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라는 예고편 영상 하나만으로도 인물에 대한 흥미를 훅 불러일으킨 박소담. 영화 '기생충'에서 말솜씨로 상대방을 홀리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기정이를 연기하며 배우 필모에 분명한 색깔을 입혔던 박소담이다. 주먹보다 작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하는 박소담에게는 아직까지 기정이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Q.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기생충’에 합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A. 의상 감독님을 통해서 연락이 왔었다. 모르는번호로 “봉감독님이 소담씨 보고 싶다고 한다”고 해서 장난 인줄 알고 답을 안했다. 그랬더니 한번 더 연락이 오셔서 통화를 하고 감독님을 만났다.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으시고 그냥 송강호 선배의 딸로 나오게 될 것 같다고 하시는데 불러주신것 만으로도 놀라고 벅찼다. 그런데 “거절하고 싶으면 해도된다”고 하셔서 “무슨 말씀이시냐. 당연히 하고 싶죠”라고 했었다. 그때는 아직 시나리오가 나온 게 아니어서 나머지는 차차 써서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제안을 받고 얼떨떨했는데 첫만남 이후 두 달 정도 아무런 연락이 없으시더라. 당시에 제가 소속 회사가 없을 때여서 더많이 연락 없는게 불안했다. 그러고 연락이 오셔서 너무 긴장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내가 하자고 했으면 하는 거지 왜 불안해 하냐”고 하시더라.
사실 ‘옥자’때 미자 역할오디션으로 한번 찾아 뵌 적이 있었다. 그때 제 사진을 보시고 10대연기가 가능 하겠나 싶어서 오디션을 보자고 부르셨는데 막상 부르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고 하시더라. 이미 불렀으니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셔서 한시간 반 정도 편하게 차 마시면서 영화와 관련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었다. 그렇게 한번 만나고 이번에 만났는데 감독님은 작품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하시는 걸 쑥쓰러워하시고 직접적으로 배우들에게 표현하지 않으신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하시고 작품 이야기는 나중에 시나리오를 받고 난 다음에야 하게 되었다.
Q. 감독님이 박소담의 어떤 모습 때문에 기정 역할에 캐스팅 하신건가?
A. 감독님은 “너는 기정인거 같애. 나중에 시나리오 보면 알게 될거야”라고 하시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데 글로 읽는데도 속도감이 있어서 금방 읽히더라. 기정이의 대사는 한번씩 더 읽어봤는데 감독님이 벌써 나를 이렇게 잘 아시나 싶게 제 말투와 비슷하게 대사가 쓰여 있었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잘 읽히고 너무 편안하게 입에 붙더라. 딱 한 부분이 좀 힘들었는데 그 부분 촬영하러 갔을 때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감독님이 먼저 “이 대사 좀 이상하지 않니?”라고 하시면서 먼저 고쳐 주셔서 너무 놀랬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욕심이 더 커졌다. 기정이를 너무 잘 하고 싶었고 기정이의 대사가 너무 재미있었다.
Q. 시나리오도 안 보고 역할을 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역할일지 불안감은 없었나?
A. 혼자 연기하는게 아니고 감독님이 저를 잘 봐주시고 잡아 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대사만 잘 외우고 가서 현장에서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감독님의 팬으로서 어떤 영화를 쓰실지가 궁금했다. 짐작이가는 부분이 없으니까 오히려 걱정할 것도 없었고, 빨리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에 제목도 이야기 안 해주셨다.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시나리오를읽고 나니까 왜 그렇게 붙이셨는지 이해가 되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너무 먹먹해져서 한 동안 멍때렸었다. 정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 사회를 담고 있더라. 두 시간 안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담으셨나 싶어 놀라월다. 빨리 사람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제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걸 배우고 싶기도 했고 작품에 대한 선배님들의 이야기도 빨리 들어보고 싶었다.
