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가득 매운 관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작은 야구공의 움직임을 쫓는다. 몰입으로 온통 숨죽인 순간, 그 남자의 목소리는 이 ‘찰나’의 순간을 빠르게 기록한다.
“홈~~~~~런!!!”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야구공’을 닮았다. 희고, 깨끗하고, 작고, 다부진 구체가 타자의 방망이에 적중한 후 하늘 높이 솟아오를 때, 푸른 창공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야구공’. 아마도 그의 목소리가 언제나 그 ‘야구공’의 뒤를 쫓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미녀도 아닌, 스타도 아닌 야구와 사랑에 빠져 여전히 뜨거운 가슴앓이 중인 이 남자, 대한민국 넘버원 야구 캐스터 한명재와의 인터뷰로 그의 필드 밖 야구 인생 스토리를 지금 시작한다.
류현진 선수가 지난 22일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 24일만에 등판을 했죠.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선수들은 부상을 입게 되면 위축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부상 후 첫 등판이었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준비를 할지 궁금하고 걱정도 됐습니다. 많은 팬들도 아시겠지만 류현진 선수가 올해로 두 번째 시즌이잖아요? 아무래도 첫 시즌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시즌 전에도 많은 준비를 했고, 초반에 구위(공의 위력)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상당히 잘 될 줄 알았는데, 부상을 당해서 본인도 당황했을 테고, 저희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이 기우더라고요. 24일 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가장 고무적이었습니다.
2. 먼 타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선수들이 이기는 모습을 보면 캐스터 입장에서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국내 프로 야구 중계도 담당하고 있는데요, 승부라는 것이 어느 쪽이 이기면 어느 쪽은 지게 되어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프로 야구를 중계할 때는 승패보다는 오늘 경기에 대한 평가에 포커스를 맞춰 중계를 진행하게 돼요.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중계할 때는 아무래도 류현진, 추신수, 윤석민과 같은 우리 선수들 편에서 중계를 하게 되죠. 그래서 승패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근데, 한번은 류현진 선수가 만루(full base, 공격 팀의 주자가 1루, 2루, 3루에 모두 차 있는 경우) 상황에서 땅볼(타자가 친 볼이 땅 위로 굴러가는 것)이 되고 병살(double play, 2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아웃 되는 플레이)을 딱 잡으니까 카메라 감독님이 스튜디오에서 막 박수를!!! 흥분의 도가니였죠. 물론 그게 중계 오디오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스태프들도 경기를 함께 즐기면서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3.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요, 그들의 경기를 계속 지켜본 입장에서 이들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세 사람 모두 한국인이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의 입장은 좀 달라요. 추신수 선수는 국내에서 고교야구까지만 선수생활을 하고 미국 메이저리그로 갔기 때문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의 잔뼈가 굵은 선수입니다. 즉 미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미국 야구에 최적화 되어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류현진 선수는 2006년부터 10년간을 국내에서 뛰고 갔기 때문에 국내 경험이 많은 선수예요. 윤석민 선수도 국내 경험을 한 다음 해외로 갔기 때문에 오히려 류현진 선수와 비슷할 수 있죠. 하지만 두 선수에게 차이가 나는 건 류현진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만 뛰었고, 윤석민 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뭔가 보여주고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야 하는 입장이라는 거죠.
추신수 선수가 가장 꿈꾸고 있는 게 월드 시리즈 우승이잖아요? 텍사스가 충분한 전력이 되는데, (물론 많은 부상자들이 돌아온다면) 올해가 아니어도 내년이나 내 후년에 꼭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추신수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고, 추신수 본인이 생각할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좀더 이어질 것 같아요.
류현진 선수는 부상만 없다면 해마다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윤석민 선수는 메이저에 빨리 올라와야 되는데, 어쨌든 2년을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올해는 경험을 쌓고 올 하반기나 내년 초쯤에 올라온다면 국내에서 얻었던 성적에는 못하겠지만, 기본적인 성적은 기록을 할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야구와 미국 야구의 약간의 디테일에 차이가 있더라구요. 국내에서 잘 던졌던 투수들, 특히 제구(투수가 마음먹은 대로 공을 던지는 일)가 좋은 투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적은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4. 메이저리그 중계를 굉장히 오래하셨으니 선수들과도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97년부터 메이저리그 중계를 했어요. 메이저리그는 미국에서 펼쳐지지만, 저는 이 중계를 한국에서 하고 있죠. 그래서 이 선수들과 접점을 가질 수 있는 단계가 스프링캠프에 취재 간다거나 올스타전, 월드시리즈 취재를 갈 때 정도인데요, 그때 현장중계를 하게 되면 선수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때 만난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 LA 다저스에서 포수를 보던 ‘마이크 피아자’라는 선수가 있었어요. 그 선수가 원래 유망주가 아니었던 선수인데, 운도 좋고, 기량도 좋아서 당시 LA 다저스의 선발 포수가 됐고, 박찬호 선수랑 호흡을 많이 맞췄어요. 근데 이 선수가 수비형 포수라기보다 공격형 포수라 홈런도 많이 치고 장타력도 좋은 선수이긴 한데, 2루 송구가 별로 안 좋아요. 이 선수가 도루를 워낙 못 잡으니까 박찬호 선수가 안타를 맞으면 항상 2루까지 주는 거예요. 안타 하나 맞으면 실점하고. 그래서 국내 팬들이 되게 싫어했던 선수인데, 2003년에 제가 현장에 갔다가 만나서 잘 못하는 영어지만 2-30분 얘기를 나눴죠. 근데 굉장히 박식하고 똑똑한 친구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모습 등을 보니까 ‘아, 사람을 외모만 갖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작년에는 추신수 선수가 신시네티에서 뛰었는데, 그때는 거포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이 부르스라던가 조이 보토 이런 선수들을 만났는데, 화면에서 보기에는 우락부락하잖아요. 그런데 만나보면 친하게 인사하고, 그 중에 한 두 선수들은 ‘안녕하세요, 안녕’ 이렇게 한국말로 인사하기도 하고 확실히 얼굴이나 인상 갖고 판단할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5. 최고의 야구중계 캐스터가 될 수 있었던 '꿀성대' 유지 비결은 뭔가요?
