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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경, 배우에서 배급사 대표까지 "우연을 운명으로" '고백하지마' [영화人]

배우 류현경은 요즘 자신을 소개할 때 한 가지 직함을 더 붙인다. "배급사 대표입니다." 장편 영화 '고백하지마'로 감독 데뷔를 한 데 이어, 극장 개봉을 위해 직접 배급사 '류네'까지 차렸다. 연기, 연출, 배급을 모두 도맡은 이번 작업은 그에게도 모험이었고, 한국 독립영화 현장에도 드문 케이스다. iMBC연예와 만난 인터뷰에서 류현경은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수많은 우연과 선택들에 대해 차분히 돌아봤다.


이 영화의 시작은 실제 '고백 사건'이었다. 류현경은 "장편 영화 '하나, 둘, 셋, 러브' 촬영이 끝나고 뒤풀이 다음 날, 같이 연기했던 배우 김충길이 저에게 고백을 했다"며 "그게 불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걸 꼭 영화로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둘 사이의 어색한 공기라든지,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방식이라든지, 우리가 연애 상담을 할 때 나오는 모든 리액션들이 너무 흥미롭더라. '이런 걸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같이 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영화 속 초반부, 고백을 둘러싼 두 사람과 주변 인물들의 리액션 장면은 관객들이 가장 크게 웃는 대목이고 실제로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이었다.

"두 사람이 고백을 한 바로 직후에, '친구들이 모여 있는 데 가서 "너 또 고백한 거 아니야?" 이런 얘기가 오가는 장면을 찍어보자'고 바로 얘기했어요. 충길이(극 중 김충길)가 자기 편 들어줄 사람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고, 현경이(극 중 류현경)도 자기 편을 찾아가서 하소연하고, 그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고… 이게 실제로 우리가 사랑 고백이나 연애 상담을 할 때 흔히 볼 법한 모습들이잖아요. 그런 느낌을 살려보자는 생각이었죠."

다만 즉흥성은 촬영 현장에 국한됐다. 이후 몇 달 간의 편집에 엄청난 공을 들이며 완성도를 위해 노력했다고.

"초반 분량은 거의 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로 찍었다. 촬영할 땐 정말 재밌었다. 그런데 후반 작업을 할 때는 너무 힘들었다. 쭉 찍어놓은 것들을 어떻게 교차 편집하면 더 재미있게, 더 리듬감 있게 보일까를 계속 고민해야 하니까. 커트 분량도 많고, 교차 편집도 많아서 후반작업에서 많이 완성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고백 사건'과 그 후폭풍을 다룬다면, 후반부는 '고백 사건' 이후 영화배우 '류현경'이라는 인물이 무대 밖에서 겪는 씁쓸한 순간들이 등장하면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며 더욱 캐릭터에 몰입하게 된다.

"처음 후반부를 구상할 때는, 관객들이 '이게 실제 류현경의 일인가, 아니면 영화 속 류현경인가'를 헷갈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예 했던 것 같아요. 다만 그게 제 실제 다큐 같은 삶을 그대로 드러낸 건 아니고, 제가 '현경'이라는 인물을 또 한 번 연기한 거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제 삶에서 겪었던 씁쓸하고 쓸쓸한 순간들을 모아서 현경이라는 캐릭터에게 준 느낌이랄까요."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극 중 류현경은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례함을 겪는다. 실제 경험을 녹인거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실제로 그렇게까지 무례한 일을 많이 겪은 편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류현경을 모르는 사람들 속에 혼자 놓여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그런 데서 오는 쓸쓸함, 씁쓸함 같은 걸 현경이라는 인물이 한번 겪어봐야, 그 이후 충길과의 재회에도 무게가 생길 것 같다고 생각했죠."

관객들은 이 허구와 현실이 섞인 감정선에 강하게 반응했다.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류현경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기술적인 얘기가 아니었다.

"사실 저는 사운드나 그런 기술적인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지적하실 줄 알았다. 근데 생각보다 다들 감정을 너무 따라가시더라. '결국 현경이 충길이를 좋아하게 되는 거냐', '실제로는 어땠냐', '둘은 진짜로 어떻게 됐냐' 이런 질문이 제일 많았어요. 또 본인 연애 경험을 막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어떤 분은 왜 여자들은 선을 분명하게 긋지 않냐며 진심으로 속상해 하시더라."

영화의 내용에 푹 빠져 캐릭터들에 감정이입되 질문을 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놀랍고 신기했다는 류현경은 "극중 류현경은 충길의 고백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류현경이 계속 웃고 있더라. 짜증도 내면서 웃고 있고… 실제로도 그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재밌었던 거 아닐까. 남자 관객분들이 '저렇게 웃으면 진짜 좋아하는 줄 안다'고 불편해하시기도 했는데, 그 반응이 또 재밌었다."며 한참을 맑게 웃었다.