Q. 화장실에서 변기 위에 앉아 있는 기정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A. 그 장면 촬영 할 때 변기 위에서 충숙 엄마가 너무 생각나더라. 엄마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집이 이렇게 된 줄고 모르고,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싶어서 연기하면서도 실제로 감정이 되게 복잡해 지더라. 그때 표정이나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사전에는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그 상황에 처해보니 온몸으로 느껴지는 게 있어서 공간이 주는 힘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와중에 그렇게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기정이는 못 버텼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Q. 박소담이 해석한 기정은 어떤 인물인가?
A. 기정이는 가장 가진 게 없는 친구인데 가장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친구더라. 가장 약한 존재인데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친구였고,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친구였다. 계속 취업에 실패하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했겠나. 하지만 한번도 티를 내지 않고,정말 외로운 친구였지만 겉으로는 웃고 힘을 실어주는 친구였다. 그랬는데 딱 취업이 되면서부터 제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실력은 있었지만 그 동안 뭔가 맞지 않게 비껴갔다가 완벽한 뭔가를 만났달까. 그래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를 휘어잡고 전문가처럼 보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Q. 기정이 말 한마디면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을 것 같더라. 연교와의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A. 기정이가 말을 굉장히 잘한다. 정말 이 사모님을 내가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이걸 어떻게 하면 속일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게 조여정이 너무 잘 들어주고 너무 잘 속아주니까 더 속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여정에게 너무 고마웠다. 너무 잘 속아줘서 신나게 속일 수 있더라.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감독님이 핑퐁이 오가게 시나리오를 잘 써주셔서 현장에서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렇게속이면서도 제 자신이 너무 뻔뻔한가 싶더라. 기정이가 나쁜 애는 아닌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기정이가 나쁘게 보이면 안되는 거라 그 선을 지키느라 애썼다.
Q. 남매로 연기한 최우식과는 너무 닮았더라. 눈으로 보고 나니 더 반박할 수 없는 가족 케미였다.
A. 촬영 전 감독님과 저희 셋이 따로 만났었다. 그때 감독님이 “이런 부탁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씻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와 달라”고 하셔서 머리도 안 감고 화장도 안 하고 갔었다.처음 보자마자 둘이 붙어보라고 하시면서 사진을 찍으셨다. 아직 어색한 상태였고 그 전까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인정할 수 밖에 없더라.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게 누가봐도 가족 느낌이 나서 감독님께 감사했고, 너무 좋았다. 최우식과 닮아서 제가 캐스팅 된거라 평생 고마워하며 살려고 한다. (웃음) 감독님은글 쓰실 때 계속 그 사진을 보면서 쓰셨다고 하시더라. 평소에도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고 보시더라. 그래서 벌써 저를 파악하고 쓰신 건가 싶었다.
Q. 아버지인 송강호와는 어땠나?
A. 송강호 선배와는 영화 ‘사도’에서 처음 만났는데 극중에서 아주 가까운 관계로 나왔지만 실제로 대사를 주고 받고 호흡을 맞출 기회는 없었다. 그때도 많이 챙겨 주시면서 다음에 꼭 또 만나자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와 딸로 만나게 되어서 처음부터 마음이 편했다. 제가 어떻게 해도 다 받아주시니까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호흡을 주고 받을 수 있구나를 느꼈고 항상 배려를 해 주시니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항상 아버지라고 부르다 보니 지금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다. 실제 저의 아빠도 칸 영화제에서 찍힌 송강호 선배의 사진을 캡쳐해서 가족 단톡방에 “너네 아버지 짱이다”라고 올리실 정도다.
송강호 선배와 봉준호 감독님 두 분의 호흡과 에너지에 너무 놀랬었다. 감독님은 말씀도 너무 잘 하시고 어떻게 저 많은 것들이 머리 속에 다 들어가 있지 싶게 동선까지 다 계산해서 완벽한 콘티로 시나리오를 쓰셨더라. 그런 에너지를 송강호 선배가 다 받아들여서 연기로 보여주시는데 정말 현장이 너무 화기애애했다. 또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로 행복했다.
