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울 게 많아 연기 수업을 듣는다는 배우 김선아. 데뷔 23년 차, 연기로는 이미 오래 전에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오른 그녀가 더 배울 게 있을까 의아한 마음도 잠시,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 담은 연기에 대한 열정에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결코 쉽지 않은 두 번의 연기대상 수상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배우 김선아를 만나 최근 종영한 '붉은 달 푸른 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청자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던 '붉은 달 푸른 해'는 배우들 역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던 드라마였다. 김선아는 "처음에 대본을 딱 읽었을 때는 '와, 재미있다!' 막 넘어갔다. 그런데 출연한다고 하고 차우경을 보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앞이 깜깜해지더라. 너무나 어렵고, 하나도 모르겠다고 감독님과 작가님 뵙고 그랬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들은 많은데, 이렇게 그 안에 감정이 들어 있는 작품이 많지가 않다. 이 안에 온전히 들어가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품이었다."고 시작 당시를 회상했다.
캐릭터에 푹 빠져들고나서도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 김선아가 연기한 차우경은 상처 입은 아이들을 상담하고, 끔찍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연쇄살인의 실체를 쫓으며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 따라서 몰입하면 할수록 김선아는 극중 인물이 처한 모든 상황을 함께 겪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에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있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초반에 교통사고 장면을 찍고는 몸살에 시달렸다. 밤에 악몽을 꾸고 식은 땀을 흘리면서 잠에서 몇 번이고 깼다. 아무래도 아동 학대를 한 사람들, 살인자들같은 평상시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보니까 저도 사람인지라 눈도 마주치기 싫을 때가 너무 많았다. 그런 상황들이 계속 되니까 감당하기가 버겁고, 아이들 장례식 가고 할 때는 정말 못 견디겠더라."
이렇듯 쉽지 않은 작업을 예상했으면서도 출연을 망설이지 않은 건 역시 대본 때문이었다. 김선아는 '진짜 죽여주는 대본'이었다고 한 마디로 압축했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10부 정도에 가도 2,3부 안에 있던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0.1%의 오차도 없는 촘촘함에 진짜 깜짝깜짝 놀랐다. 대단하다, 엄청나다 하면서 연기했다."는 극찬을 쏟아냈다. 심지어는 드라마가 이미 종영한 뒤에도 문득 대본을 다시 찾아보고, "촬영할 때는 이런 느낌으로 찍었는데, 이런 느낌이었을까."하며 다른 해석에 빠지기도 했다고.
애드리브가 끼어들 틈이 없었던 촬영들 와중에 김선아는 엄마 허진옥(나영희) 앞에서 무릎 꿇고 비는 장면을 떠올렸다. 원래 대본 상에는 차우경이 손을 비는 건 없었다고.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캐릭터에 몰입해 나온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김선아는 "차우경을 보면서 마음이 다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뺨을 맞고도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손을 빌었다."고 설명했다. 엔딩에서의 용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선뜻 공감하기 힘든 선택이었지만, 묵묵히 이 어른아이의 성장을 보여주고 또 다른 삶의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던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성공적으로 전달됐다.
배우들과 시청자들의 추리와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특히 '붉은 울음'의 정체는 출연 중인 배우들도 서로를 의심하게 했을 만큼 마지막까지 미궁 속에 빠져있었다. 일례로 김여진은 "선생님, 붉은 울음 아니에요?" 하는 동숙의 대사를 촬영하던 당시 실제로 우경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우경이 뭔가 수상하다는 반응이 일부 있었다. 김선아는 "규리나 학연이가 탐정들이 너무 많다며 토크방 같은 걸 보여줬다. 본방송을 보면서 이걸 켜놓는다는데, 어떻게 드라마 보면서 이렇게 빨리 이야기하는지 대단했다. 저를 의심하는 글들 보면서 '왜 나보고 이중인격이라는 거야' 웃기도 하고 재미있었다."며 촬영 뒷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김선아의 최근작들을 살펴보면 이처럼 어렵지만 배우로서 도전의식을 불태웠던 작품의 연속이었다. '품위 있는 그녀, '키스 먼저 할까요', '붉은 달 푸른 해'까지 어느 하나 가볍지 않았던 작품들을 쉼 없이 달려온 덕분일까. 김선아는 작년 연말 SBS 연기대상과 MBC 최우수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그 노력을 인정받게 됐다. 특히 이번 대상의 경우에는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13년 만에 다시 받은 대상이라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김선아는 "처음 대상을 받기까지도 10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대상을 받기까지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상이라는 건 너무 좋은 거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도 있는데 다음이 또 언제가 될 지 모르고 후보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럴수록 작품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기회만 되면 다양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며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그 이후를 내다봤다. '붉은 달 푸른 해'를 막 끝낸 지금 이순간에도 휴식보다는 차기작 출연에 대해 논의하며 빠른 복귀를 물색 중인 김선아다운 대답이었다.
여전히 시상식 후보에 오른 자신의 이름만 봐도 설렌다는 배우 김선아.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해야한다는 말에서 두 번의 대상을 이루어낸 그녀의 치열함이 절로 눈에 그려진다. 앞으로의 목표 또한 나태해지지 않고 미친듯이 노력하는 것. 이제는 10년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또 한 번 영광의 자리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