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어쩔 수가 없다'로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인 캐릭터와 경계를 허무는 도발적인 서사, 매혹적인 미장센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그는 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62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까지 한국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세 차례 본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거장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관객이 질문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 한국 중산층의 삶에서 최저선은 어디인지, 어느 정도 삶을 영위해야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이 남자가 지키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은 무엇보다 관객들이 가장 의문을 던질 만수의 살해 동기를 직접 짚었다. "집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에서 관객이 납득하도록 만드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 가령 노모의 수술비가 필요하다거나, 장기 이식이 시급하다거나, 너무 큰 빚 때문에 곧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상황을 설정하면 된다. 애들이 굶게 생겼다, 가족 중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식으로 만들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준다. 하지만 저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핵심은 만수의 행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 관객이 끝까지 그 질문을 붙들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라며 만수의 살해 동기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만수는 절박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어리숙하고, 범죄를 피하려는 쪽으로도 한 발씩 물러서 있다. 이병헌이라는 호소력 강한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도 그 양가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저는 관객이 영화 내내 '저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곧바로 '그래도 살인은 안 되잖아'라며 선을 긋게 하고 싶었다. 범모에게 만수가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고 짐이라도 날라라'라는 말을 하는 장면도 굳이 집어 넣었다. 관객이 그 대목에서 끄덕끄덕하면서 '너야말로 왜 안 그러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었다. 상반된 두 가지 길이 나란히 평행선을 이루고 간다. 관객이 만수에게 마음을 줬다가 다시 마음을 거둬들였다가를 반복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고 말했다.
만수를 보는 관객들의 생각을 동감과 이해 불가로 나뉘게 하는 두 트랙으로 나누는 건 상업영화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모든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말해온 게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하며 "그걸 위해서는 카메라와 피사체, 인물과 관객 간의 고리를 적절히 조절하려 한다. 다가갔다 멀어지고를 반복하며 영화를 음미하고,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얻어보게 만드는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제 영화 인생의 목표다"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이야기했다.
엔딩을 두고도 "저는 거리를 두는 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제가 관객이라면, 아내와 아들이 이미 남편의 살인을 알아버린 상태에서 어떻게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거다.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아이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남는다. 엄마가 거짓말로 봉합은 했지만, 아들은 믿는 척하지만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수 역시 새 출근길에 찜찜한 마음을 안고 떠난다. 새 직장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마지막 퇴장 장면에서 AI가 불을 자동으로 꺼버리는 건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인간과 싸워 이겨 일자리를 얻었지만, 결국 허망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분명히 면접관이 만수에게 이 일은 시험가동이라고 했고 언젠가 또다시 실직의 시간이 올 텐데, 그때 만수는 어떻게 붕괴될지, 가족도 잃고 일도 잃고 모든 걸 잃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전했다.
상징적 이미지에 대해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분재는 작은 화분 안에 우주를 축소해 담는 일이다. 어떤 작품은 나무 한 그루만 있지만, 어떤 건 바위와 작은 나무들까지 들어 있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런데 그것은 인위적이다. 사실 온실이 있고 그 안에 뭘 채워 넣어야 하는데 미술감독이 분재를 넣겠다고 하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분재를 가만히 보니 잘라내고 구부리고 억지로 모양을 만든다. 가장이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과 닮았더라. 애지중지 관리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자기 뜻대로 휘어버리는 폭력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분재를 만수가 하면서 감정적일 때는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장면까지 넣게 되었다. 분재는 예쁘지만 동시에 폭력적 뉘앙스를 가진 상징이 된다"고 말했다.
만수의 치통 역시 단순한 장치가 아니었다. "저는 각본을 쓸 때 상징을 의도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드라마에 필요해서 넣었다. 만수는 고집이 세고, 자꾸 잘 작동하지 않는 농담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석 달 안에 취직할 거니 치과 치료는 그때 하겠다'라는 말은 그런 고집스러운 면을 드러낸다. 그래서 치통을 넣었는데 나중에는 비유로도 기능한다. 현실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그 사람을 보여주는 장치다"라고 설명했다.
주거 공간 설정에 대한 답변은 특히 흥미로웠다. 만수를 비롯한 만수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들이 다들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에 사는 것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한국영화니까 아파트가 많이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이 아파트에 사는 건 아니다. 이번 영화의 인물들은 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방 소도시에는 아파트보다 주택이 더 많다"라며 전작 각본 단계에서 빠진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원래는 아파트 거주자 캐릭터도 있었다. 새벽에 조깅을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만수가 죽이려던 사람 중 하나다. 그 인물이 뜻밖에도 만수를 먼저 알아보게 된다. '몇 년도 펄프맨 수상자가 아니냐'라며 알아보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작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는 말까지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만수가 '안 죽여도 되겠다'며 무릎을 꿇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다니는 회사가 너무 보잘것없다며 곧 때려치우고 다른 데 취직해야겠다는 말을 하고, 그 때문에 결국 또 죽이게 된다. 이 장면을 넣으면 연쇄살인이 네 명이 되는데, 그러면 관객이 '언제 끝나나' 시계를 볼 수 있어 뺐다. 그리고 1명은 아라가 죽이고, 나머지 2명은 만수가 죽이는 걸로 3명까지는 어떻게 이해가 되지만 4명까지 죽이는 거면 너무 끔찍한 연쇄살인마가 아닌가. 그래서 그 부분은 생략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에서는 만수와 경쟁자들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고시조 캐릭터와 만수가 같은 아반떼를 몰고, 둘은 똑같이 딸에게 애틋하다. 범모와 선출의 경우 같은 곱슬머리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이다. 공통적으로 주택과 자연을 좋아하는 인물들이고,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집에 사는 식으로 공통점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어쩔 수가 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믿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인 캐릭터와 경계를 허무는 도발적인 서사, 매혹적인 미장센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그는 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62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까지 한국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세 차례 본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거장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관객이 질문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 한국 중산층의 삶에서 최저선은 어디인지, 어느 정도 삶을 영위해야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이 남자가 지키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은 무엇보다 관객들이 가장 의문을 던질 만수의 살해 동기를 직접 짚었다. "집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에서 관객이 납득하도록 만드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 가령 노모의 수술비가 필요하다거나, 장기 이식이 시급하다거나, 너무 큰 빚 때문에 곧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상황을 설정하면 된다. 애들이 굶게 생겼다, 가족 중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식으로 만들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준다. 하지만 저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핵심은 만수의 행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 관객이 끝까지 그 질문을 붙들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라며 만수의 살해 동기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만수는 절박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어리숙하고, 범죄를 피하려는 쪽으로도 한 발씩 물러서 있다. 이병헌이라는 호소력 강한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도 그 양가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저는 관객이 영화 내내 '저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곧바로 '그래도 살인은 안 되잖아'라며 선을 긋게 하고 싶었다. 범모에게 만수가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고 짐이라도 날라라'라는 말을 하는 장면도 굳이 집어 넣었다. 관객이 그 대목에서 끄덕끄덕하면서 '너야말로 왜 안 그러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었다. 상반된 두 가지 길이 나란히 평행선을 이루고 간다. 관객이 만수에게 마음을 줬다가 다시 마음을 거둬들였다가를 반복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고 말했다.