Q. 기정이의 모습과 박소담의 모습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A. 저는 기정이의 모습과 많이 닮았더라. 저는 첫째다. 항상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챙기고 제가 먼저 나서서 뭘 해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다. 기정이의 당찬 모습과 많이 닮은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하고 계속 다운이 되어서 계속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를 분출하는 사람인데 기정이도 그걸 분출할 데가 없었는데 다송이를 만나면서 그게 살아난 것 같더라.
그 전에는 현장에서 너무 긴장을 많이 했었다. 한달에 오디션을 17번 볼 때도 있었고 ‘검은 사제들’도 3차까지 오디션을 보고 했던 작품이다. 그렇게 계속 떨어지니까 자존감도 낮아지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그런 부분에서 기정이와 많이 공감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17번씩 오디션을 봤던 중에 됐던게 ‘사도’와 ‘경성학교’ 였다. 그 전까지도 내가 작품에 폐 끼치지 말고 내 연기를 잘 해내자는 마음 밖에 없어서 현장을 즐긴 적은 없었는데 ‘기생충’을 하면서 전체 스탭의 얼굴을 다 알고 전체 현장을 다 보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내 것만 신경쓰고 잘하자고 스스로를 압박하느라 영화의 시스템을 잘 몰랐었다. 영화 한 편을 위해 이렇게 많은 스탭들이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는지 몰랐는데 그런 과정을 알면서 작업을 하니까 더 행복하고 재미있더라. 이렇게 많은분들이 도와주시는 데 그걸 모르고 했었나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다. 이번 작품에서 ‘기정이를 잘 해내고 싶다’가 아닌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다. ‘기생충’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 속에 잘 스며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번 영화에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인터뷰도 하게 돼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고 신난다.
Q.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힘든 시기가 있었던건 몰랐다.
A.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쉬려고 마음먹고 쉰 건 아니었다. 작품이 들어오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쉬다 보니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되더라. 쉬는 동안 몸과 마음을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 저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를 공백기간 동안 배웠던 것 같다. 연기를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봉감독님께 연락이 왔었다. ‘기생충’을 하면서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너는 왜 항상 신났냐고 하실 정도로 너무 행복했다.
Q. 칸에 다녀온 소감은 어땠나?
A. 영화를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안았는데 이런 작품을 만나게 돼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칸에 갔다온 게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진을 보면 신기하다. 다 가족같은 분위기여서 레드카펫을 걸을 때는 긴장이 안되었는데 지금 와서 사진을 보니 떨리더라. 많이 감사하다.
Q.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기생충’에 합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A. 의상 감독님을 통해서 연락이 왔었다. 모르는번호로 “봉감독님이 소담씨 보고 싶다고 한다”고 해서 장난 인줄 알고 답을 안했다. 그랬더니 한번 더 연락이 오셔서 통화를 하고 감독님을 만났다.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으시고 그냥 송강호 선배의 딸로 나오게 될 것 같다고 하시는데 불러주신것 만으로도 놀라고 벅찼다. 그런데 “거절하고 싶으면 해도된다”고 하셔서 “무슨 말씀이시냐. 당연히 하고 싶죠”라고 했었다. 그때는 아직 시나리오가 나온 게 아니어서 나머지는 차차 써서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제안을 받고 얼떨떨했는데 첫만남 이후 두 달 정도 아무런 연락이 없으시더라. 당시에 제가 소속 회사가 없을 때여서 더많이 연락 없는게 불안했다. 그러고 연락이 오셔서 너무 긴장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내가 하자고 했으면 하는 거지 왜 불안해 하냐”고 하시더라.
