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랑을 타고난 끼로 손쉽게 인기를 얻은 반짝 스타라 여겼다면 오산이다. 산전수전 공중전 거치며 모난 부분을 다듬었고, 피나는 노력으로 속알맹이를 그득 채웠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도 제 것만 챙기지 않고, 두루 주변을 살펴 미담까지 넘쳐난다. 이렇듯 실력에 인성까지 다 갖춘 별사랑은 대기만성의 법칙에 따라 뿌린 대로 열심히 거둬들이며 나아가는 중이다.
가수 별사랑은 최근 MBC ON 음악 예능 프로그램 '트롯챔피언' 녹화장에서 '너뿐야' 무대 녹화를 마친 직후 iMBC연예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쉴틈 없는 일정 강행군 속에서도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말문을 연 별사랑.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선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밝힌 그다.
별사랑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너뿐야'로 '트롯챔피언' 무대에 오르니 정말 즐거웠다. 이곳은 고향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내 뿌리는 트로트 가수이기에 항상 친정에 온 기분을 느끼며 기운을 얻는다"며 "'너뿐야'의 텐션도 굉장히 높다. 사실 내 곡 중 가장 하이텐션의 곡이고, 처음 시도하는 분위기의 노래이기도 하다. 나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꼭 불러보고 싶은 텐션의 곡이라 욕심을 내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 별사탕들에게 바치는 곡이기도 하다. 아이돌 가수들의 팬송 개념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첫 도전에 팬송이니 말이다"라며 "2024년 한 해 동안 팬분들께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크게 한걸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물해 주신 여러분들께 보답하고 싶었다. 가수니까 본업으로 보답하고자 마음먹고 즐겁게 부르는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별사랑은 '너뿐야'와 함께 발매한 타이틀곡 '한뼘인생'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너뿐야'가 화끈한 댄스와 유쾌한 리듬의 곡이라면 '한뼘인생'은 별사랑의 짙고 감성 넘치는 보컬 매력이 묻어나는 진중한 노래다. '한뼘인생'에 대해 그는 "7~8년 전에 받은 곡이다. 당시엔 어머니께서 암 투병 중이셨다. 스스로 감정이 많이 흔들릴 때라 이 곡을 오롯이 불러내지 못했다. 부르다 멈춰 울고, 부르다 멈춰 울고 반복하다가 품에 안아둔 곡"이라고 비화를 밝혔다.
이어 "작곡가 선생님께 '이 곡을 언젠가 어머니께 꼭 선물하고 싶으니 아껴달라'고 부탁드렸고 8년이 흘러 나에게 돌아왔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괜찮아졌고, 내 나이도 들고 실력도 늘어 내 것이 되었다. 온전히 지금의 별사랑 스타일로 불러낼 수 있겠더라. 어머니께서 '노래 참 좋다'고 문자를 주셨다. 표현이 서툰 분이신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며 "그림 같은 가사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내자는 내용의 가사니 꼭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뼘인생'과 '너뿐야'는 언제 들으면 좋을 노래일지, 주인공 별사랑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한뼘인생'은 팬들께서 새벽 금지송으로 정해주셨다. 워낙 깊은 이야기라 새벽에 센치한 감성으로 들으면 힘들 정도라고 하시더라. 디너쇼에서 꼭 부르고 싶은 그런 진중한 곡이다. 또 20대 별사랑과 30대 별사랑이 불러 다른 감상을 느꼈듯, 나이가 들어가며 한 번씩 꺼내 불러보고 들어보면 색다를 곡"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너뿐야'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싶으실 때 들어달라. 퇴근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으시면 아주 좋을 것"이라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들으면 상대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일 거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트로트 사랑이 묻어난다. 혹자는 별사랑이 날 때부터 타고난 트로트 가수일 거라 생각하지만, 반전의 이력이 있다. 그는 과거 록밴드에 심취해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목청껏 노래했다. 별사랑은 "10년을 모던 스타일 락밴드를 추구하며 노래했다. 인디 음악도 사랑했고, 자연스럽게 건반에 기타도 치고 드럼도 배워 연습했다. 어쿠스틱 스타일 앨범도 냈었고, 일본과 필리핀을 오가며 활동도 했었다. 비록 락 음악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양분이 됐던 시간들이다. 드로트로 다양한 스타일로 나뉘는데 당시의 도전들이 뿌리가 되어 두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별사랑의 유튜브 채널 '별사랑TV' 인기 동영상에는 격렬하게 드럼을 두들기며 노래하는 커버 영상들이 즐비하다. 통기타를 둘러매고 잔잔한 옛곡들을 구성지게 뽑아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코드를 익힌 가수, 악기를 다루는 가수. 천상 딴따라가 따로 없다. 그는 "장르만 다를 뿐 음악 향한 열정은 한결이었다. 뭘 하더라도 음악으로 먹고살 팔자였나 보다. 락 밴드 음악을 주로 하다가 현실적으로 성공을 꿈꾸며 트로트에 도전했다. 애초에 이 장르에 대한 편견도 없었다"고 밝혔다.
