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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왕의 남자, 채용신 초상의 세계


초상화는 시대상을 엿보는 거울이다. 그 시대의 주요 인물들의 초상을 통해서 현대와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아직 베일에 싸인 구한말 초상화의 거장이 있다. 석지 채용신! 고종의 어진화사였던 채용신을 중심으로 현대화가에 이르기까지 국내 화단을 수놓은 ‘초상의 세계’를 통해 희미해져 가는 한국 ‘초상미술’의 자취를 추적해본다.

전통과 현대초상의 맥을 잇다. 마지막 어진화사, 석지 채용신

전북 도립 미술관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마치 손금 들여다보듯 오랫동안 그림을 살펴보는 사람들. 그 어느 전시보다 진지하다. 오늘 감회가 남다른 관객도 도착했다.



지긋이 액자 속 그림을 응시하는 그는 양천 허씨 가문의 후손 허일욱. 이 전시를 위해, 조상 <허담>선생의 초상화를 세상에 내 놓았다. 기개 넘치는 얼굴, 형형한 눈빛, 깊게 파인 주름은 강직한 성품까지 짐작케 한다. 눈가의 검버섯은 쉰을 넘긴 나이를 보여주고 관복과 손에 든 경서는 그가 문관임을 말해준다.



붓끝으로 대상의 나이는 물론 직업, 성품까지도 표현해내는 화가! 그가 바로 석지 채용신이다.

양반출신의 한국 최초 직업화가이자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사였던 채용신! 1850년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난 그의 대규모 전시가 왜 전북에서 열리는 걸까? 바로 채용신이 본격적인 전업화가로 활동한 무대가 전북이기 때문이다.



무관이었던 채용신은 일사늑약 이후 훌훌 관직을 버리고 집안의 연고지였던 전주로 낙향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채용신이 전북에서 머물던 흔적은 작년 한 지역 일간지에 의해 발견됐다.



채용신은 이 금마산방에서 직업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 와중에 고종의 명으로 두 차례 어진을 그리게 되고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반열에 오른다. 채용신이 어진화사로 발탁된 것은 51세. 굉장히 늦은 나이지만, 이유는 모두 채용신의 능력 자체였다.



낙향 초기, 그는 전북의 우국지사를 화폭에 담는 작업에도 매진한다. 선비의 꼿꼿한 절개를 담으면서도 생생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석지필법.



보는 이의 마음까지 꿰뚫는다는 한국의 초상화는 똑같이 그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채용신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현대화가 김호석은 초상화는 사람의 정신을 그린다는 점에서 전신사조라는 측면이 아주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붓 하나로 외형은 물론 정신과 인품까지 그린다는 전신사조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종이의 뒤편에 물감을 칠해 색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 뒤에서 칠하고 앞에서 보고. 수백 번의 붓질이 필요하다. 붓을 통해 대상과 화가가 혼연일체가 될 때 비로소 초상화는 완성되는 것이다.



석지의 필법은 그 시대 서양화가의 작품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서양화법으로 그린 최초의 어진인 휴버튼 보스의 고종황제상은 입체감이나 부피감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서양화법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부피감이 나타나있지 않으며 왜소하고 위축된 듯 한 느낌을 준다.

반면 채용신이 그린 어진의 얼굴묘사를 보면, 세밀한 붓터치를 겹침으로 표현한 음영법으로 사실적 극대화를 이끌어낸다. 석지법으로 불리는 극세필법이 바로 그 기법이다. 얇은 붓으로 가는 선을 수천 번씩 그어가며 초상화를 완성한 덕에, 피부의 미세한 살결 문양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극세필의 정교함은 조선 유학자 궁인성의 초상에서 절정에 달한다. 터럭 한 올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왕이 아닌 서민까지 그려낸 석지필법은 현대 인물 화가들도 영향을 받았다.



석지의 화법이 완성된 곳은 채석강 도화소. 이곳은 채용신이 1923년 전북 정읍에 설립한 한국 최초 초상화 주문제작 공방이었다. 도화소는 쌀 한말에 1.8원 하던 시절 전신초상 100원이란 가격까지 명시한 광고 전단으로 홍보를 펼쳤다.



도화소에서 왕과 귀족이 아닌 대중의 초상화를 그리며 그의 화풍에도 변화가 왔다. 1910년대 채용신의 특징은 문인화적으로 담백한 느낌과 정면상에 바탕을 두어 학자의 근엄한 정신성을 담아내는데 특징을 많이 줬지만, 이후 전통성에서 근대적인 부분으로 바뀌는 특징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1916년 작 이덕응의 초상은 청렴한 선비의 얼굴 중심 그림. 반면 1928년 작 박해창 초상에선 화려한 배경이 등장한다. 세필로 묘사한 얼굴에도 음영을 주어 마치 실제 얼굴처럼 양감을 살렸다.



또 하나 도화소의 특징은 사진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제작했다는 점이다. 대표작은 매천 황현의 초상. 사진상의 황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책을 들고 있는데, 색이 상대적으로 책이 크다보니 왜소하고 답답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채용신의 그림을 보면 정자관에 창의를 입고 유학자로서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진을 선택적으로 활용한 특징을 볼 수 있다.

사진을 활용하지만 대상의 정체성에 접근해서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초상화를 그려낸 채용신.“만일 실물과 닮지 않을 경우 본인이 책임을 지겠소” 라는 홍보문구를 통해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석지화법의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여성을 초상화의 주체로 등장시킨 점이다. 1914년 운낭자 상을 시작으로 여성을 화폭에 담아온 채용신! 전형적인 대가집 노부인에서 부부의 초상을 함께 그리기도 했다. 이것은 신분을 넘어서고 표현대상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는 우리와 닮은 초상을 그리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닮고 싶은 초상을 그리는 걸까. 초상화의 세계에서 과거의 얼굴을 통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방송정보

이상과 허상에 꽃피다 展 ☎ 063-290-6888
일시 : 2012.04.20~2012.05.28
장소 : 전북도립미술관



iMBC연예 TV속정보 | 화면캡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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