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뚝뚝한 줄만 알았던 바쁜 남편. 못사는 친정 식구도 잘 챙기고 따박따박 월급도 잘 갖다주고 사업적 능력까지 뛰어나다.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과묵해 집에서는 “밥 줘” 소리 말고는 잘 안 한다는 것. 딱 보기에도 착한 현모양처 부인과 과묵하지만 평범한 남편, 똑 부러지는 딸인 이 가족에게 어느 날 파란이 일어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두 집 살림을 해왔단다. 평범한 주부 영란은 모든 일에 회의가 느껴지는데….
여기까지는 그저 보통 일일드라마의 전형 같다. 그런데 이 남자, 절대 지금 애인과 헤어질 생각도 없고 이혼할 마음도 없단다. 지금 그녀와는 ‘우주의 사랑’을 하고 있으며 집에도 제대로 생활비는 갖다 줄 테니 자기 일에 상관 말란다. 사과도 없고 무릎 꿇고 비는 건 더더군다나 없다. 오히려 내 여자 괴롭히지 말라며 부인에게 노발대발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거기다 얌전했던 부인이 대응하자 갑자기 샤워실로 끌고 간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긴 한데 샤워실에서 나온 남자는 의기양양, 부인은 옷 꼴이 말이 아니다. 말로만 듣던 ‘부부강간’이란다. 어라? 이 드라마 갈수록 강해진다. 부부 사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새겨본다더니 막장 드라마가 되려나?
여하간 남편의 그녀, 갑자기 기억상실에 기면증까지 있단다. 그것도 부인 친정식구가 너무 괴롭혀서 그렇다나? 몽유병 환자처럼 정신 차려 보니 밤중에 차를 운전하고 있고 기억상실로 남자의 가정에 밀고 들어와 픽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이 여자 연기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 여자 속내는 주인공들뿐 아니라 시청자도 알 수가 없다. 이 드라마 사이코 스릴러인가? 연기하는 것 같은 내연녀의 뒤를 밟는 친정 식구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주인공의 친정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추리까지 한다. 알고 보니 추리극인가? 어이쿠, 그럼 그렇지, 상처받은 부인 앞에 로맨티스트 연하남이 나타난다. 친정 식구들도 부추기는 그들의 연애를 보아하니 얼핏 로맨스 드라마 같다. ‘부부강간’에 대한 비판이 너무 거셌던 걸까. 거기에 주인공 조영란(하희라)이 한마디 한다. “여자들이 당하면서도 창피해서 드러내질 못해. 그게 얼마나 상처주고 심신으로 고통스러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 정말 법적 제도장치가 시급해. 보다 강력하게 막아주고 알려야 해.” 배우 하희라의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읊는 이 대사 때문에 순간 여성부 계몽 드라마인 줄 알았다. 사랑에 굶주린 당신을 위해 꾹꾹 눌러 담았다더니, 정말 많이도 눌러 담았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 바로 MBC 일일드라마 <밥줘>이다.
<밥줘>는 현재 9%에서 시작한 시청률이 18%를 기록하며 일일드라마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기획의도 또한 거창하다. “부부살이의 저편,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부부관계의 질곡을 주인공 조영란의 시각을 통해 철저하게 추적하고 해부하여 진솔하게 보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모색해 보고자 한다.” 과연 <밥줘>가 모색하고자 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밥줘>에 담긴 밥이 잡곡밥인 것만은 확실하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일드라마의 막장화야 이미 진행되어 온 것이고 <밥줘>의 안하무인 남편 캐릭터는 SBS <조강지처 클럽>과 MBC <나쁜여자 착한여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욕망 그득한 내연녀 차화진 역시 SBS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의 동생쯤으로 여겨지며 오지랖 넓고 사람 착한 주인공의 친정 식구들 역시 낯설지 않다. 꾸준히 오른 현재 시청률 추이를 보자면 제작진은 초기 의도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전체 호흡은 기나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춰 에피소드는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일일드라마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 드라마는 분명 조타수 없이 움직이는 배가 된 것 같다. 앞으로 가고 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 캐릭터는 더 이기적으로, 내연녀는 악독하게, 부인은 더더더 불쌍하게’가 계속되다 보니 사건은 강해지고 캐릭터들은 성격을 잃었다. 이렇게 가다가 결국 부인은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남편은 참회하며 악녀는 정신병원에 가는 결말이 예상된다. 그동안 이런 드라마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밥줘>가 <아내의 유혹>이나 <조강지처 클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짐짓 아닌 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른 척 뭔가 의미를 찾는 척하느라 자꾸 흔들린다는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노선을 정하자. 맞바람과 기억상실증까지 나온 마당에 뭘 그러시나. 여기 전형적 불륜 일일드라마 하나 추가요, 라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요 반응이다. 김송희 기자 | 사진제공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