별사랑은 무명의 설움깨나 맛봤기에 고생의 질량에 따라 결과물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지독하지만 달콤한 법칙을 깨우친 상태로 트로트에 뛰어들었다. 상당한 난도의 음악 장르이기에 허투루 얕잡아 보지 않았고, 작심하며 배웠다. 그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바로 트로트다. 듣는 이들도 그렇겠지만 부르는 입장에서도 매력이 엄청난 어려운 장르더라. 절대 쉽게 보지 않았다. 악보만 쫓는다고 뚝딱 완성되는 음악이 아닌, 한과 그 안에 감성, 흔히들 말하는 '뽕끼'로 적절히 완급 조절을 해야 하는 아주 어렵고 재밌는 음악"이라고 자부했다.
이어 "쉽게 완성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수백 번 부르고 비교하고 고쳐가며 연습했다. 음악이 아닌 음'학'이더라. 관련된 음악 책이 너덜너덜 찢어지도록 연습하고 또 읽고 불렀다. 그 안에 있는 모든 노래를 그렇게 연습해 봤다. 자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트로트에 미친 사람"이라며 눈을 빛냈다.
독한 마음먹고 쌓아 올린 공든탑인지라, 별사랑은 무대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소중할수록 긴장감은 배가되기 마련. TV조선 '미스트롯2'와 MBN '현역가왕'으로 대중성을 얻은 그는 혹독한 서바이벌을 거치며 더욱 단단해졌다고. 별사랑은 "극도의 긴장감이 무언지 배운 시간들이었다. 내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고 피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주변에서는 여유로워 보인다고들 하시는데 정작 난 그렇지 않았다. 그 시간들과 경험들 역시 나의 자양분이 됐다"고 귀띔했다.
'미스트롯2' 당시 별사랑은 TOP7 중 나이 서열 셋째로 오작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당한 리더십으로 동생들을 챙겼고, 야무진 사교성으로 언니들을 보필했다. 덕분에 업계에서 별사랑의 인간성에 대한 평은 미담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독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 서로 짓밟게 만드는 경연에서 주변을 두루 챙겨 화합을 이뤄냈으니 말이다. 별사랑은 "중간 역할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눈치 보는 동생들이 가여웠고, 고생하는 언니들이 안쓰러웠다. 조금 더 양보하고 챙기면 더욱 좋은 무대가 완성되어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관계 신념이 그렇다. 키도 크고 인상도 강한 편이라 첫인상에 대한 평이 좋지 못한 편이다. 그렇지만 억지로 나를 꾸미지 않는다. 말로 나를 설명하면 그때뿐이더라. 행동으로 상대에게 내 진짜 모습을 인정받는 게 오래가더라. 내가 옳은 길을 가면 언젠가 오해가 풀리고 상대가 다가와주는 경험을 많이 하고 살았다. 상대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겉모습만 보고 어림짐작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금 모난 행동이 보이더라도 틀린 게 아닌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여긴다"라고 현답 했다.
연예인은 받은 사랑을 쉬이 여기는 순간 하향세에 접어든다. 이는 명료하게 정해진 법칙이나 다름없지만, 인기라는 단물은 사람을 간사하게 만들곤 한다. 별사랑은 이를 꿰뚫어 수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팬들을 귀히 여긴다. 그래서인지, 별사랑의 눈물 버튼은 바로 팬사랑이다. 그는 "나름 힘든 시간을 거쳐왔더라. 인생은 어쩜 고생 없이 이뤄지는 게 하나도 없더라. 원망도 많이 했고, 넘어질뻔한 고비도 해마다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응원해 주시는 팬들께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별 볼 일 없는 별사랑을 생각해 주시고 미소를 머금어주시지 않나. 이런 인생이 또 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맺힌다"라고 표현했다.
