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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작's 사적인 방송] 엣지녀, 신상녀. 정녕 남의 이야기?



 


주말 10시만 되면 ‘억’ 소리에 절로 입이 벌어지고 눈동자는 TV 모니터를 아래위로 훑어내기 바쁘다. 우리의 ‘워너비 아이콘’ 혜수 언니 때문이다. <스타일>에서 그녀가 입고, 신고, 쓰고 나오는 ‘엣지’ 있는 의상을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의 대사, 내용, 캐릭터 분석은 이미 물 건너간다. 저 옷은 어디서 협찬받은 걸까? 우와, 반지, 뱅글, 스카프의 환상적인 궁합… 저런 스타일을 혜수 언니 말고 누가 소화해낼까? 아, 매회 7~8벌 정도의 의상을 바꿔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는 데 최소 1억원 이상! 1회에 입는 옷만 그렇단다. 결국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김혜수의, 김혜수에 의한, 김혜수를 위한 <스타일>이라는 결론. 구경하다 보면 일주일간의 피로가 쫙~ 풀리고 대리 만족감에 허덕이게 되는데 때때로 이 조증의 감정을 쭉 느껴보고 싶다면 원칙이 하나 있다. <스타일>을 보고 절대 거울을 보지 말 것, 옷장을 열어보지 말 것. 봐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가 한 열 배 정도는 더 쌓이더라.

 


어젯밤 화려한 의상에 녹다운된 후, 오늘 방송 준비를 위해 새벽같이 출근한 나의 스타일을 한번 봤다. 6시 20분에 일어나서 40분에 택시를 즐겨 타는 나의 ‘20분 스타일’을 말하자면 고양이 세수에 대충 파우더만 덧바르고 잡티는 옵션으로 구성된 피부, 전날 머리 감는 습관으로 언제나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플랫 슈즈에 면치마와 루즈핏 셔츠. 결국 눈에 보이는 대로 걸치는 것이 나의 컨셉. 간혹 주변 선배들이 나한테 나름 의상 컨셉을 가지고 있다고 격려해 주기도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냥 걸치고 나오는 정도다. 뭐 어쨌든 나는 그렇다 치고 타자 소리에 놀라 내 뒤쪽을 돌아보니, 면바지에 남방, 운동화를 신고 자판 위를 달리는 우리 후배님들은 어찌할까.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여관방에서 담배에 찌들어 사는 시나리오 작가 김민희나,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어리바리 방송작가로 나오는 서영희의 한 장짜리 티셔츠 스타일은 사실 우리의 실생활을 그대로, 제대로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스타일리시하게 보여준 <온에어>의 송윤아, 지난 주말 첫 방영 된 <천만번 사랑해> 김청씨 코디네이터에게는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아무리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고 하지만 우리도 엣지녀, 신상녀로 좀 보여주면 어디가 덧나나? 오히려 드라마 <스타일>의 의상을 두고 현직 패션잡지 종사자들이 “말 그대로 드라마다”라고 한다는데. 왜 방송작가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하나같이 더 꾀죄죄하게 묘사하는 걸까. 우리도 여자고 사회적인 위치가 있는데. 그래, 그래! 우리는 의상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하겠어. 엣지 있는 작가주의 시각, 신상 아이템만 내놓는 실력 있는 작가! 어때 조금 있어 보여?





 


우리도 나름 엣지 있다. 구성작가들의 의상 스타일도 나름 각 잡혀 있다는 말씀. 주로 교양, 시사, 연예, 쇼양(교양과 오락) 크게 네 분류가 있다. 물론 개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스타일이 딱 네 분류로 나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균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나름 스타일군이 형성된다. 아무래도 분야마다 하는 일이 조금씩 다르니 의상이나 화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교양 작가들의 의상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착하다’. 착하다 못해 평범하다. 치마보다는 청바지, 높은 구두보다는 단화, 플랫 슈즈, 운동화, 샤방샤방한 실크 대신 편안한 면 소재를 선호하는 수수한 스타일이라고 할까. 그에 반해 시사 보도 팀은 조금 격식을 따지는 편이다. 하지만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오십보백보 정도. 교양과 비슷하게 평범하긴 한데 면 티셔츠 대신 남방을 조금 더 선호하고 이왕이면 청바지보다는 치마 위주, 딱딱한 분위기 덕분에 프리스타일은 구사하기 어렵고, 전반적으로 어두운 계통의 옷을 즐겨 입는다.

 


하지만 연예 팀은 확실히 다르다.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과 오락을 합친 쇼양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연예인들과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섭외를 위해서, 원활한 방송 진행을 위해서 작가들의 이미지 관리는 필수다. 일단 모두들 최신 유행하는 미실 화장법을 한다. 자연스럽게 의상은 패리스 힐튼처럼 화려해지고 서인영 신상구두도 필수, 구찌 백도 하나쯤 있어야겠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 못지않은 이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단지 섭외 때문만은 아니다. 기선제압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가령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할 땐 연예인과의 첫 대면에서 밀리면 방송하는 내내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첫 대면식을 치를 때 외모, 실력, 말발에서 완벽한 카리스마를 날려줘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동갑내기 연예인을 만날 때면 더더욱 필요한 기선제압.





 


가끔씩 화려해 보이는 연예 팀 작가들을 볼 때면 와우~ 올레! 정말 커리어우먼 같은 충만한 필을 받다가도 막상 내가 꾸며야 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내가 교양에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녕 자기 그릇은 타고나는 것인가.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이런 구분도 필요가 없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우리 메인 언니들은 분야를 구분 짓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어정쩡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4~6년차 정도. 그리고 막내들의 스타일은 무조건 캐주얼. 아무래도 선배들의 온갖 심부름부터 잡일까지 하려면 일단 활동성이 좋아야 하고 언제 어디서든 새우잠을 잘 수 있어야 하니. 츄리닝 아니면 바지에 티셔츠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살짝 나의 몸뚱어리에게 미안함을 표한다. 이제는 살짝 스타일을 가질 때도 됐는데, 술 마실 돈은 있어도 옷 살 돈을 없다, 화장을 해도 티가 안 나는 얼굴이니 그냥 잡티와 조화롭게 살겠다고 말하는 꼴이란. 어쩌면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여자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한데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닌지. 몇 년째 신고 있는 플랫 슈즈야, 네가 고생이 많다. 글 엄영란 |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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