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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 이병헌, 박찬욱과 20년 만의 재회로 이끌어 낸 "연기 종합 선물 세트" [영화人]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에서 구직을 위한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한 구직자 '유만수'를 연기한 이병헌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지회사에 취업하고, 공장 다니면서 치열하게 공부해 방통대 학사학위를 딴 만수는 한때 알콜 문제를 겪은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특수제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평범한 가장이 25년간 헌신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다. ‘실직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거듭 자신을 다독여보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며 어렵게 장만한 집까지 내놓아야 할 처지에 몰린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 ‘만수’는 이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통해 박찬욱 감독과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이병헌은 이번 작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오래 준비해온 기다림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저한테 이번 영화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이미 20 몇 년 전에 박찬욱 감독님과 두 작업을 했지만 그 사이에 늘 감독님과 다시 작업하길 원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 또한 저한테 작품이 있을 때마다 같이 하자고 제안을 주시기도 했는데 여러 사정이 맞지 않았다. 일정도 그렇고, 약간 만날 것 같다가도 못 만나고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15년, 17년 전쯤 미국에서 감독님이 지나가듯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미국에서 만들고 싶은 영화라면서 이 영화를 이야기 했었는데 이번에 한국 영화로 가져와 나와 다시 만나게 되니 이건 운명이지 않나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병헌 연기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정도로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주는 이병헌이다. "영화의 90% 이상이 만수를 따라가는 여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만수라는 인물의 모든 심리와 감정, 표정들을 따라가야 해서 제 감정과 얼굴이 다 담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종합 선물 세트'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길기도 하고 제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지겨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제 연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굉장히 좋아하실 것 같다"며 건치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극 중에서 이병헌의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특히 아내의 불륜 장면 목격을 막기 위해 범모에게 나무 뒤에서 "안 돼"라고 외치는 장면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유명했던 밈과 유사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처음 대본에는 그냥 '안 돼'라고만 돼 있었다.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제가 대본대로 연기하자 옆에 있던 배우들은 다 웃었는데 감독님은 웃지 않으셨다. 그래서 감독님께 '사람들이 이거 '아이리스' 생각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은 그게 뭔지 모르시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저는 '그거 많이 돌아다니는 영상 못 보셨어요?'라고 했는데 끝내 못 봤다고 하셨다. 순간 상황이 진지했지만 그 대사가 너무 익숙해 보여 바꿀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안 돼'였다. 그래서 '안 돼, 잠깐만 안 돼, 여보세요' 이렇게 덧붙여 애드리브로 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이 정도 이야기 했으면 찾아볼만도 한데 감독님은 끝까지 그 장면을 찾아보지 않으셨더라. 베니스에서 토론토로 떠나기 전날, 다 같이 커피숍에 갔을 때 '그게 뭐였냐?'고 물어보셔서 그날에서야 처음으로 영상을 보셨다. 그때 감독님이 그렇게 웃는 걸 처음 봤다. 무려 10분 동안 웃으셨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저는 촬영 내내 아이리스 생각이 나면 안 되니까 최대한 지우려 했다. 사실 지인들이 먼저 그런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과의 각별한 관계가 작품속 캐릭터에도 많이 녹아들었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 캐릭터에 개그 욕심이 많은 이병헌의 성향을 녹여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감독님 말씀은 반 농담 반 진담 같은데 사실 저랑 감독님은 촬영장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대부분이 농담 배틀이었다. 웬만하면 상대방 얘기에는 안 웃어주려고 노력했고, 더 센스 있게 받아치려는 식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없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제가 많이 하는데 감독님은 매번 크게 웃으시면서도 '매번 웃어주는 게 힘들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아마 그런 측면들이 만수 캐릭터에도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겁이 많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우왕좌왕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나와 닮았다. 상대방을 웃기려고 실없는 농담을 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 모습들이 제 안에도 많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반영된 것 같다"며 작품 속 캐릭터에 인간 이병헌의 다양한 실제 모습이 많이 녹여져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병헌은 이번 작업을 통해 박찬욱 감독과 다시 만난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어떤 배우든 박찬욱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저 역시 평소에 친하지만 존경하는 감독과 17년 전 지나가는 얘기로 들었던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돼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에서 아마 제 거의 모든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의 다양한 모습이 다 담겨 있는 영화라 저한테도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고 전했다.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어쩔수없다'는 9월 24일 개봉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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