이어 "경연 프로그램을 마치고 더더욱 확고해졌고, 깨우쳤다. 얄미운 음악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 주변을 보살피지 못할 때도 있었다. 팬 사랑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값진 결과를 얻었고 생각해 보니 그 성과는 절대 혼자 이룬 게 아니라는 정답을 찾았다. 팬들 덕분이고 그들은 항상 나를 울려주신다"라고 전했다.
가수 별사랑은 최근 MBC ON 음악 예능 프로그램 '트롯챔피언' 녹화장에서 '너뿐야' 무대 녹화를 마친 직후 iMBC연예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쉴틈 없는 일정 강행군 속에서도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말문을 연 별사랑.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선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밝힌 그다.
별사랑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너뿐야'로 '트롯챔피언' 무대에 오르니 정말 즐거웠다. 이곳은 고향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내 뿌리는 트로트 가수이기에 항상 친정에 온 기분을 느끼며 기운을 얻는다"며 "'너뿐야'의 텐션도 굉장히 높다. 사실 내 곡 중 가장 하이텐션의 곡이고, 처음 시도하는 분위기의 노래이기도 하다. 나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꼭 불러보고 싶은 텐션의 곡이라 욕심을 내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 별사탕들에게 바치는 곡이기도 하다. 아이돌 가수들의 팬송 개념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첫 도전에 팬송이니 말이다"라며 "2024년 한 해 동안 팬분들께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크게 한걸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물해 주신 여러분들께 보답하고 싶었다. 가수니까 본업으로 보답하고자 마음먹고 즐겁게 부르는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별사랑은 '너뿐야'와 함께 발매한 타이틀곡 '한뼘인생'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너뿐야'가 화끈한 댄스와 유쾌한 리듬의 곡이라면 '한뼘인생'은 별사랑의 짙고 감성 넘치는 보컬 매력이 묻어나는 진중한 노래다. '한뼘인생'에 대해 그는 "7~8년 전에 받은 곡이다. 당시엔 어머니께서 암 투병 중이셨다. 스스로 감정이 많이 흔들릴 때라 이 곡을 오롯이 불러내지 못했다. 부르다 멈춰 울고, 부르다 멈춰 울고 반복하다가 품에 안아둔 곡"이라고 비화를 밝혔다.
이어 "작곡가 선생님께 '이 곡을 언젠가 어머니께 꼭 선물하고 싶으니 아껴달라'고 부탁드렸고 8년이 흘러 나에게 돌아왔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괜찮아졌고, 내 나이도 들고 실력도 늘어 내 것이 되었다. 온전히 지금의 별사랑 스타일로 불러낼 수 있겠더라. 어머니께서 '노래 참 좋다'고 문자를 주셨다. 표현이 서툰 분이신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며 "그림 같은 가사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내자는 내용의 가사니 꼭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뼘인생'과 '너뿐야'는 언제 들으면 좋을 노래일지, 주인공 별사랑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한뼘인생'은 팬들께서 새벽 금지송으로 정해주셨다. 워낙 깊은 이야기라 새벽에 센치한 감성으로 들으면 힘들 정도라고 하시더라. 디너쇼에서 꼭 부르고 싶은 그런 진중한 곡이다. 또 20대 별사랑과 30대 별사랑이 불러 다른 감상을 느꼈듯, 나이가 들어가며 한 번씩 꺼내 불러보고 들어보면 색다를 곡"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너뿐야'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싶으실 때 들어달라. 퇴근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으시면 아주 좋을 것"이라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들으면 상대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일 거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트로트 사랑이 묻어난다. 혹자는 별사랑이 날 때부터 타고난 트로트 가수일 거라 생각하지만, 반전의 이력이 있다. 그는 과거 록밴드에 심취해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목청껏 노래했다. 별사랑은 "10년을 모던 스타일 락밴드를 추구하며 노래했다. 인디 음악도 사랑했고, 자연스럽게 건반에 기타도 치고 드럼도 배워 연습했다. 어쿠스틱 스타일 앨범도 냈었고, 일본과 필리핀을 오가며 활동도 했었다. 비록 락 음악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양분이 됐던 시간들이다. 드로트로 다양한 스타일로 나뉘는데 당시의 도전들이 뿌리가 되어 두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별사랑의 유튜브 채널 '별사랑TV' 인기 동영상에는 격렬하게 드럼을 두들기며 노래하는 커버 영상들이 즐비하다. 통기타를 둘러매고 잔잔한 옛곡들을 구성지게 뽑아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코드를 익힌 가수, 악기를 다루는 가수. 천상 딴따라가 따로 없다. 그는 "장르만 다를 뿐 음악 향한 열정은 한결이었다. 뭘 하더라도 음악으로 먹고살 팔자였나 보다. 락 밴드 음악을 주로 하다가 현실적으로 성공을 꿈꾸며 트로트에 도전했다. 애초에 이 장르에 대한 편견도 없었다"고 밝혔다.