영화를 본 관객 리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에 대해 질문하니 음악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큰데, 그걸 정확히 짚어주는 리뷰가 좋더라. 마지막에 흐르는 김일두의 '문제없어요' 음악이 쓸쓸함과 이상한 울림을 줬으면 했다. 그 의도를 알아봐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다."

대학 시절부터 연출을 전공하고 뮤직비디오도 찍고 단편영화도 찍어봤던 류현경이었기에 영화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와도 되나" "이걸 과연 극장에 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 했었다고. 그러던 중 서울독립영화제 출품 공모를 발견했단다.

"몇 개월 동안 혼자 편집실에서 계속 의심하고 있으니까, 안 되겠다 싶더라. 마침 서울독립영화제 출품 공모가 떴고 '이걸 세상에 내놔도 되는지'를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보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지원을 했죠. 어떻게 봐주실지가 너무 궁금했다."

혼자만의 고민 끝에 지난 해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섹션에 초청되고 일부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를 갖게 된 류현경은 서울독립영화제 이후 여러 영화제를 돌며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 류현경은 연기자에서 감독, 나아가 배급사 대표라는 새로운 역할을 얻게 됐다.

"사실 배우로 영화에 참여할때는 정해진 일정에 인터뷰를 나가고, 스태프들이 다 준비해준 환경 속에서 배우로 존재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다 겪게 된 거죠. 혼자 극장들을 찾아서 연락드리고, 상영을 설득하고, 개봉 스케줄을 맞추고… 포스터를 직접 싸서 극장에 택배 보내러 가는데, 진짜 너무 설레더라. '내 영화 포스터가 극장에 걸리다니' 하는 설렘.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 혼자서 해야 하는 하나부터 끝까지의 일들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일과 배급사 대표로서의 일은 전혀 다른 영역 같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그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단다.

"예전에는 촬영하고, 후반 작업하고 끝나면 거기까지가 영화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급과 개봉까지 겪어보니까, 그 전체가 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을 만나는 순간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더라. 그래서 배급, 마케팅, 개봉까지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이 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됐다. 동지애가 많이 생겼다."며 극장에 작품이 걸릴때 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동지애를 느끼게 되었음을 알렸다.

개봉을 앞두고 손익 분기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류현경은 "현실적인 목표는 외상값을 갚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촬영 때는 십시일반으로 해서 비용이 막 많이 들진 않았는데, 후반 작업에서 비용이 많이 들었다. 도와주신 분들도 많아서 그게 다 외상값이다. 그걸 갚으려면 그래도 관객 5천 명 정도는 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극장 상황이 워낙 힘들어서, 만 명이면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고마운 분들에게 신세진 외상값이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드러냈다.

향후 연출자로서의 행보도 이미 부분적으로는 정해져 있었다. 그는 현재 또 다른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해 내년 촬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이번처럼 무조건 즉흥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의외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주는 재미를 알게 됐기 때문에, 이런 류의 영화도 계속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내년에 촬영할 장편은 남녀의 연애 연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영화처럼 재미있고, 또 좀 씁쓸하고, 결국엔 감정이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

한국 영화 산업이 전반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고, 특히 여성 배우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가 연기자이자 창작자로서 느끼는 책임도 있다.

"다들 힘든 시기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걸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배우들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만드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계속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

연출과 연기 중 무엇을 더 오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둘 다"라는 답을 내놨다.

"대학교 졸업 작품 찍고, 단편 영화가 여기저기 상영되던 시절에 주변에서 '연출로 더 가보는 게 어떠냐'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는 연기를 평생 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연출은 아예 생각이 없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또 이렇게 영화를 찍어서 세상에 내보내게 됐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연기도 계속 잘하고 싶고,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도 계속 만들어내고 싶다. 둘 다 같은 선상에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

인터뷰의 끝에서, 류현경은 관객들에게 건네고 싶은 한 줄의 '추천사'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 영화는 우연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 안에서 충길이와 현경이 겪는 우연도 그렇고, 영화 밖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고 상영되기까지 이어진 우연도 그렇고. 그런데 그 우연들이 모여서 결국 운명이 된 것 같다. 관객분들도 '운명'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마음으로 극장에 와주셨으면 좋겠다. 혹시 알 수 없지 않나. 극장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운명이 될 수도 있고."

영화 '고백하지마'는 배우 류현경이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배우 김충길의 고백을 받으며 시작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완성된, 류현경 감독의 독립장편 데뷔작으로 12월 17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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