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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감독의 TV 볼 권리] 동물 프로그램 좀 만들어주세요!




감기몸살에 기침까지 하며 혼자 괴로워하다가,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신종플루 검진을 받으려는 환자들로 대기시간이 엄청난데다, 검사비가 무려 15만원이라는 소릴 듣고 “에이, 죽기야 하겠어”라며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는 내 친구 P군. 보건소는 저렴할 거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15만원이라도 지출하고 오라는 내 잔소리에, 며칠 전 전화를 해보니 저녁식사 후 타미플루를 먹고 있다고 했다. 그러곤 다시 며칠 후 다행히 신종플루가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P군은 조감독으로 두 작품 반을 끝내고(한 편은 촬영도중 영화가 엎어져버렸으니 반으로 인정) 이제 자기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벼르더니, 슬그머니 세 작품 반째가 될 영화의 조감독으로 최근에 들어가버렸다. P군은 올봄부터 여름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입양 받아온 1살짜리 비글 때문이었다. 입양 온 지 하루 만에 전에 살던 집도, 자기 이름도 잊을 정도로 붙임성이 워낙 좋아 새 주인과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던 비글 탓에 자취하던 P군은 영화 한 편 보러 극장에도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P군이 잠시 동안 인생을 걸었던 비글 ‘초코’. 아마 암컷이었기에 더욱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으리라. (사진제공 P군)




P군의 반려동물이 비글인지, 비글의 반려동물이 P군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P군의 모든 시간을 비글에게 양보하며 지내다가, 아무래도 P군은 비글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 정도까지 사랑하지는 않았는지 눈물을 흩뿌리며 비글을 입양해 왔던 집에 돌려보내고 말았다. P군이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 보모가 된 듯 P군의 자취 집에서 비글(이하 이름을 불러줍시다. ‘초코’입니다)을 돌봐주기도 해서인지, 부주인쯤 되는 관계였던 나도 P군이 ‘초코’를 포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물에 콧물범벅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면 뻥이지만,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 나는 강아지를 매우 좋아한다. 고양이도 좋아한다. 뱀이나 도마뱀 등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털 달리고 누가 봐도 애완동물인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워낙 동물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무서워하거나(아무래도 전생에 초원에서 상위동물에게 잡아 먹힌, 먹이사슬의 저 아래 초식 동물이었는지) 귀찮아 하는 쪽이라 어릴 적 얻어온 강아지를 하루 만에 다른 친구에게 넘겨야 했던 슬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반려동물과 꼭 함께 살고 싶다는, 일종의 장래희망 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


 



P군이 키우던 ‘초코’는 본래 이름이 ‘나루’였다. 올해에만 ‘초코’는 이름이 ‘나루’에서 ‘초코’였다가 다시 ‘나루’로 바뀌었다. 어차피 이름 불러도 못 알아듣는다. 잘 알다시피 비글은 ‘스누피’의 모델의 된 종이다. (사진제공 P군)

 


나는 장래의 나의 반려동물에 관해 이것저것 준비도 해 놓았다. 먼저 이름은 조이(JOEY)라고 정했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맷 르블랑이 맡았던 역할이다. 조금은 바보 같더라도 성격적으로 그렇게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녀석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또 종류는 강아지로, 그중에서도 푸들로, 그중에서도 적당한 크기의 토이푸들로 정해놓았다. 본래 단모(그러니까 비글과 같이 털이 짧은) 강아지를 좋아하는데, ‘초코’와 지내다 보니 이 녀석들 하루종일 털을 줄줄 흘리고 다닌다. 검은 셔츠를 입고 ‘초코’와 한두 시간 뒹굴고(?) 나면 검은 옷 바탕에 흰 땡땡이 비슷한 무늬가 생겨버릴 정도다…라고 하면 완전 과장이지만, 어쨌든 그런 연유로 털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곱슬머리의 푸들로 정했다. 게다가 푸들은 가장 지능이 높은 개 부문에 2위로 뽑히기도 했다(참고로 1위는 보더콜리랍니다). 더구나 빈집에서 혼자 묵묵히 놀 줄 아는 쿨한 녀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린 끝에 결정한 장래희망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TV 동물 프로그램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세상에… KBS <주주클럽>이 지난봄에 방송이 종료됐다는 걸 알고들 계시는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광고수입이 없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싶지만, 현재 남은 동물 프로그램이 SBS 하나뿐인 건 꽤나 섭섭하다. MBC 에서도 신기한 동물들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전문 동물 프로그램이 아니라 갈증이 싹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추석특집으로 방송됐던 MBC <스타의 개를 소개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고, 최근 TV 방송 개편의 시기가 뚜렷이 존재하지 않아 보여 하는 말이기도 한데, 새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애완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십사 한다. 애견인구 수도 어마어마한데다(작년 이맘때가 500만이었다니 지금은 더 늘었겠죠?) 강아지뿐 아니라 고양이, 토끼, 돼지, 햄스터, 고슴도치, 심지어 악어까지 키우고 있는 이들에다가, 나처럼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애완동물 키우기를 장래희망으로 간직하고 있는 시청자들까지 생각하면 꼭 나 혼자만 바라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그…그렇지 않나요?)

 


음, 지금 당장 방송사 국장님이 무릎과 이마를 양손으로 동시에 타닥! 칠 정도로 그럴싸한 아이디어는 내지 못해 죄송합니다만, 분명 지금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연예인들이 내가 알기로 부지기수이니 즐거운 동물 오락 프로그램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방송되었던 <스친소-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패러디물 <스개소-스타의 개를 소개합니다> 같은 시도라도 다시 해볼 순 없는 걸까, 하는 바람이다. 지금 기억엔 ‘의외로’ 재미가 없었다는 생각인데, 역시 애완동물 프로그램은 동물들이 낯설어 하는 조명이 번쩍이는 스튜디오보다는, 카메라를 들고 직접 집이나 현장으로 달려가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갈수록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추이를 볼 때, 언젠가 썩 괜찮은 본격 동물 오락 프로그램이 등장할 날이 올 거라고 내심 기대해본다. 글 장군(칼럼니스트, 백수감독) │ 사진제공 SBS, MBC, 고덕동 사는 P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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