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그를 찾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산 넘고 물 건너 경기도 양평 가장 끄트머리, 20년 전 제 발로
유배지를 찾아가듯 서울에서 가장 먼 이곳에 둥지를 튼 작가,
안창홍을 만나보자.
20년 살던 작업실은 최근 공사를 마쳐 궁궐 같아졌지만,
주변을 온통 물감 범벅으로 만들며 작업하는 방식은 여전하다.
76년부터 시작된 작업의 결과물이 켜켜이
쌓여 있는 보물창고이다.
30여 년 맹렬히 그림만 그리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화가 안창홍.
▶1953년 밀양 출생
▶1989년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2000년 제10회 봉생문화상 전시부문 수상, 2001년 제1회 부일미술대상 수상
▶2009년 제10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
▶26회의 개인전, 100여 회의 초대전 및 그룹전 개최
다양하게 변천해온 그의 초기작은 가족사진의 얼굴을
지워 혈육의 역사를 지우고 엄숙한 단체사진에 붓질을 가해
권력을 조롱하기도 한다. 또 사회적 폭력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는 인간이다.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요란하고 천박한 색채로 도시의
비뚤어진 욕망, 인간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쏟아놓는다.
사랑 속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금지된 욕망과 쾌락을 즐기는 얼굴엔 사악함이 스며 있다.
익명의 얼굴을 갈가리 찢어 우리 사회의 아픔 역사를 담은 <부서진 얼굴>
<봄날은 간다>와 같이 익명의 존재 안에 역사가 새겨 넣은 사진 꼴라주는
요즘 그의 대형 회화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예리하게 칼질한 효과를 내기 위한 방법은 조금 독특하다.
최근작 <베드 카우치> 연작의 모델들은
전부 이렇게 작가의 끈질긴 꼬임에 넘어간 지인들이다.
화가 친구, 킥 복싱하는 직장인, 아르바이트생, 임산부 등..
어렵사리 이들을 섭외해서 옷을 벗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렇게 30여 년 한 길만 파온 안창홍의 진가는
최근 드러나기 시작했다. 올 봄 부산 시립미술관은 지역 출신,
비주류 작가의 회고전을 크게 열었고 이 전시에선 무려
150여 점이 팔려나갔다.
그 여파를 몰아 올여름 서울의 미술관에서도
최근작을 중심으로 한 대형 초대전이 열렸고 대구시도
그에게 이인성 미술상을 수여했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내성적인 소년에게 유일한 놀이는 그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가출, 막노동을 전전하다 고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붓을 잡았다.
그런데 그가 부산의 터전을 접고 89년 서울로 올라온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생계를 위해 열었던 미술학원이 너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작업실에 자리 잡은 거대한 프레스기도 못 말리는 고집의 결과다.
결혼해서 20년을 이렇게 가끔 얼굴 보며 살아가는 부부.
결혼한 지 31년, 지금은 살림살이가 나아졌지만 아내는
긴 시간 미술학원도 하고 공예품도 팔며 생계를 맡아왔다.
예술을 위해 모든 걸 희생시켜온 남편이다.
수술과 항암치료가 이어지고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깊은 자기반성을 했다.
그리고 요즘 그는 마네킹을 이용한 입체 작품에도 푹 빠져 있다.
참혹한 죽음과 에로티즘이 공존하는 '살인의 추억'은
악몽 같은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늘 깨어서 쉼 없이 시도하고 변화하려는 안창홍의 에너지,
그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 안창홍
"아직 못 다 그린 것이 너무나 많거든.
게으름 피울 시간이 없다고. 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에 그게 남들이 보면 넘치는 에너지로 보이겠지만
나도 그릴 때 괴로울 때 많아.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사용하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시간이니까 아까워서
그냥 못 보내는 거지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