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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에 탄 소녀' 박이웅 감독 "농민들이 농기구 끌고 고속도로 올라온 모습 인상적" [인터뷰M]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소녀의 거침없는 폭주를 다룬 영화로 데뷔를 한 박이웅 감독을 만났다.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여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바 있다.


2000년대 초반 '필름2.0'이라는 매체에서 인터넷 방송팀의 PD로 영화 관련 인물과 행사의 취재, 촬영, 편집까지 하며 영상 제작일을 했었던 박이웅 감독은 2012년 당시 문재인 후보자의 수행팀으로 영상 제작일을 경험, 이후에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데이터 관리 팀에서 일 하며 그야말로 '다양한' 경험을 해 왔다. 영화 '하이프네이션'으로 조감독을 했던 이후로 연출은 처음이라는 박이웅 감독이지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져온 작품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강렬했다.

영화 현장에서 연출이나 제작팀의 일원으로 일해봄직 했건만 박 감독은 연출과 관련 없는 분야인 데이터 관리팀에서 일을 했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기엔 연출이나 제작은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분야다. 예전부터 영상 편집 등을 하며 컴퓨터를 잘 다뤘고, 그래서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 하며 현장 경험을 하기엔 데이터 관리 일이 제격이었다"라고 설명하며 현장 경험을 쌓음과 동시에 자신의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해왔음을 이야기했다.

그의 첫 작품 '불도저에 탄 소녀'의 시나리오 작업은 2011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학교 졸업을 앞두고 구상했던 내용에 앞서 대선 후보 수행팀으로 있었을때의 경험도 녹여내며 계속해서 살을 붙이며 작품을 다듬었다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해 줘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데, 사실 그 전에도 이 시나리오고 계속 영진위에 냈지만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전까지 '용문신을 한 소녀'로 제목을 붙이고 캐릭터에 중심을 두다가, 제목을 '불도저에 탄 소녀'로 바꾸면서 좀 더 사건이 중심이 되고 대중성을 가미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며 똑같은 스토리이지만 관점에 따라 제작여부가 결정되었다는 기막힌 제작의 비하인드도 밝혔다.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썼다고 알려져 있는 직품이지만 박이웅 감독은 "사실은 시나리오를 쓴 다음에서야 그런 실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나름 창의적으로 썼다고 생각했던 시나리오였는데 실제 있는 일이라고해서 당황했고, 사례를 찾아보니까 더 당위성이 생기더라. 그래서 힘을 내서 쓰게 되었다"며 알려진 사연을 정정했다.

박 감독은 중장비라는 소재의 힌트는 감독의 대학시절에 겪은 농민투쟁이었다고 했다. "제가 97학번인데 당시에는 학생운동이 농민투쟁에도 함께 했었다. 그때 농민들이 고속도로에 농기구를 끌오 올라온 적이 있어다. 힘 없는 농민들이 분노에 차서 농기구를 끌고 올라오시는데 막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며 그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때의 이미지가 이야기에 반영된 것"이라며 영화의 시작이 된 이미지를 밝혔다.

영화 속에는 용문신을 한 팔 가득 새긴 '혜영'이 등장한다. 판사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반말하는 어른에게는 반말로 응수하며 세상 어느것도 두려운 것 없는 10대의 모습은 박 감독이 봤던 사진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일진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전을 봤는데 우악스럽게 누구를 가해하는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 같은 날것인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되는게 아니라 원래 이런 성격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했다."며 주인공 캐릭터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감독은 주인공 '혜영'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제가 끌렸던 캐릭터였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가 아니다. 영리하게 계획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지금 있는거에 반응하며 있는 힘껏 최대한 짜내도 보통사람만큼도 안되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며 '혜영'이를 설명하며 "거기에 맞는 연령대를 추적하다보니 성장기에 있는 20살 직전의 소녀를 만들게 되었다."는 캐릭터 설정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여러 사건이 보여지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하고, 끝간데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가 어디까지 가는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며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 작품을 구상하게되었음을 밝혔다. 이렇게 애정을 느낀 캐릭터였기에 처음에 제목을 '용문신을 한 소녀'로까지 짓게 된 게 아닐까.

박 감독은 주인공 '혜영'의 끝모르는 행동을 '유치하다'고 정의했다. "이 아이의 행동은 굉장히 유치하다. 어른들의 말에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매사에 성숙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유치한 아이가 중후반부의 경험을 통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변해간다"라며 사방으로 거침없이 뻗어 규정하기 힘들었던 '혜영'의 캐릭터를 정리했다.


박 감독이 이번 작품을 만들며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은 '판타지를 걷어내자'였다. 앞서 캐릭터적인 측면에서도 '일진'에 대한 판타지를 없애기 위해 감정이입이나 당위성을 줄 수 있는 전사를 전혀 넣지 않았다는 박 감독은 스토리면에서도 최대한 담백하게 현실을 대입시키려고 했다. "어떤 관객은 '혜영'이 복수를 했다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복수도 일종의 판타지다. '혜영'은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냥 행동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사는 인물이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감옥에서 나오고 나서의 모습도 '혜영'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생활이었다."라며 의미부여를 하지 말고 봐 줄것을 당부했다.

박 감독이 '혜영'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소녀의 통쾌한 복수' 같은 의미에 억지로 무게를 두지 말고 그저 '진실이 있다고 믿고 그 진실을 알려고 하는 자'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집중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끝간데 없이 가는 아이지만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진실은 있다는 걸 아는 아이가 '혜영'이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정말 중요한 아이였고, 그래서 감옥에서 나온 뒤 피해자를 찾아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반드시 물어봐야 했다."며 영화의 후반부 장면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해당 장면은 박 감독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 영화에는 각자의 이유와 변명은 있지만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누군가는 사과를 했으면 좋겠고,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은석'이라는 캐릭터를 넣었다. 이 아이가 모든 일을 일으킨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인물이 있어야 해서 정말 필연적인 장면이었다"라고 이야기하며 "'은석' 캐릭터를 캐스팅할때도 위로가 되어주는 인물이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배우에게 했었다"며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다.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와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현실 폭주 드라마 '불도저에 탄 소녀'는 4월 7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제공 고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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