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 이 사건에 얽힌 용의자를 추적하며 밝혀지는 인간의 욕망과 진실을 다룬 미스터리 사건극이었던 '미쓰리는 알고 있다'는 강성연과 조한선을 필두로 전수경, 우지원, 김예원 등 실력있는 조연들이 출연하며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비록 짧은 4부작이었지만 흐트러짐 없이 우직하게 여러 인간군상을 끌고 나갈수 있었던 데는 연출자의 어떤 의지가 있었던 걸까?
A. MBC드라마 극본공모전에서 수상된 우수작이었다. 회사의 시스템으로 극본공모전의 수상작과 입봉 연차의 연출자를 매칭시켜서 대본을 개발하고 방송을 하게 하는 프로세스가 있어서 제가 입봉작으로 이 작품을 하게 되었다. 대본의 뒷부분이 너무 좋았다. 각 호수별 사는 사람들의 삶의 디테일한 부분을 작가님이 잘 담아주셨고,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것뿐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이 재건축이라는 이슈와 맞물려 있어서 이 작품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Q. 첫 연출작은 개인적인 드라마에 대한 주제의식이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시나?
A. 모든 드라마가 주제의식이 있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주제의식은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미세한 순간을 디테일하게 들여다 보고 거기서 나오는 감정적인 울림이 있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모든 인간은 보여지는 앞면과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뒷면이 있다. 사람의 본질은 양면을 다 살펴보아야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남들에게 잘 안보여주는 면도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쉽게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한다. 그런 것에 대한 주제의식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런 미세한 관점이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어 연출을 결심했다.
Q. 드라마의 시작 부분에 "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는 르네 마그리트의 글을 담으셨더라. 이 작품의 메시지이자 연출자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가?
A. 작가님이 대본에 써 주신 글은 아니었다. 작가님은 '달의 이면'이라는 글로 주제 의식을 드러내셨는데 이 글은 최근 인사동에서 열린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서 따왔다. 평소 좋아했던 작가이기도 하고, 이 글이 주제의식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더라. 자세히 보시면 작품 곳곳에 전경 인서트로 달의 이미지가 보일 것이다. 직접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그렇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Q. 주연 배우들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다. 조한선, 강성연의 캐스팅 비하인드는?
A. 조한선 배우를 제일 먼저 캐스팅했다. 대본을 보시고 먼저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고, 4부작의 짧은 작품이었어서 배우의 의지가 중요했는데 그래서 바로 결정을 했다. 전작인 '빙의'도 봤고 '스토브리그'도 봤었는데 특히 '스토브리그'에서의 분위기나 연기톤이 '인호철'(극중 조한선의 배역 이름)과 흡사했다.
강성연 배우는 겉으로 보기엔 마르고 청초한 이미지지만 굉장히 힘이 좋고 에너지가 좋은 배우였다. '미쓰리'라는 인물이 삼에 대한 에너지가 강한 인물이고 모정 때문에 사선을 넘나들며 아들을 지키려는 인물인데 마침 육아도 하고 계셔서 너무 잘 이해하실 것 같았다. 첫 미팅때 하얀 옷을 입고 예쁘게 하고 오셨는데 아니나다를까 뒤에 '관우'라는 삼국지 캐릭터가 겹쳐져서 보일 정도로 에너지가 좋은 분이셨다.
Q. 김도환 배우는 수영선수 설정으로 몸도 굉장히 좋더라. 캐스팅 할때 몸을 만들라는 미션을 주셨었나?
A. '위대한 유혹자' 때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완전 신인이라 현장에서 긴장을 많이 했었다. 이번 작품에서 오디션을 했는데 그 사이에 몸도 많이 키웠고 성격이 완전 극중 인물하고 똑같았다. 칭찬을 해주면 좋아하고, 더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도 마초적이고 남자다운 에너지가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 자체였다.
Q. 관리소장 역할로 농구선수 출신 우지원을 캐스팅하셨다. 긴 작품의 카메오도 아니고 4부작짜리 임팩트 있는 작품에 캐스팅하신 이유는?
A. 관리소장 역할은 대본상 잘생기고, 듬직하고, 연상의 부인과 살고 있는 남편이고, 앞뒤 안 가리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젊은 김창완 선생님 같은 연기를 하시는 기성 배우 중에서 캐스팅할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캐스팅 디렉터가 우지원 선배를 추천했다. 제가 농구팬으로 우지원 선수가 해설가로 활동할 때 영상을 많이 봤었다. 그때의 오디오 톤이 제가 상상했던 관리소장의 역할과 흡사해서 만나뵈었다. 농구팬으로의 사심 담긴 캐스팅은 아니었고, 우지원 선배님도 농구 선수로서, 해설가로서 이제는 방송인으로서 그때 그때 치열한 삶을 살고 계신 분이셔서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 하더라도 허투로 하지 않으실거란 믿음이 있어서 캐스팅 했다.
