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의사들이 등장하는 ‘메디컬 드라마’는 아닌 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첫 방송을 마쳤다. 작품의 주인공은 종합병원 비정규직인 3년차 물리치료사 우보영(이유비)이다.
보영은 가련한 젊은 세대다. 병원 제공 기숙사에서 직장 상사와 함께 살아야 하고, 환자들에게는 별 소리를 다 듣기 일쑤다. 게다가 집안 사정은 어려워 정규직 전환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로, 동료들에게도 동정받고 있다.
1화에서는 이런 보영 밑에 대학시절 동기 신민호(장동윤)와 김남우(신재하)가 실습생으로 들어오고, 학생 때 민호에게 좋아하는 시를 써 주며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인 보영의 슬픈 사연이 공개됐다. 친절직원으로 선발돼 회식까지 쏘고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선발이 취소돼 슬퍼하는 보영이 환자들이 써 준 추천 카드들과 거기에 적힌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1화 내내 거의 등장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 예재욱(이준혁)이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Good
-따스한 시로 녹이는 고단한 삶…’절절한 공감’ ★★★★★
-우리도 주인공, ‘물리치료사’ 세계의 새로운 조명 ★★★★★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가운을 입은 ‘훈남훈녀’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드라마의 분위기는 ‘하얀거탑’이나 직전 동시간대 방영작인 ‘크로스’ 같은 메디컬 드라마와는 아주 다르다.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인생의 고단함에 지쳐 있다. 주인공 우보영은 물론, 대학시절 동기 남우는 10년 전 집이 폭삭 망해 단 하나 있는 ‘악어셔츠’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입고, 철없어 보이는 민호 역시 맞지 않는 진로 때문에 고민한다. 또 영상의학과의 한주용(박선호)은 교수의 꿈을 품고 있음에도 의사들에게 “기사 양반”이라고 불리며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누구든 조금씩은 살면서 가슴 속에 맺히는 응어리들이 있다. 극중 캐릭터들 중 하나쯤은 현재의, 또는 과거의 내 청춘에 맺힌 것과 비슷한 응어리를 품고 있을 듯하다. 주인공 보영이 ‘친절직원 추천 카드’에 적힌 시를 통해 얻는 위로는 보영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본 모든 시청자들의 고단함을 녹였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항상 주인공인 의사들에게 가려져 있던 물리치료사를 비롯한 ‘코메디컬 스태프(comedical staff)’들이 주역으로 조명되는 점은 신선함을 안겼다. ‘매번 조연’이었던 이들이 주연이 된 데다, 의외로 속깊은 선배인 김대방(데프콘)이 무례한 의사들에게 날리는 “같은 의료인인데 서로 존중합시다, 의사 양반”이라는 말은 이 드라마의 주제를 담은 ‘사이다’ 발언이었다.
2화부터는 동료의 얼굴에 대놓고 “나한테 관심 갖기 전에 양치질부터 하라”고 일갈하는 예재욱(이준혁)이 예고에서부터 ‘직진남’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Bad
-현실적이어야 하는데…뭔가 비현실적인 캐릭터들
-결과가 예상되는 코믹 신은 과감히 줄여도 좋을 듯?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시와 같은 드라마를 표방하는 만큼,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선 리얼함이 중요한 요소여야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현실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캐릭터들은 현실적이기보다는 정해진 웃음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1화에서는 그랬다.
무례한 의사에게 후배를 위해 한 방 날릴 줄 아는 영상의학과의 김대방은 막상 선택장애 때문에 회식 장소를 계속 바꾸며 벨을 수 차례 누르고도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지 않는 ‘민폐’를 끼친다. 물론 사람은 복합적인 존재이지만, 그 점을 고려해도 대방의 행동은 상식적이지 못했다. 굳이 그의 선택장애가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강조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또 보영의 친절직원 선발이 취소된 사실을 알고도, 누구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은 채 보영이 노래방에서 신나게 가무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상황 역시 실제 현실에선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후에 벌어지는 보영과 민호의 격투(?) 장면 역시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웃음을 위해 상당히 과장돼 있다.
또 코믹한 장면들 또한 대부분 다음 장면의 전개가 예상되는 것들이었다. 회식에서 빠져 경리단길에 가고 싶었던 민호가 남우에게 보낼 카카오톡 메시지를 단체 톡방에 잘못 전송하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장면 등은 일종의 ‘클리셰’와 같은 느낌이었다. 굳이 웃음을 주기 위해 뻔하거나 작위적인 상황을 넣기보다는 공감에서 터져나오는 ‘현웃’을 기대하고 싶다.
iMBC연예 이예은 |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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