별사랑은 무명의 설움깨나 맛봤기에 고생의 질량에 따라 결과물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지독하지만 달콤한 법칙을 깨우친 상태로 트로트에 뛰어들었다. 상당한 난도의 음악 장르이기에 허투루 얕잡아 보지 않았고, 작심하며 배웠다. 그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게 바로 트로트다. 듣는 이들도 그렇겠지만 부르는 입장에서도 매력이 엄청난 어려운 장르더라. 절대 쉽게 보지 않았다. 악보만 쫓는다고 뚝딱 완성되는 음악이 아닌, 한과 그 안에 감성, 흔히들 말하는 '뽕끼'로 적절히 완급 조절을 해야 하는 아주 어렵고 재밌는 음악"이라고 자부했다.
이어 "쉽게 완성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수백 번 부르고 비교하고 고쳐가며 연습했다. 음악이 아닌 음'학'이더라. 관련된 음악 책이 너덜너덜 찢어지도록 연습하고 또 읽고 불렀다. 그 안에 있는 모든 노래를 그렇게 연습해 봤다. 자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트로트에 미친 사람"이라며 눈을 빛냈다.
독한 마음먹고 쌓아 올린 공든탑인지라, 별사랑은 무대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소중할수록 긴장감은 배가되기 마련. TV조선 '미스트롯2'와 MBN '현역가왕'으로 대중성을 얻은 그는 혹독한 서바이벌을 거치며 더욱 단단해졌다고. 별사랑은 "극도의 긴장감이 무언지 배운 시간들이었다. 내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고 피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주변에서는 여유로워 보인다고들 하시는데 정작 난 그렇지 않았다. 그 시간들과 경험들 역시 나의 자양분이 됐다"고 귀띔했다.
'미스트롯2' 당시 별사랑은 TOP7 중 나이 서열 셋째로 오작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당한 리더십으로 동생들을 챙겼고, 야무진 사교성으로 언니들을 보필했다. 덕분에 업계에서 별사랑의 인간성에 대한 평은 미담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독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 서로 짓밟게 만드는 경연에서 주변을 두루 챙겨 화합을 이뤄냈으니 말이다. 별사랑은 "중간 역할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눈치 보는 동생들이 가여웠고, 고생하는 언니들이 안쓰러웠다. 조금 더 양보하고 챙기면 더욱 좋은 무대가 완성되어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관계 신념이 그렇다. 키도 크고 인상도 강한 편이라 첫인상에 대한 평이 좋지 못한 편이다. 그렇지만 억지로 나를 꾸미지 않는다. 말로 나를 설명하면 그때뿐이더라. 행동으로 상대에게 내 진짜 모습을 인정받는 게 오래가더라. 내가 옳은 길을 가면 언젠가 오해가 풀리고 상대가 다가와주는 경험을 많이 하고 살았다. 상대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겉모습만 보고 어림짐작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금 모난 행동이 보이더라도 틀린 게 아닌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여긴다"라고 현답 했다.
연예인은 받은 사랑을 쉬이 여기는 순간 하향세에 접어든다. 이는 명료하게 정해진 법칙이나 다름없지만, 인기라는 단물은 사람을 간사하게 만들곤 한다. 별사랑은 이를 꿰뚫어 수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팬들을 귀히 여긴다. 그래서인지, 별사랑의 눈물 버튼은 바로 팬사랑이다. 그는 "나름 힘든 시간을 거쳐왔더라. 인생은 어쩜 고생 없이 이뤄지는 게 하나도 없더라. 원망도 많이 했고, 넘어질뻔한 고비도 해마다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응원해 주시는 팬들께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별 볼 일 없는 별사랑을 생각해 주시고 미소를 머금어주시지 않나. 이런 인생이 또 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맺힌다"라고 표현했다.
이어 "경연 프로그램을 마치고 더더욱 확고해졌고, 깨우쳤다. 얄미운 음악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 주변을 보살피지 못할 때도 있었다. 팬 사랑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값진 결과를 얻었고 생각해 보니 그 성과는 절대 혼자 이룬 게 아니라는 정답을 찾았다. 팬들 덕분이고 그들은 항상 나를 울려주신다"라고 전했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 장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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