Q. 다른 조연들도 캐스팅이 찰떡이었다. 배우들이 모두 제 역할을 충분히 잘 해줘서 '혹시 저들이 죽였나?'라는 의심을 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기대 이상이었던 역할은 누구인가?
A. 704호의 두 분이 너무 좋았다. 재건축 시공사를 노리는 병운건설 대표의 딸과 사위 역할을 한 김규선, 이기혁 배우가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셨다 김규선 배우와는 ‘호텔킹’때부터 봤었다. 연기를 참 잘하는 분이셨는데 늘 밝고 명랑한 부잣집 딸 역할을 많이 하셨다. 이번에도 부잣집 딸이긴 한데 반전 있게 악한 역할을 시켜보고 싶었다.
이명원 역할은 누가 봐도 스트레스가 많고, 지쳐있고, 사는게 팍팍할 것 같고 그래서 힘이 없어 보이는 오디오를 갖고 계신분을 찾았었는데 이기혁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Q. 연출하시면서 신경 쓴 부분이나 배우들에게 많이 주문했던 내용은 무엇인가?
A. 주연배우들 촬영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쓰긴 했다. ‘인호철’은 후회, 반성, 죄책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고 '미쓰리’는 비뚤어진 모정이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들의 특성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모순되는 말이긴 한데 '표정을 숨겨달라'는 요구를 많이 했었다. 뭔가 힌트를 줘야 하니까 표정을 보여달라고 해 놓고는 또 그걸 대놓고 할수 없어서 숨겨야 했다. 그러다보니 보여 달라 해 놓고, 숨겨달라고도 하고, 표정은 짓되 뒷통수를 찍는다거나 하는 식의 촬영을 많이 했다. 미묘한 표정으로 정면컷을 쓰고 표정이 완전히 드러나는 장면은 뒤통수컷을 쓰기도 했다.
Q. 4부작이었지만 중간중간 반전도 많았고 그런 반전을 위한 떡밥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한 장면도 허투로 볼 수 없겠더라.
A. 초반에는 스릴러 형태를 가지고 있었기에 떡밥을 많이 심어놨었다. 수진이 엄마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나 인호철이 '직접적인 증거는 알아서 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 미쓰리가 '15년을 키웠는데 내 새끼가 아냐?'라고 화 내는 장면, 총무가 '근데 6층에서 떨어져도 사람이 죽네요?' 했던 장면이나 명원이가 사무실로 찾아온 인호철에게 믹스커피를 건내는 장면 등이 다 떡밥이었다. 작가님이 대본에서 세심하게 잘 심어주셨다.
Q. 개인적으로 '이명원'이 '인호철'에게 형이라고 할때 충격이었다. 엄청 배신감도 느껴지고 이거 뭐지 싶으면서 이전까지 내가 본 장면 중에 뭘 놓친건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더라. 물론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며 놀라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연출자 입장에서 가장 큰 충격이 있길 바랬던 반전은 어떤 장면인가?
A. 역시 형제의 씬이었다. 스릴러의 형태를 가진 드라마가 쭉 가다가 형제라는 게 밝혀지면서 치정 휴먼드라마로 흘러간다. 거기서 드라마의 결을 뒤집어야 했다. '형 살려줘'라는 장면을 찍을 때와 뺑소니 사고 이후 다리 밑에서 만나 싸우는 장면도 한 씨퀀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장면들에서 인물의 관계에 대한 반전과 이해를 가져다 주려 했다.
