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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안고 질주하는 <베토벤 바이러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지상 최후의 낙원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사들인 땅이다. 당시 미국인들은 알래스카를 사들인 데 앞장선 국무장관 스워드를 비아냥거리며 알래스카를 ‘스워드의 냉장고’라 조롱했고, 스워드는 줄곧 알래스카 매입이 실패한 거래라고 비난받았다. 30년 후,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터진다. 일확천금을 좇는 전 세계인이 알래스카로 모여들며 알래스카는 일약 판타지의 땅으로 급부상했고, 이를 ‘골드러시’라 부른다. 골드러시가 형성한 다양한 루트들은 이후 알래스카를 관광의 천국이자 자원의 보고, 전략기지의 요충지로 급부상시킨다. 2008년 말, 대한민국 브라운관에서도 골드러시가 터졌다. 바로 드라마 종영 이후 더 큰 신드롬을 일으키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다.




 


베토벤 바이러스 하나. 드라마, 새로운 흥행공식을 성립하다

평균시청률 19.1%, 최고 시청률 26.8%(TNS미디어 수도권 기준)로 2008년 드라마 시청률 순위 19위.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전문가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 1위에 등극했고, 주연을 맡은 강마에 역의 김명민은 이견 없이 2008년 MBC 연기대상을 차지했다. 냉소적이지만 낭만과 매너가 있고 독설 속에 진정성이 담긴 새로운 악역 캐릭터 강마에 역의 주연 김명민을 필두로 집안일에 치여 음악을 잊고 산 정희연 역의 송옥숙,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박혁권 역의 정석용, 재능은 있으나 가난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하이든 역 쥬니, 밤무대 출신 배용기 역의 박철민, 나이 때문에 음악을 포기해야 했던 김갑용 역의 이순재 등 명품 조연들이 그려 낸 꿈을 찾는 여정의 핵심은 바로 음악. 더군다나 대중에게는 아직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클래식을 소재로 삼아 국내 드라마의 소재 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새로운 소재가 이룩한 장르의 확장과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악역 캐릭터의 탄생, 그리고 명품 조연들의 호연. <베토벤 바이러스>의 성공요인이 지닌 드라마적 의미는 기존 드라마 흥행공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흥행공식의 성립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흥행의 필수요건인 출생의 비밀, 불치병, 재벌가, 고부간의 갈등은 물론 드라마 성립의 절대요소로 취급받던 멜로조차 과감하게 포기했다. 작위적 설정이 만들어 낸 인간 대 인간의 갈등으로 집약된 드라마의 속성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에 이르러 현실과 꿈, 인간의 외면과 내면의 원론적인 갈등으로 구체화되며 인간의 본능적 속성을 심도 있게 고찰하는 길을 열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드라마는 다양한 장르, 새로운 전개, 독특한 관점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향후 제작될 새로운 도전정신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과 만나기가 보다 수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토벤 바이러스 둘. 클래식, 대중과 친해지다

드라마 속 명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 <베토벤 바이러스-더 클래식스 Vol.1>이 3만7천여 장 이상 판매되며 2차 제작 판매에 들어갔다. 국내 클래식 음반의 경우 1만6천 장 이상 판매되면 최고의 판매량을 뜻하는 ‘플래티늄’으로 기록된다. 드라마 최초로 배우의 이름을 내건 클래식 음반 <김명민의 클래식 마에스트로>는 예약 판매에서만 선주문 1만 장을 돌파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후폭풍이 거세다. 드라마의 여운을 담은 음반들이 메가톤급 대박을 터뜨리며 <베토벤 바이러스>로 고조된 대중의 클래식 사랑을 증명하고 있다. 극중 강마에를 연기한 김명민의 실제 지휘 선생님 서희태 음악감독은 드라마 속 석란시향 단원들로 출연하기도 했던 ‘베토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베토벤 바이러스>에 삽입된 클래식 명곡들을 공연했으며, 클래식 입문서인 <베토벤 바이러스>를 출간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이 모집한 ‘시민 체임버 앙상블’은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고, 온라인 옥션에서는 2008년 10월 악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이상 증가했으며, 각종 클래식 공연 티켓 판매 역시 성황을 이루고 있다. 드라마 한 편이 일궈 낸 성과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파급력이다. 이러한 단편적인 성과보다 더욱 주목받아야 할 변화는 대중과 친숙해진 클래식의 변신이다. 기본 감상법부터 작품 분석까지 제공하는 클래식 해설 공연이 연달아 기획되는가 하면 공연기획사들의 티켓 가격이 저렴해지고 학생석이 대폭 늘어나며 클래식계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관문인 ‘대중과 친숙해지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일상과 클래식의 만남으로 대중은 향유할 수 있는 고급문화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로부터 시작한 클래식계의 변화는 잘 만들어진 대중매체가 대중문화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예다.







베토벤 바이러스 셋. 마니아, 문화를 선도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선정 2008년 10대 히트 상품 <베토벤 바이러스>. 드라마 신드롬이 이룩한 경제적 효과를 반영한 결과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 시청자층이 20~30대 젊은 남녀 계층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들은 일일드라마의 열혈 시청자인 중년여성들과 사극의 고정 시청자인 중년남성들, 트렌디 드라마를 사수하는 10대 청소년층에 이어 새롭게 부상한 시청자 계층이다. 이제까지 이들이 지지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10% 미만의 낮은 시청률과 지속적인 충성도를 기록하며 소위 ‘마니아 드라마’로 자리 잡아 왔다. 기존의 드라마 공식에 비추어 볼 때, 마니아 드라마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했던 <베토벤 바이러스>가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20~30대 젊은 계층들이 분출한 문화 파급력이다. 이들은 UCC와 패러디 등 인터넷상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놀 거리’를 만들어 중년 시청자들 보다 활발한 드라마 콘텐츠 재생산에 기여하며 홍보력을 확보했고, 10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구매력으로 드라마 안팎의 수많은 장치들을 히트시켰다. 특히 방영 초반 같은 장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아류작이라는 오명을 썼던 <베토벤 바이러스>를 철저한 우리의 이야기로 정착시킨 것 역시 이들 마니아다. 이른바 ‘일드’ 세대인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 시청자들은 인터넷상에서 두 드라마의 비교분석을 활발하게 펼치며 <베토벤 바이러스>의 문화적 독자성을 구축했고, 문화 소비를 통해 <베토벤 바이러스>를 ‘팔리는 아이템’으로 성장시켜 독자적인 문화라는 자존심을 갖게 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성공은 콘텐츠 재생산과 구매력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의 주체로 자리 잡으며 문화를 선도할 만큼 자란 마니아 계층의 성장을 보여 준다.




 


‘스워드의 냉장고’라고 비난받았던 알래스카처럼,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최초 기획 당시의 평가는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국내 드라마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승산 없는 싸움이라 하여 투자 유치에 애를 먹었고,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에서조차 ‘버린 카드’였다고 한다. 판타지를 상징하는 ‘꿈’과 남루함을 상징하는 ‘현실’의 접점에 서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우여곡절 끝에 쟁취한 드라마의 방영과 성공은 드라마의 내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모두가 외면했던 <베토벤 바이러스>가 터뜨린 골드러시는 드라마 전반의 역사에, 음악계의 반향에, 문화의 흐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베토벤 바이러스>는 그 자체만으로 꿈과 판타지의 상징이자 은유로 기억된다. ‘꿈’이라는 판타지를 일상의 영역으로 재창조한 <베토벤 바이러스>. 오늘도 베토벤 바이러스는 꿈을 안고 질주한다. 이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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