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작품 MBC ‘시간’을 무사히 마친 서현은 한층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홀로서기에 나선 이후 첫 선택이었던 만큼 실제 자신의 모습과 닮은 캐릭터를 통해 좀 더 쉬운 길을 걸었을 법도 한데, 서현은 그러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생에 한 번 겪기도 어려울 일을 매 회 이겨내야 하는 인물 설지현을 연기하면서 배우 서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현은 ‘시간’을 끝낸 소감으로 “정말 많은 경험이 됐던 작품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연기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작품 자체가 감정의 폭이 굉장히 넓었다. 단순히 누가 죽었을 때의 슬픔 그 이상으로, 가족의 죽음이 시작점인 깊이를 표현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극중 설지현은 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사랑했던 연인, 엄마 등 사실상 모든 걸 잃는다. 자살까지 결심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천수호(김정현)를 만나고, 그와 함께 조금씩 스스로 세상과 맞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역할을 위해 서현은 모든 스케줄을 거절한 채 드라마에만 몰두했다. 이전에는 다른 활동들을 병행해야했기에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는 서현. 드디어 100% 올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고, 그런 면에서 ‘시간’은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다.
“오로지 설지현으로 살아가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다. 예전에는 스위치 온오프를 잘 해야된다는 생각이었다. 연기할 때는 연기를 하다가, 소녀시대로 돌아와서는 무대에 올라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정도로 과연 이 인물의 슬픔과 깊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집에 가 있는 그 시간에도 서현으로 돌아오기보다는 계속 설지현으로 살려고 했다. 그래서 후회가 남지는 않는다. 순간순간에 제 연기를 보고 여기서 좀 아쉽다 이런 것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만큼 모든 걸 다 걸고 해서 후회는 없다.”
역할에 깊이 몰입한 까닭일까.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란 서현의 변화가 계속됐다. 우선 서현은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촬영하는 동안 지낼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건 키우던 강아지 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5개월 넘는 촬영 기간 동안 단 두 명의 단짝 친구만 만났는데, 그들 모두 “네가 이렇게 우울한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다.”라며 걱정을 했을 정도라고. 심지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드라마 OST를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몇 차례 하면서 이제까지 작품들과는 또 다른 인상을 얻게 됐다.
이처럼 본래의 모습을 일정 부분 잃을 만큼 쉽지 않은 감정선이었지만, 겪어보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피할 필요는 없었다는 게 서현의 말이다. 서현은 “연기가 무조건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여봐야 살인자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경험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경험과 다른 상황인데도 끌어다 쓸 수 있다. 최대한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서 이번 작품에서는 머리로 막 분석을 하는 것보다 계속 인물이랑 하나가 된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연기에 대한 소신을 드러냈다.
드라마 종영 후에도 후유증은 한동안 이어졌다. 드라마가 끝나고서야 긴장을 풀었던 탓인지 몸살에 감기까지 겹쳐서 며칠을 앓아누워있었다고. 이렇듯 서현은 ‘시간’ 속 설지현으로 살았던 순간들을 온 몸으로 기억하며 애틋한 이별의 시간을 맞이했고, 다시 배우 서현으로 새롭게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