사실 ‘옥자’때 미자 역할오디션으로 한번 찾아 뵌 적이 있었다. 그때 제 사진을 보시고 10대연기가 가능 하겠나 싶어서 오디션을 보자고 부르셨는데 막상 부르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고 하시더라. 이미 불렀으니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셔서 한시간 반 정도 편하게 차 마시면서 영화와 관련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었다. 그렇게 한번 만나고 이번에 만났는데 감독님은 작품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하시는 걸 쑥쓰러워하시고 직접적으로 배우들에게 표현하지 않으신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하시고 작품 이야기는 나중에 시나리오를 받고 난 다음에야 하게 되었다.
Q. 감독님이 박소담의 어떤 모습 때문에 기정 역할에 캐스팅 하신건가?
A. 감독님은 “너는 기정인거 같애. 나중에 시나리오 보면 알게 될거야”라고 하시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데 글로 읽는데도 속도감이 있어서 금방 읽히더라. 기정이의 대사는 한번씩 더 읽어봤는데 감독님이 벌써 나를 이렇게 잘 아시나 싶게 제 말투와 비슷하게 대사가 쓰여 있었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잘 읽히고 너무 편안하게 입에 붙더라. 딱 한 부분이 좀 힘들었는데 그 부분 촬영하러 갔을 때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감독님이 먼저 “이 대사 좀 이상하지 않니?”라고 하시면서 먼저 고쳐 주셔서 너무 놀랬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욕심이 더 커졌다. 기정이를 너무 잘 하고 싶었고 기정이의 대사가 너무 재미있었다.
Q. 시나리오도 안 보고 역할을 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역할일지 불안감은 없었나?
A. 혼자 연기하는게 아니고 감독님이 저를 잘 봐주시고 잡아 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대사만 잘 외우고 가서 현장에서 잘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감독님의 팬으로서 어떤 영화를 쓰실지가 궁금했다. 짐작이가는 부분이 없으니까 오히려 걱정할 것도 없었고, 빨리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에 제목도 이야기 안 해주셨다.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시나리오를읽고 나니까 왜 그렇게 붙이셨는지 이해가 되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너무 먹먹해져서 한 동안 멍때렸었다. 정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 사회를 담고 있더라. 두 시간 안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담으셨나 싶어 놀라월다. 빨리 사람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제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걸 배우고 싶기도 했고 작품에 대한 선배님들의 이야기도 빨리 들어보고 싶었다.
Q. 화장실에서 변기 위에 앉아 있는 기정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A. 그 장면 촬영 할 때 변기 위에서 충숙 엄마가 너무 생각나더라. 엄마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집이 이렇게 된 줄고 모르고,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싶어서 연기하면서도 실제로 감정이 되게 복잡해 지더라. 그때 표정이나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사전에는 고민이 많았는데 막상 그 상황에 처해보니 온몸으로 느껴지는 게 있어서 공간이 주는 힘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와중에 그렇게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기정이는 못 버텼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Q. 박소담이 해석한 기정은 어떤 인물인가?
A. 기정이는 가장 가진 게 없는 친구인데 가장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친구더라. 가장 약한 존재인데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친구였고,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친구였다. 계속 취업에 실패하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했겠나. 하지만 한번도 티를 내지 않고,정말 외로운 친구였지만 겉으로는 웃고 힘을 실어주는 친구였다. 그랬는데 딱 취업이 되면서부터 제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실력은 있었지만 그 동안 뭔가 맞지 않게 비껴갔다가 완벽한 뭔가를 만났달까. 그래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를 휘어잡고 전문가처럼 보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Q. 기정이 말 한마디면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을 것 같더라. 연교와의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A. 기정이가 말을 굉장히 잘한다. 정말 이 사모님을 내가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이걸 어떻게 하면 속일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게 조여정이 너무 잘 들어주고 너무 잘 속아주니까 더 속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여정에게 너무 고마웠다. 너무 잘 속아줘서 신나게 속일 수 있더라.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감독님이 핑퐁이 오가게 시나리오를 잘 써주셔서 현장에서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렇게속이면서도 제 자신이 너무 뻔뻔한가 싶더라. 기정이가 나쁜 애는 아닌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기정이가 나쁘게 보이면 안되는 거라 그 선을 지키느라 애썼다.
