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공자'로 돌아온 박훈정 감독을 만났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영화 '신세계'부터 '마녀' 시리즈, 넷플릭스 '낙원의 밤'까지 직접 쓰고 연출하는 영화로 매력적인 캐릭터,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를 이끌어온 박훈정 감독은 영화 '귀공자'로 지금껏 그가 만들어 왔던 모든 작품 중 가장 유머러스한 액션 서스펜스를 만들어 냈다.
오래전 '코피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귀공자'를 썼다는 박훈정 감독은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주는 코피노 관련 다큐를 보면서 조금 열받기도 해서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 '마르코'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아프고 잔인한 이야기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화 제목을 '슬픈 열대'로 붙였었다. 한국의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무책임하게 아이를 만들고 그냥 버려두다가 자신의 건강이 위험해지자 그제야 아이를 찾는다는 건 참 냉정하고 냉혹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씁쓸함이 있다."라며 영화의 첫 제목은 '슬픈 열대'였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떻게 '귀공자'로 바뀌게 된 걸까? "촬영하면서 중간에 현장 편집본을 보면서 '영화가 슬픈데, 밝네?' 하다가 점점 '재밌네?' '어? 안 슬픈데?'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 중간중간 코미디적 요소가 나오는데 쓴웃음을 짓게 된다. 저는 항상 코미디를 추구했는데 잘 안됐다. 제 유머 코드가 일반적이지 않고 극소수만 공감할 수 있는 거더라. 저는 쓰면서도 웃겨 죽겠고 찍으면서도 너무 웃긴데 스태프들은 안 웃기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태프들이 좀 웃기다고 하더라. 그래서 전체적으로 톤이 가벼워지며 '슬픈 열대'라는 제목을 버리게 되었다."라며 꾸준히 시도하려 했던 박훈정 감독만의 유머 코드가 이번에는 통해 전체적으로 가벼운 톤의 영화가 만들어졌음을 밝혔다.
박훈정 감독은 '마녀' 시리즈에서도 '귀공자'라는 캐릭터명을 썼으며 '낙원의 밤' '마녀' 시리즈 등을 제주도에서 촬영을 해왔다. 박훈정 감독의 마니아라면 감독의 이런 반복적 캐릭터명 사용과 제주 사랑에 각별함을 느꼈을 것. 그는 "제가 만든 캐릭터들이라 그런지 굉장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건 하나로 끝내기에 아쉬워서 또 썼다. '마녀'에서의 '귀공자'와는 완전 별개의 작품이고 캐릭터다. 그런데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허술하고 속물적인 캐릭터의 이름으로 잘 어울린다 생각해서 썼다. 두 번은 썼지만 세 번 쓰는 건 좀 애매할 것 같다"라며 '귀공자'라는 캐릭터명을 반복해서 사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제가 제주 명예도민이다. 제주가 주는 공간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국적이다. 내륙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서가 있다고 생각해서 제주를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또 맛있는 것도 많고 공기가 좋다"라며 제주도에서의 로케이션을 즐기는 이유를 밝혔다.
박훈정 감독은 작품 속 인물들에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깔고 간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는 "아직도 '성악설'이 우세한데 요즘은 가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조금 열려있다."라며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상업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표현 방식에 대해 상업적으로 일반 관객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려면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번에 작업을 할 때는 수위 조절에 대해 사전에 고민을 하고 만들었다. 후반작업을 하는 CG 팀이 '예전에는 피를 더 넣으라 더니 요즘은 쓴 피도 지우라고 하네'라고 하더라. 청불이냐 아니냐의 등급 때문이 아니라 청불로 가더라도 수위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게 된다."라며 하드코어 했던 예전의 폭력 표현 방식에서 최근 작품일수록 피가 덜 보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매 작품마다 엄청난 경쟁률의 신인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캐스팅하기로도 유명한 박훈정 감독이다. 그는 "신인 배우를 쓸 때는 캐릭터로 쉽게 봐진다는 연출적인 장점이 있다.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고 싶어서"라며 엄청난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선발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며 "매번 경쟁률이 높다 보니 다음 작품 캐스팅은 어떻게 하나 고민스럽다.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 배우의 풀에서 그 나이대의 괜찮은 배우들이 늘어나니까 그런 것에 일조했다는 뿌듯함은 느낀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제가 발견하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발견될 친구들이다. 제가 좀 일찍 본 것 일뿐."이라며 라이징 스타의 등용문이 된 박훈정 픽(PICK)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박훈정 감독의 선택을 받은 강태주에 대해 "일단은 외모가 코피노 같았고 해외에서 공부할 적이 없다는데 영어나 일본어를 독학으로 잘 하더라. 굉장히 똘똘했다. 똘똘함이 연기할 때도 필요한 요소인데 감독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잘 알아듣더라. 눈빛에서 에너지가 넘쳤고 연기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다.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게 배우로서 장점"이라며 똘망한 친구라고 설명했다.
공개된 영화 '귀공자'의 반응은 잘 살펴보는 편이냐는 질문에 그는 "묵혔다가 11월쯤에 보려고 한다. 개봉된 지 한참 지나 마음의 평온이 깃들 때쯤 반응을 찾아보는 편인데, 그때쯤에는 좀 덤덤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당장은 관객들의 평을 찾아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 '귀공자'는 6월 21일 개봉해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