제가 꿀성대라고요?(하하) 인터뷰할 때마다 받는 가장 난감한 질문이 목소리 관리, 목 관리 어떻게 하냐인데, 안 좋은 건 다 하죠.(웃음) 개인적으로 내 목소리가 좋다라고 느껴본 적은 별로 없는데, 다행히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우선은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는 교수님이 목소리는 대게 유전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찌됐든 시청자들께서 좋아하시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유지를 잘 하려고 하는데, 아침에 메이저리그 하고, 저녁에 프로야구까지하거나 지방에 다녀와서 방송을 해야 할 때는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잘 안 나올 때가 있어요. 팬들도 많이 걱정해주시죠. 그래도 어차피 정해진 방송 양이 있고, 제가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 상태가 안 좋으면 시청자들께 죄송해요. 컨디션 조절을 잘 하는 것 외에는 딱히 별도로 관리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6. 야구장 관중석에 ‘개킹카 한명재’라는 문구가 적힌 플랜카드가 걸린 사건이 유명한데요, 이 별명은 어떻게 얻게 됐나요?
사실 그 당시에 제가 휴가중이었어요. 그날 경기를 선배 아나운서께서 중계를 하셨는데, 관중석에 ‘한명재 개킹카’라고 쓰인 플랜카드가 걸려있는 걸 보고 처음에는 되게 고민하셨다고 해요. 사실 ‘개’라는 접두어가 붙은 단어중에는 안 좋은 말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중계를 하던 PD님이 요즘은 ‘개’라는 접두어가 ‘매우’라는 뜻으로 쓰인다며 ‘매우 킹카’라는 뜻이니 찍어도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카메라에 잡았다고 해요. 근데 그게 정말로 캡쳐도 많이 되고, 인터넷에 회자가 많이 되어서 저도 놀랐죠.
그 플랜카드를 야구 마니아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드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제가 그 당시 보편적인 야구 중계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했던 걸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개킹카’라고 들을 만큼의 미모는 아니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뜻의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로 시작하는 다른 별명보다 낫잖아요.(웃음)
7. 다른 접근을 하셨다고 했는데, 다른 접근이라면 어떤 접근일까요?
저도 처음 중계방송을 배울 때는 선배님들이 하시는대로 했고, 그런 형식의 방송에는 분명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경기를 승패 위주로 접근하게 되죠. 근데 저는 이왕이면 시청자들에게 좀더 스토리를 전달해 주고, 그 스토리에 따라서 팬들이 감흥을 느낄 수 있는 방송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실 기록이나 이런 것보다는 주변 돌아가는 얘기들이나 경기 중계 때는 되도록이면 상황에 맞는 이야기, 승패보다도 경기의 흐름에서 너무 빠지지 않는 스토리 위주로 가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을 시청자들이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되도록이면 뛰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 경기에 대한 이야기, 해설 위원, 감독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중계의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물론 그런 중계들을 다른 분들도 많이 하셨겠지만, 아마 시대적인 흐름이 저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8. 한명재가 있는 MBC 스포츠는 뭔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MBC 스포츠의 힘은 뭔가요?
‘MBC 스포츠’라는 것 자체가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김성주 씨도 그렇고 프로 야구, 프로 축구가 개막하고, 농구, 배구가 한참 인기 있던 시절에 유소년기를 보냈잖아요. 그래서 스포츠를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MBC 스포츠는 프로 야구 뿐만아니라 월드컵도 그렇고 여러 스포츠를 중계하면서 항상 넘버원 스테이션 이미지가 강했던거죠. 그런 것들이 사실은 하루 이틀에 쌓인 게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쌓인 거니까요.
2001년에 ‘MBC 스포츠 플러스’ 채널이 처음 생겼을 때도 ‘저 채널은 뭔가 다를 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시더라고요. 주로 메이저리그를 중계를 했던 부분도 아마 채널 이미지에 도움이 많이 됐을 거예요. 그리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MBC 스포츠의 브랜드, 프로 야구 중계, 2005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큰 국제 대회나 올림픽, 월드컵 등을 MBC가 중계하면서 많은 반사이익을 봤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MBC 스포츠의 가장 큰 장점은 출연자 섭외라고 생각해요. 해설위원 혹은 캐스터를 최고의 조합으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한 것이 아마도 지금 MBC 스포츠를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특정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발굴해내거나 캐스팅했을 때의 채널 파워는 굉장해지거든요. 그게 아마 MBC 스포츠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네요.
☞[한명재 인터뷰②] 맛깔 나는 중계의 정석, 한명재의 “야구는 내 운명” 이어서 보기.
한 명 재
- MBC 스포츠 플러스 아나운서
- 야구 중계 전문 캐스터
- 현재 류현진, 추신수 등 메이저리그 소속 한국 선수들의 경기 중계와 한국 프로 야구 중계를 도맡고 있다.
- MBC 스포츠 플러스 아나운서
- 야구 중계 전문 캐스터
- 현재 류현진, 추신수 등 메이저리그 소속 한국 선수들의 경기 중계와 한국 프로 야구 중계를 도맡고 있다.
iMBC연예 김미영 | 영상 김현성 | 사진 함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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