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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일의 NBA 액션] 잊고 싶은 기억 ④ 로버트 오리의 '수건 투척 사건'

[스포티비뉴스=조현일 해설위원]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던 일, 민망하고 황당했던 일,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하는 사연을 누구나 갖고 있다. 2015~2016시즌이 한창인 지금 선수들의 머릿속에 있는 몇 가지 '잊고 싶은 기억'을 정리해봤다.

피닉스와 수건의 악연

얼마 전 피닉스 선즈의 마키프 모리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코치진의 교체 지시에 불만을 품은 모리스가 제프 호나섹 감독 얼굴에 수건을 던졌기 때문이다. 호나섹 감독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모리스가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지만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피닉스 구단은 곧바로 모리스에 2경기 출전금지 징계를 내렸다.

모리스보다 앞서 감독 얼굴에 수건을 던진 '타월 선배'가 있다. 로버트 오리가 주인공이다. 그 역시 공교롭게도 피닉스 시절에 수건을 던졌다. 속에 있던 화를 주체하지 못한 탓에 잊고 싶은 기억 하나를 추가하고 말았다.

오리는 마이클 조던보다 하나 더 많은 챔피언 반지를 갖고 있다. 그에게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는 '클러치 슈터' 또는 '행운아'일 것이다. 고비마다 터트리는 외곽포로 수차례 소속팀을 위기에서 구해 냈다. 오리는 하킴 올라주원, 클라이드 드렉슬러,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팀 던컨 등 '전설'들과 함께 호흡하며 모두 7개의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휴스턴 로키츠에서 데뷔한 오리의 첫 4시즌은 행복 그 자체였다. 앨라배마 대학을 졸업한 뒤 199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1순위로 휴스턴의 지명을 받은 오리는 데뷔 첫해부터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파워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도 정확한 외곽슛과 빼어난 수비력을 앞세워 휴스턴의 2연속 우승에 힘을 보탰다. 물론 애초 예상보다는 성장 폭이 더뎠다. '제 2의 스카티 피펜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금세 사라졌다.

그러나 쓰임새는 많았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도 평균 이상이었다. 1995~1996시즌에 오리는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해 100개 이상의 3점슛과 가로채기, 블록슛, 어시스트를 함께 거뒀다. 이 기록은 NBA 역사상 최초였다.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하킴 올라주원,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부담을 던 오리는 지역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휴스턴과 인연은 생각보다 짧았다. 오리는 1996년 8월 19일 피닉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트레이드 맞상대는 당시 리그 최고의 스타였던 찰스 바클리였다. 올라주원, 드렉슬러와 함께 뛰고 싶어 했던 바클리의 열망이 오리의 행선지를 바꿔놓았다.

휴스턴 2연패의 주역이었던 샘 카셀과 오리를 받아 온 피닉스는 NBA 데뷔 2년째를 맞은 마이클 핀리를 주축으로 팀 재건에 나섰다. 출발은 신통치 않았다. 1996-97시즌 첫 13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팀 분위기도 크게 가라앉았다.

피닉스 구단은 트레이드로 부진 탈출 실마리를 찾았다. 1996년 12월 26일 피닉스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트레이드로 제이슨 키드와 AC 그린을 영입했다. 둘을 데려오기 위해 내준 선수는 핀리와 카셀이었다.

감독도 바꿨다. 베테랑 지도자인 코튼 핏치먼즈 감독 대신 대니 에인지(현 보스턴 셀틱스 단장)에게 새 지휘봉을 맡겼다. 에인지는 팀 적응에 애를 먹고 있던 오리에게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보장하겠다"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수건 선배'의 잊고 싶은 기억

그러나 에인지가 부임한 뒤 오리의 임무는 더 줄어들었다. 핵심 식스맨으로 코트를 밟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카셀이 댈러스로 트레이드되기 직전 피닉스는 휴스턴과 원정경기를 치렀다. 당시 주전으로 뛰었던 카셀은 '친정' 휴스턴 팬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벤치를 지키던 오리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오리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볼 핸들링은 여전히 형편없었고 득점 기복도 심했다. 언론과 팬들은 오리를 향한 기대감을 낮추기 시작했다. 오리 자신도 답답했을 것이다. NBA 경력 초창기부터 최고의 경험만을 맛봤던 오리에게 평균 22분의 출전시간과 경기당 평균 6.9점 3.7리바운드라는 숫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1997년 1월 6일 보스턴 셀틱스와 경기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이날 경기 4쿼터에 오리는 벤치로 자신을 불러들이는 에인지 감독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당신이 너무 역겨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벤치로 들어가면서 에인지 감독의 얼굴에 수건을 집어던졌다. 오리의 손을 떠난 수건은 클러치 상황에서 던지는 외곽슛만큼이나 정확히 에인지 감독의 얼굴을 때렸다. 피닉스 선수들의 만류 덕분에 사태는 더 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에게 수모를 당한 에인지 감독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오리는 보스턴과 경기가 끝난 직후 에인지 감독을 찾아가 사죄했다. 에인지 감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리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피닉스 구단은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제리 콜란젤로 단장은 오리에게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수건 투척 사건'이 일어난 뒤 팀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둘 가운데 한 명은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감독의 권위에 도전했던 오리가 결국 선즈와 인연을 마무리했다. 사건 발생 4일 후 오리는 세드릭 세발로스와 맞트레이드되며 LA 레이커스로 이적했다.

트레이드가 발표되던 날에 에인지 감독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에인지는 "내가 오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애석하게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며 씁쓸한 속내를 밝혔다. 너무나 미운 제자였겠지만 그 일로 로스터를 큰 폭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으니 그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으리라.

트레이드를 주도한 인물은 콜란젤로 피닉스 단장이었다. 콜란젤로는 수건 사건 직후 오리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어떻게든 더 엄중한 처벌을 내렸겠지. 어쨌든 난 너를 다른 팀으로 보낼 거야." 오리의 트레이드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렇듯 오리 자신도 이적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96년 여름 피닉스는 바클리를 트레이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96-97시즌 중에 굵직한 '빅딜'을 두 차례나 단행했다. 과감한 결단 속에 피닉스는 개막 13연패를 딛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기적 같은 마무리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성공적인 '리빌딩 첫해'를 보낸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피닉스를 떠난 오리는 레이커스 이적 후 3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더는 쓸데없는 구설수를 만들지 않았고 하늘을 찌르던 자존심도 많이 죽였다. 벤치로 출전해 15분 남짓을 뛰어도 아무런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레이커스에서 6년 동안 오리와 호흡을 맞췄던 코비는 그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코비는 "오리는 나와 함께 뛰었던 선수 가운데 가장 영리했다"라고 말한 뒤 "오리 덕분에 3시즌 연속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샤킬 오닐과 신경전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코비는 힘들 때마다 오리를 찾아가 이런저런 조언을 얻었다.

오리와 함께 2개의 챔피언십을 차지한 그렉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은 "경기당 평균 12.0득점이 최고 기록인 선수가 이토록 위력적인 건 처음 봤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런 선수는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포포비치의 말처럼 오리의 가치는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혈기왕성한 20대를 보냈던 오리가 씁쓸한 과거를 극복하고 'NBA 최고의 승자'로 기억되는 이유다.

[사진1] 로버트 오리 ⓒ Gettyimages

[사진2] 코비 브라이언트(왼쪽), 로버트 오리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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