Q. 극중에서 스릴러 답게 카체이싱 장면, 액션 장면, 자동차 사고 장면등이 연출되었었다. 특히 싸우는 액션의 경우 실제 난투극처럼 보여 현실성 있더라.
A. 카체이싱의 퀄리티는 시간과 돈에 비례한다. 드라마에서는 영화만큼 시간과 돈을 들일수가 없고, 나름 공들인다고 해도 영화와 비교해서는 상대가 안되더라. 그래서 나름대로 터득한 건 드라마에서의 액션씬은 컨셉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이런 드라마에서 갑자기 주인공들이 액션배우들 처럼 합을 맞춰서 싸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현실 싸움'을 컨셉으로 잡았다. 두 배우가 액션스쿨에 가서 일주일 내내 준비를 했고 대역 없이 단 두번 만에 오케이를 받았다. 둘 다 촬영 끝나고 온 몸에 멍이 들 정도로 준비를 완벽하게 해 왔더라. 카체이싱 장면은 만 하루를 촬영했었다. 인호철은 감으로 서태화를 추격하느라 미친듯이 자동차 경적을 울려가며 난폭하게 길을 뚫고 질주하는데 미쓰리는 뒤에서 앱으로 자기 아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인호철이 뚫어 놓은 길로 편안하게 쫒아가는 장면이었다. 그런 의도로 촬영한 장면인데 시청자들은 어떻게 레이가 K5를 따라가냐며 현실성 없다고들 하시더라.
Q. 반응을 되게 꼼꼼하게 모니터 하셨나보다.
A.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도 보고 실시간 톡도 보면서 반응을 모니터 했었다. 감사하게도 의도를 가지고 연출했던 장면들을 대부분 의도대로 봐 주셨고, 다음 회차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추리를 하시더라. 심지어 페이크로 심어 놓은 장면들도 귀신같이 알아채시고 '저건 일부러 헷갈리라고 넣은 장면 같다'라고 하시더라.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방송을 보면서 네티즌과 추리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Q. '궁 아파트'에 사는 인물들은 다 짠했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양수진을 죽인걸까봐 돈 보내달라는 문자 보내는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봉만래 노인이나, 엄마를 다치게 한 뺑소니 사고범을 찾기 위해 감정을 속이고 사랑하는 척 접근한 양수진이나, 그런줄도 모르고 재벌가에서 사람 대접 못 받는 게 서러워 양수진과 사랑에 빠진 이명원이나... 어디 그 뿐인가. 정말 불쌍한 사람들 투성이다.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누구인가?
A. 미쓰리라 생각한다.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정말 어렵게 아들을 찾아봐서 보모 역할을 하며 친자식을 키워왔는데 주변 뿐 아니라 자식에게도 엄마로 인정받지 못한 심정이 오죽하겠나. 드라마 마지막에 미쓰리의 과거사가 나오면서 왜 이 인물이 그렇게 앞뒤가리지 않고 '서태화'의 일에 뛰어 들었는지가 설명이 된다. 미쓰리가 사실 아들을 위해 했던 짓은 상당히 무리스러운 일들이었다. 요즘 말로 '노빠꾸'(여러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고 돌진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라고 하는 짓을 안 하면 매력이 없을 인물이었다.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보여주었던 모성과는 다른 모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강성연 배우라서 가능했던 강하면서도 안쓰러우면서도 광기도 느껴졌던 표정이었던 것 같다.
A. 그 장면이 우리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촬영이기도 했다. 강성연 배우가 촬영 전에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시길래 "우세요. 우셔도 되요"라고 했다. 그 장면에서 미쓰리가 웃는 모습을 생각하셨던 건지, 우는 모습을 생각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들어가셔서 환하게 웃으시더라.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썼다.
Q.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관계가 나오고 다양한 장르도 보인다. 한 작품 안에서 치정 로맨스, 스릴러, 추적극, 가족극, 모성애 등 다양한 걸 해 보셨는데 어떤 장르에 더 관심이 생기셨나? 차기작은 어떤 장르가 될 것인가?
A. 종교와 관련된 주제에도 흥미가 있다. 왜 믿으며 무엇에 현혹되는지가 굉장히 궁금해졌다. 아니면 정치판과 사회제도를 규정하는 것을 비트는 주제쪽에도 관심이 있다. 로맨스나 사랑이야기 보다는 사회적인 것에 좀 더 관심이 있는 편이다. 만약 사랑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연애의 목적' 같은 톤의 로맨스 코미디 쪽도 관심이 있다. 그런 대본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
Q. 드라마가 작가의 대본에서 시작이 되지만 이렇게 연출자의 코멘트를 듣고 다시 보게 되면 숨겨진 의도와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A. 짧게 치고 빠지는 드라마지만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작품이다. 사람들이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한두 번 더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써 주신 작가님께 감사하고, 그 덕에 연출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었다. 서영희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 시청자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코멘터리와 비교해서 드라마를 한번 더 보시면 또 다른 재미가 있으실 것 같다.
* 이동현 PD가 연출한 MBC 드라마 '미쓰리는 알고 있다'는 4부작 드라마로 공식 홈페이지와 웨이브를 통해 다시보기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