만수를 보는 관객들의 생각을 동감과 이해 불가로 나뉘게 하는 두 트랙으로 나누는 건 상업영화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모든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말해온 게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하며 "그걸 위해서는 카메라와 피사체, 인물과 관객 간의 고리를 적절히 조절하려 한다. 다가갔다 멀어지고를 반복하며 영화를 음미하고,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얻어보게 만드는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제 영화 인생의 목표다"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이야기했다.
엔딩을 두고도 "저는 거리를 두는 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제가 관객이라면, 아내와 아들이 이미 남편의 살인을 알아버린 상태에서 어떻게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거다.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아이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남는다. 엄마가 거짓말로 봉합은 했지만, 아들은 믿는 척하지만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수 역시 새 출근길에 찜찜한 마음을 안고 떠난다. 새 직장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마지막 퇴장 장면에서 AI가 불을 자동으로 꺼버리는 건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인간과 싸워 이겨 일자리를 얻었지만, 결국 허망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분명히 면접관이 만수에게 이 일은 시험가동이라고 했고 언젠가 또다시 실직의 시간이 올 텐데, 그때 만수는 어떻게 붕괴될지, 가족도 잃고 일도 잃고 모든 걸 잃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전했다.
상징적 이미지에 대해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분재는 작은 화분 안에 우주를 축소해 담는 일이다. 어떤 작품은 나무 한 그루만 있지만, 어떤 건 바위와 작은 나무들까지 들어 있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런데 그것은 인위적이다. 사실 온실이 있고 그 안에 뭘 채워 넣어야 하는데 미술감독이 분재를 넣겠다고 하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분재를 가만히 보니 잘라내고 구부리고 억지로 모양을 만든다. 가장이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과 닮았더라. 애지중지 관리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자기 뜻대로 휘어버리는 폭력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분재를 만수가 하면서 감정적일 때는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장면까지 넣게 되었다. 분재는 예쁘지만 동시에 폭력적 뉘앙스를 가진 상징이 된다"고 말했다.
만수의 치통 역시 단순한 장치가 아니었다. "저는 각본을 쓸 때 상징을 의도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드라마에 필요해서 넣었다. 만수는 고집이 세고, 자꾸 잘 작동하지 않는 농담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석 달 안에 취직할 거니 치과 치료는 그때 하겠다'라는 말은 그런 고집스러운 면을 드러낸다. 그래서 치통을 넣었는데 나중에는 비유로도 기능한다. 현실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그 사람을 보여주는 장치다"라고 설명했다.
주거 공간 설정에 대한 답변은 특히 흥미로웠다. 만수를 비롯한 만수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들이 다들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에 사는 것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한국영화니까 아파트가 많이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이 아파트에 사는 건 아니다. 이번 영화의 인물들은 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방 소도시에는 아파트보다 주택이 더 많다"라며 전작 각본 단계에서 빠진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원래는 아파트 거주자 캐릭터도 있었다. 새벽에 조깅을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만수가 죽이려던 사람 중 하나다. 그 인물이 뜻밖에도 만수를 먼저 알아보게 된다. '몇 년도 펄프맨 수상자가 아니냐'라며 알아보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작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는 말까지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만수가 '안 죽여도 되겠다'며 무릎을 꿇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다니는 회사가 너무 보잘것없다며 곧 때려치우고 다른 데 취직해야겠다는 말을 하고, 그 때문에 결국 또 죽이게 된다. 이 장면을 넣으면 연쇄살인이 네 명이 되는데, 그러면 관객이 '언제 끝나나' 시계를 볼 수 있어 뺐다. 그리고 1명은 아라가 죽이고, 나머지 2명은 만수가 죽이는 걸로 3명까지는 어떻게 이해가 되지만 4명까지 죽이는 거면 너무 끔찍한 연쇄살인마가 아닌가. 그래서 그 부분은 생략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에서는 만수와 경쟁자들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고시조 캐릭터와 만수가 같은 아반떼를 몰고, 둘은 똑같이 딸에게 애틋하다. 범모와 선출의 경우 같은 곱슬머리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이다. 공통적으로 주택과 자연을 좋아하는 인물들이고,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집에 사는 식으로 공통점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어쩔 수가 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믿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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