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이스퀸' 우승자 정수연이 왕관을 받아 들고 오열하며 외친 말이다. 꾹꾹 즈려밟아 토해낸 짧은 소감에는 무명의 설움부터 부모를 향한 효심, 홀로 키운 자식을 위한 희생, 앞으로의 결연한 각오까지 담겼다.
최근 대한민국 연예계에는 트로트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재야의 고수들이 하나둘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열풍의 중심에는 지난 1월 MBN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보이스퀸' 중의 퀸 정수연이 있다.
정수연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가수가 아니다. 모진 풍파와 역경을 딛고 내공을 쌓은 원석이다. KBS어린이 합창단을 시작으로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시절까지 노래와 함께했다. 이후에는 레아라는 활동 명으로 가수 무명의 암흑기를 거치면서도 노래라는 끈을 놓지 않은 그다.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이 보았듯, 충분한 실력의 노래 고수였으며 '보이스퀸' 취지에 맞는 신분을 지녔다. 이렇게 지원자로서 제격이지만, 정작 오디션 지원 직전 망설였다.
이유를 물으니 '싱글맘'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단다. 그는 1년 남짓의 결혼생활 이후 이혼해 홀로 여섯 살 아들 유하진을 키워 온 싱글맘이다. 정수연은 "주변 지인들이 많이 걱정하더라. 방송에 노출돼 아들 하진이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괜한 영향을 끼칠까 싶었나 보다. 사실 그게 현실이기도 했다"며 "어린 아이고, 쉽게 상처 받을 나이다. 항상 그래 왔다. 싱글맘이라는 게 그렇다. 난 이러한 신분이 죄가 아니고, 창피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매사 아이의 시선에 맞춰 고민하고 갈등한다"고 전했다.
'싱글맘'의 설움, 미루어 짐작하건대 여간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을 터. 정수연은 "동네에서 떳떳하지 못한 엄마다. 하진이 친구의 엄마들에게 밝히지 않고, 가깝게 교류하지 못했다. 난 남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아기가 집안 문제 탓에 상처 받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 털어놨다.
일상 곳곳에도 날 선 시선들이 존재했고, 엄마 정수연은 아들을 감싸 지키려 노력했다. 그는 "주말 집 앞의 놀이터만 가봐도 다른 집 아이들은 아빠랑 나와 논다"며 "하진이가 그걸 보고서 부러워하거나, 의아한 생각을 할까 봐 걱정스러웠다"며 "허전하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다. 엄마가 된 이후 내 입장은 항상 둘째였다. 아기가 내 인생의 첫 번째다.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이라고 전했다.
정수연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노래'와 잠시 이별했던 이유도, 자식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어찌 보면 무명의 설움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고충이 함께 몰아닥쳐 내 목을 옥죄였다. 찾아주질 않으니, 설 무대가 없는 게 당연하다. 노래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내 자식을 윤택하게 키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꿈과 엄마의 길 사이에 서서 아주 잠깐의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굉장히 쉽게 꿈을 포기했던 것 같다. 눈 앞에 하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울질할 문제도 아니더라. 당연히 내 자식이 나보다 먼저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혹여 노래와 나 사이에 인연의 끈이 맞닿아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만 어렴풋이 남겨뒀다. 그 길 끝에서 '보이스퀸'이라는 기회와 마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상이나 했을까. 정수연은 우선 프로그램의 취지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나는 주부다. 주부 중에서도 여섯 살 자식을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수많은 제약조건이 따라붙는 입장이다. 모집 공고에 쓰여있는 '주부만 출연 가능'이라는 단어는 빛과 소금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정말 오랜만에 자신감이라는 것을 얻은 계기였다"고 전했다.
여차저차 용기를 낸 정수연은 부모님에게 통사정해 아이를 맡기고, 딱 6개월 칼을 갈고 노래하겠다 선언했다. 딸의 눈이 빛나는 걸 본 부모님은 전폭 지원에 나섰고, 정수연은 '보이스퀸' 오디션장에 들어섰다. 이후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정수연은 "그간 없던 주부만을 위한 장이 펼쳐진 것이다. 노래하는 정수연에게 온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죽기 살기로 잡아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며 "예선 당시 제작진이 많은 곡을 요구하시더라. 우승은 상상도 못 하던 때였지만, 괜히 예감이 좋더라. 기분 좋은 상상도 나름 해봤다"고 말했다.
경연 중 우여곡절도 많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을 물으니, 정수연은 "남편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참가자들은 정말 부럽고, 한편으로 서러웠다. 괜히 나도 누군가와 통화하는척하고 밝은척했다. 기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 했다. 바쁜척하고, 친구 많은척하며 이겨냈다. 그리고 내 뒤에는 우리 하진이와, 부모님이 계셨잖나"고 전했다.
'보이스퀸' 무대를 통틀어 가장 화제가 된 곡은 정수연이 결승에서 부른 가수 인순이의 '엄마'였다. 이와 관련해 그는 "결승 주제가 '나의 어머니'였다. 제격이라고 생각해 선곡했다. 막상 연습을 하다 보니 불안감이 밀려왔다. 가사에 음정을 더하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고, 내 엄마 얼굴이 아른거렸다"며 "본 무대에 올라서도 많이 긴장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관중석 카메라에 잡히셨다. 내내 울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까 없던 힘까지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초인적인 힘이 발휘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정수연은 당당히 우승자의 왕관을 머리 위에 얹었다. 이후 그는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통곡했다. 왜 울었냐 물으니 "뒤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수연은 과거의 일화 하나를 전했다. 그는 "결혼 전부터 기부을 해왔다. 국내 결손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다. 아들 하진이를 후원자 이름에 넣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교육한 것"이라며 "그런데 내가 싱글맘이 됐고, 현실과 마주해 형편이 기울었다. 후원을 중지하며 정말 펑펑 울었다. 꼭 다시 후원하겠다고 나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결손가정, 싱글맘들이 살아가기는 아주 고되다. 나 역시 당사자로 팍팍한 현실을 겪어봐 너무나도 실상을 잘 알고 있다. 우승상금을 받게 돼 내가 노래하고 살 수 있게 해 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또 그로 인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을 다시 도울 수 있고, 살릴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덧붙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정수연의 인생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장 행복한 변화를 물으니, 그는 어김없이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 엄마가 노래하는 가수라는 것을 잘 몰랐었다. 매주 내가 TV에 나와 노래하고, 유튜브에서도 노래하니까 알게 됐다. 하진이 본인도 가수라고 생각하더라. 집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다. 하진이가 '카메라 삼촌들 언제 또 오냐'고 묻더라. 굉장히 좋아해 준다. 내 노래를 다 외웠을 정도다. 그렇게 감정을 담아 노래를 따라 해 준다. 1호 팬이나 다름없다"고 전한 정수연.
앞으로의 각오도 다부지다. 그는 심사위원이자, 대선배 인순이의 말을 따를 것이라고. 정수연은 "인순이 선생님은 모든 녹화를 마치고 무대 뒤에서 나에게 '왕관을 썼으니, 그 무게에 대한 책임을 져라. 넌 이제부터 진짜 여가수다. 손짓, 발짓, 몸짓을 신경 쓰고 살아라'라고 주옥같은 말씀 해주셨다"며 "그렇게 살아가며 목청껏 노래하겠다"고 다짐했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 iMBC 서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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