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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작'S 사적인 방송] 보고 또 보고, 맛집 소개는 언제나 재방송




오늘 점심메뉴도 실패다. 허름한 집이 맛있다는 후배의 조언에 들어간 집에서 허름한 음식을 먹은 지 불과 하루 만에 또 실패한 것이다. 이번엔 방송 3사도 모자라 케이블까지 점령하신 맛집이라 안심하고 갔는데 결과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아님 그 방송사 작가들의 혀가 고된 노동으로 마비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솔직히 그동안 회사에서 일할 땐 촬영을 제외하곤 점심 메뉴를 고민한 적이 없다. 구내식당의 ‘오늘의 메뉴’만 확인하고는 양식과 한식 둘 중 하나만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오늘은 두 개 중에 어떤 게 더 맛있을지만 고르면 끝이었다. 그런데 요즘 복지 정책이 살짝 바뀌면서 밖에서 사 먹을 일이 부쩍 늘어 버렸는데 점심메뉴로 고민한다는 직장인들의 고충을 이해할 것 같았다. 오늘도 ‘밥심’으로 버텨야 하기에, 어쩌면 이 한 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불상사가 종종 있기 때문에 탁월한 점심메뉴를 찾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맛집 관련 방송들이다. 파워 블로거들이 인터넷을 장식하는 요즘 검색창에 ‘홍대 김치찌개 잘하는 집’ 정도만 치면 맛깔 나는 사진과 함께 수 페이지를 쏟아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가제는 게 편이라고 나는 방송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방송에서 알려 준 곳에서 음식을 먹어보면 5번 방문에 2번 정도로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왜일까? 혹 방송용 맛집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는 걸까? 



얼마 전 옆 나라 일본에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음식점 안내서로 평가받는 <미슐랭 가이드>의 일본 교토ㆍ오사카 판이 출간되었다. 유럽에선 미슐랭 가이드에 실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음식점이 있을 정도로 그 선정과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미슐랭 측은 2007년부터 약 2년 동안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평론가들을 채용해 그 공정성과 문화를 최대한 반영해 책을 만들었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런데 별 셋의 평가를 받은 일부 음식점들이 가이드북에 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게재를 거부했다. 400년 역사를 지닌 교토의 일본 전통요리점 '효테이(瓢亭)' 주인은 단골손님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게재를 거부했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별 1개 점수를 받고 게재된 한 식당 주인은 사진 촬영을 거부하며 "손님의 평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며 미슐랭에는 관심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점수를 많이 받은 식당과 적게 받은 식당 모두 공통적으로 맛에 대한 평가는 손님에 의해서지 유명 언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맛집 코너에 한 번이라도 방송을 타게 된다면 인쇄된 방송 장면이 벽지보다 더 많이 벽에 도배되고 사방에 걸려지는 현수막에 간판에 방송사 로고가 새겨지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사장님의 얼굴이 되고 훈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매번 각종 신문, 잡지, 방송을 리서치하며 재방송을 만들어내는 우리 탓인 것이다.



사실 맛집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그렇다면 직접 가서 먹어봐야 하나? 사람 입맛이 다 제각각인데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물며 작가진이 수적으로 부족하다. 취재기자와 방송작가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기자가 직접 사전 답사를 통해 취재를 하며 먹어보고 평가하는 칼럼니스트의 역할을 한다면 방송작가들은 맛집 사전 조사를 하기엔 제작비 쪽으로 힘든 시스템에 속하다 보니 사람들의 입 소문으로, 미디어에 노출된 횟수로, 맛집 사장님의 이야기로 조사가 이뤄진다. 물론 일반 아이템들도 직접 일일이 확인해볼 수 없긴 하지만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맛집 소개는 적당한 기준이 없다. 그리고 누가 먹어도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맛집은 이미 방송을 많이 탔기 때문에 민망해서 섭외를 못하고 최근의 인기 있는 맛집을 찾느라 여기저기서 보고 들었던 곳을 전전하다 보니 뜻하지 않은 재방송이 계속되는 것이다. 혹여 케이블방송에 팔려서 여기저기서 방송되다 보면 몇 년 전 맛집이 지금도 맛집으로 소개되는데, 특히 음식 맛의 비결이 ‘미원’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할머니를 케이블에서 볼 때마다 정말 속이 뜨끔해진다. 미원 할머니 첫 방송을 내가 하고 난 후, 내 방송을 본 다른 작가들이 낚여서 방송을 만들고 또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 탄 직후 권리금만 받고 가게를 팔아버리는 사장님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맛이 바뀌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가게가 속출했으며 게시판에 ‘진정한 맛집이냐’라는 불만 섞인 글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에서 수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음식점들 속에서 맛집을 알려주는 가이드가 되어야 하는 방송이, 권력이 되어 손님들 줄 세우는 데만 급급해 하고, 맛의 비결을 미원이 아닌 ‘밝힐 수 없는 비법’이라고 소개하며 그럴 듯한 컷을 붙여서 맛있는 말들로 대본을 써 넣고 보기에만 그럴 듯해 보이는 방송을 만들고 있으니. 간사하게도 내가 직접 맛집 찾아다녀 보니 그 마음을 알겠다. 아, 내일 점심은 현란한 방송 간판에 속지 말자 다짐하지만 분명 발걸음은 그리로 향할 것이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부디 먹고 체하지나 말아야 할 텐데. 글 엄영란(방송작가, 칼럼니스트)|사진제공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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