절 집을 나갔던 아버지의 시체를 입관하게 되면서 가족의 의미도 깨우쳐 간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다. 우선 서양인들의 눈에는 매우 신기하게 보이는 동양의 장례식 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고, 그것이 높게 평가 받아서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는 장의사가 장인으로 묘사되고 있어 장례문화를 하나의 비즈니스로만 인식하고 있는 서양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준 듯하다.

 


이 영화를 감독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이 일본을 대표하는 에로영화 감독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타키타 감독은 1980년대 일본 성인영화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치한여교사>(1981)로 감독 데뷔를 했다. 그 후에도 <치한전차> 시리즈를 11편까지 만들고 <치한 통근버스>(1985) <치한 보건실>(1984) <치한 택배>(1986) <쾌락 생체실험>(1986) 등의 성인영화로 80년대를 풍미했던 사람이다. 그런 타키타 감독이 성인영화 감독이 아닌 일반영화 감독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1988년 작인 <키무라가의 사람들(木村家の人びと)>을 통해서였다. 돈에 미쳐서 세상을 속이며 이상한 상행위로 매일을 살아가는 한 가족을 모델로 한 이 영화는 평단에서도 관객들에게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에 만들었던 <병원에 가자(病院に行こう)>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에로영화를 졸업하게 된다. 그 후에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수험(お受験)>, <비밀(秘密)>, <음양사(陰陽師)>, <배터리(バッテリー)> 등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일본은 유난히 성인영화 출신의 감독들이 많은데, <가메라> 시리즈 등 SF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카네코 슈스케, <피와 뼈>의 최양일, <쉘 위 댄스>의 스오 마사유키,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미츠, 히트 TV드라마 <파트너(相棒)>의 이즈미 세이지, <벚꽃의 정원>의 나카하라 쥰 등이 모두 에로영화 제작사 ‘니카츠(日活)’ 출신의 감독들이다. 이렇듯 니카츠에서 에로영화를 통해 성장한 감독들이 많은 이유는 성인영화 제작사는 야한 장면만 제대로 나오면 감독에게 일절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영화감독에 따르면 “당시의 로망포르노(에로영화)는 알몸만 나오면 어떤 스토리, 어떤 연출방식이라도 상관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작품에 대해 간섭하지 않아 자신의 작품성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었던 것.





 


니카츠의 로망포르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80년대는 기존의 일본영화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많은 영화감독들이 갈 곳을 잃었던 시기였다. 이제 막 영화계에 입문하고자 했던 감독 지망생들에게 있어서는 눈앞이 막막하던 시기였는데, 이때 그런 젊은 감독들의 인큐베이터가 되어주었던 곳이 에로영화 제작사였다. 그런 포르노영화 제작사에서 수십 편의 포르노영화를 제작했던 감독이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진정 일본답다고나 할까. 영화의 작품성이라는 것이 결국은 감독의 출신성분과는 그다지 상관없다는 이야기고, 그런 것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곳이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이기도 하다.

 


<굿’ 바이: Good & bye>의 수상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영화의 주연 배우가 히로스에 료코라는 점이다. 히로스에 료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을 대표하는 연기자이며 당연히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배우다. 그런 그녀도 최근 일본 내에서는 ‘한물  갔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는데 이번 <굿’ 바이: Good & bye>의 수상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성장하면서 영역을 넓혀가는 일본식 스타 시스템의 전형인데, 그 영역이 국제적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주목된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은 <음양사>를 메가히트시킨 감독이지만 그다지 흥행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 작가주의 감독이고, 그다지 제작비를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 감독이다. 아주 전형적인 일본식 영화 제작 시스템을 이용하고, 가장 일본적인 소재들을 일본인 정서에 맞춰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다. 조금은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식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극장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고, 할리우드에서 개봉한 영화가 몇 년 뒤에 개봉하는 영화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일본에서는 <맘마미아>가 이제야 개봉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현재의 영화 산업은 한국이 일본을 10년 이상은 앞서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수상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아직 아카데미상으로 가는 길은 먼 것 같다. 김상하(프리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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