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처럼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기만 했던 사람도 사랑에 빠지고 나면 어딘가 나사 하나쯤 풀려버린 것처럼 빈틈을 보이게 된다. 특별할 일이 없는데도 자주 웃음을 흘린다거나 멍하니 딴생각을 하는 경우는 물론, 손쉽게 처리하던 일들에도 실수가 잦아진다.
"바보가 됐나?"
평소 그의 모습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시스템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또 그가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만 하는 직장동료나 상사라면 그의 실수들을 수습하느라 분노의 게이지가 높아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해해 주도록 하자. 그의 인생에도 찾아오고야만 것이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고만다는 그것! 바로 '사랑'이라는 치명적인 버그가 말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천재 게임 개발자부터 돈과 주먹밖에 모르는 조폭, 다혈질의 가상 인격, 그리고 전설 속 구미호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게도 과연 사랑이 찾아오긴 할까?' 싶었던 드라마 속 인생들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 그리고 그 앞에 달라진 그들의 표정들을 살펴봤다.
1. <운빨로맨스> - 제수호
'운명'이나 '미신'따위는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분명한 원인과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 이성과 논리의 집합체 제수호(류준열). 낯선 타인과 만남을 극도로 꺼려하는 대인 기피증과 사회성 결여 증상이 있으며,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배려나 이해따위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 천재답게 그녀(심보늬)를 향한 집중력이 대단하다. 하루종일 그녀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 세계 전체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의 눈에는 그녀밖에 안 보이고, 귀에는 그녀 목소리만 필터링되어 들려온다. 웃음이라고는 지어본 적 없는 입술이 계속 귀에 걸려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 자체가 없던 감정조차 기복이 심해져 쉽게 화를 내거나 우울함을 반복하기도 한다.
2. <구가의 서> - 구월령
사람이 되고 싶어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했다는 백년 묵은 여우 구월령(최진혁). 인간에 대해 호기심이 많지만, 아직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 탓에 살육에 망설임이 없는 금수의 본능이 남아았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후로는 인간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과 비범한 힘으로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섬뜩한 대상이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 날카로운 발톱은 숨기고 순진무구한 청년으로 돌변, 여우가 아니라 곰의 모습이 된다. 그녀(윤서화)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져다주고, 그녀를 웃게 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많이 선물한다. 그녀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일도 다반사.
3. <그녀는 예뻤다> - 지성준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의 직장상사 지성준(박서준). 젊은 나이에 빠른 승진으로 업무능력을 인정받을만큼 지독한 워커홀릭인데다 인정따위는 봐주지 않는 날카로운 결단력의 소유자다. 바쁜 업무로 인해 외모에 신경쓸 여유가 없을만도 하지만, 패션업계 종사자답게 패션 스타일 센스마저도 완벽해 흠잡을 데조차 없다. 부하직원의 자존심을 순식간에 짓밟아버리는 무자비한 독설과 무능한 사람을 벌레보듯 하는 특유의 표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 주근깨 곱슬머리에 누가 봐도 못난이인 그녀(김혜진)를 향해 하루종일 눈빛 하트 자동발사. 입에서는 독설 대신 "귀여워~"라는 혼잣말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며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그의 일상은 그녀의 충고를 잊지 않고 챙기는 순종적인 삶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급 감성의 소유자로 돌변한다.
4. <남자가 사랑할 때> - 한태상
고리대부업을 주업으로 하는 조직폭력배의 2인자 한태상(송승헌). 배운 것이라고는 폭력으로 사람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일이 전부요,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삶은 생각해 본적 없는 무미건조한 삶. 어두웠던 어린시절은 그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고, 그의 인생에서 '내일'이나 '미래' 같은 단어는 제거된 지 오래다. 웃음기라고는 지어본 적 없는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 사람을 때리던 손에 책이 들린다. 그녀(서미도)를 생각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그녀와 함께하는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한다. 그녀를 웃게 하기 위해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장난도 서슴치 않는 것은 물론, 신의와 복종을 생명으로 하는 조폭의 생리에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그녀의 배신과 거짓말 만큼은 믿지 않으려는 현실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5.<킬미힐미> - 신세기
분노의 감정을 담당하는 차도현(지성)의 첫 번째 인격.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인간들을 향해 폭발시키는 분노가 좀처럼 제어되지 않아 언제나 사고의 중심에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물론 이해따위는 하려고 들지 않는 이기적인 성격이며, 오직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해 있는 미성숙한 인격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을 때?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과 같은 닭살 돋는 맨트를 서슴치 않을 뿐 아니라 그녀(오리진)의 마음을 갖기 위해 귀여운 앙탈을 부리거나 때를 쓰기도 한다. 매우 감정적이고, 유치하며, 시기와 질투가 대단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괴로워 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필수장착하던 강렬한 아이라인과 각 잡아 세팅한 머리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30여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사람의 틈새를 어느 순간 파고들어가 순식간에 무너뜨리다니 말이다. 당신 주위에도 지금 있는가? 완고했던 당신의 마음 속을 깊이 파고들어가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시켜줄 그 상대가? 아니면 당신이 누군가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타고난 운명과 인생까지 뒤바꿀만큼 신묘막측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운빨로맨스>는 매주 수, 목 저녁 10시에 방송된다.
iMBC연예 취재팀 | 화면캡쳐 MBC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