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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크리닝] '하얼빈' 훌륭한 영상, 좋은 연기, 아쉬운 여운 ★★☆

▶ 줄거리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 김상현, 공부인, 최재형, 이창섭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 비포스크리닝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등 근현대사의 내밀한 시간을 밀도있게 연출해온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다. '서울의 봄'으로 1,312만 관객을 동원한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2025년의 대 히트작을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내 놓는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를 직간접으로 그렸던 영화들은 있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과 하이브미디어코프가 만나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총성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그려낼지는 새삼스럽게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독립군과 독립운동에 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우민호 감독은 100% 리얼 로케이션을 시도했다고 한다. 몽골과 라트비아, 대한민국의 3개국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실제 독립군이 활동한 중국과 러시아 지역을 가장 닮은 곳으로 TV에서는 프레임 구현이 되지 않는 영화 전용 카메라 ARRI ALEXA 65를 활용해 극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영상을 뽑아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의 댓가이려나, 지난 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를 통해 전세계에 먼저 공개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안중근 역할로 현빈이, 이토 히로부미 역할로 릴리 프랭키가 참여했고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이동욱 등 내노라 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위대한 독립의 역사를 그려낸다고 한다.


▶ 애프터스크리닝
꽁꽁 얼은 두만강 위를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저렇게 넓은 강이 얼어 있는 걸 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그 위를 걸어가는 현빈의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다. 이런 걸 영화적 경험이라고 하는 건가. 극장 안에 4D로 찬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며 눈쌓인 만주 벌판, 러시아 등에서 생명을 걸고 조국을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웅장함' '숭고함' 등 우민호 감독이 의도한 감정들이 절로 뿜어져 나온다. 진흙 위에서 나뒹구는 일본군과의 전투는 '목숨을 건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비주얼적으로 느껴지게 연출되었다. 이런 도입 부분은 엄청나게 몰입감이 있고 강렬하다. 광활하고 건조하고 차가운 외국의 풍광은 '이국적이다'라고 감상적인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해서 보고 있는 게 미안할 정도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엄청 고생을 했다는데 그 고생이 화면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비주얼이었다. 확실히 우리나라 영화에서 흔히 보던 영상은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이동욱, 박훈, 전여빈의 연기는 너무 좋았다. 출연 비중이 많지 않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의 비주얼은 최고였다. 대사를 하지 않고 있는 순간에도 분위기로 압살시키는 느낌. 비주얼 좋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도 이들이 매끈한 잘생김이 아닌 캐릭터의 멋짐으로 더 도드라져 보이게 만든 데에는 배우들의 노력과 열정의 힘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공공의 적인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릴리 프랭키의 연기도 좋았다. '늙은 여우'로 표현되는 이토 히로부미를 이렇게 치밀하고 과감한 전략가의 모습으로 그려내다니, 그래서 오히려 안중근의 대단함을 반전으로 드러나게 했다.
훌륭한 미술, 좋은 연기였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은 감정의 몰입이나 여운을 좀 더 느끼고 싶은데 똑 똑 끊어버리는 편집이었다. 역사가 스포이고 모두가 예상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알고 보는 만큼 좀 더 감정의 피치를 올리고 여운을 길게 줬어도 좋았을텐데. 요즘의 감독들은 '신파'에 지나치게 경계를 하는 듯, 있어도 좋을 장면까지 건조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아쉬웠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안중근의 이야기이고, 저마다 그의 일대기 중에 심장을 울리는 대목은 다르겠지만 그런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인간적인 모습에만 집중한 건 살짝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엔딩에 이르러서는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물론 자막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이후에 일본의 폭력은 더 심해졌고 그로부터도 30년이나 더 지나서야 독립이 이뤄졌다는 게 나오면서 안중근의 업적이 당장의 통쾌한 반전을 가져다 주지 않았음을 알려주며 이들의 희생이 얼마나 고귀하고 지난한 일이었는지를 알게 해주긴 한다. 하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원한게 이런 지난함의 공감일까? 통쾌하고 장렬한 엔딩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으로 12월 24일 화요일 개봉예정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CJ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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