Q. 남매로 연기한 최우식과는 너무 닮았더라. 눈으로 보고 나니 더 반박할 수 없는 가족 케미였다.
A. 촬영 전 감독님과 저희 셋이 따로 만났었다. 그때 감독님이 “이런 부탁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씻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와 달라”고 하셔서 머리도 안 감고 화장도 안 하고 갔었다.처음 보자마자 둘이 붙어보라고 하시면서 사진을 찍으셨다. 아직 어색한 상태였고 그 전까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인정할 수 밖에 없더라.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게 누가봐도 가족 느낌이 나서 감독님께 감사했고, 너무 좋았다. 최우식과 닮아서 제가 캐스팅 된거라 평생 고마워하며 살려고 한다. (웃음) 감독님은글 쓰실 때 계속 그 사진을 보면서 쓰셨다고 하시더라. 평소에도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고 보시더라. 그래서 벌써 저를 파악하고 쓰신 건가 싶었다.
Q. 아버지인 송강호와는 어땠나?
A. 송강호 선배와는 영화 ‘사도’에서 처음 만났는데 극중에서 아주 가까운 관계로 나왔지만 실제로 대사를 주고 받고 호흡을 맞출 기회는 없었다. 그때도 많이 챙겨 주시면서 다음에 꼭 또 만나자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와 딸로 만나게 되어서 처음부터 마음이 편했다. 제가 어떻게 해도 다 받아주시니까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호흡을 주고 받을 수 있구나를 느꼈고 항상 배려를 해 주시니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항상 아버지라고 부르다 보니 지금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다. 실제 저의 아빠도 칸 영화제에서 찍힌 송강호 선배의 사진을 캡쳐해서 가족 단톡방에 “너네 아버지 짱이다”라고 올리실 정도다.
송강호 선배와 봉준호 감독님 두 분의 호흡과 에너지에 너무 놀랬었다. 감독님은 말씀도 너무 잘 하시고 어떻게 저 많은 것들이 머리 속에 다 들어가 있지 싶게 동선까지 다 계산해서 완벽한 콘티로 시나리오를 쓰셨더라. 그런 에너지를 송강호 선배가 다 받아들여서 연기로 보여주시는데 정말 현장이 너무 화기애애했다. 또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로 행복했다.
Q. 기정이의 모습과 박소담의 모습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A. 저는 기정이의 모습과 많이 닮았더라. 저는 첫째다. 항상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챙기고 제가 먼저 나서서 뭘 해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다. 기정이의 당찬 모습과 많이 닮은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하고 계속 다운이 되어서 계속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를 분출하는 사람인데 기정이도 그걸 분출할 데가 없었는데 다송이를 만나면서 그게 살아난 것 같더라.
그 전에는 현장에서 너무 긴장을 많이 했었다. 한달에 오디션을 17번 볼 때도 있었고 ‘검은 사제들’도 3차까지 오디션을 보고 했던 작품이다. 그렇게 계속 떨어지니까 자존감도 낮아지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그런 부분에서 기정이와 많이 공감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17번씩 오디션을 봤던 중에 됐던게 ‘사도’와 ‘경성학교’ 였다. 그 전까지도 내가 작품에 폐 끼치지 말고 내 연기를 잘 해내자는 마음 밖에 없어서 현장을 즐긴 적은 없었는데 ‘기생충’을 하면서 전체 스탭의 얼굴을 다 알고 전체 현장을 다 보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내 것만 신경쓰고 잘하자고 스스로를 압박하느라 영화의 시스템을 잘 몰랐었다. 영화 한 편을 위해 이렇게 많은 스탭들이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는지 몰랐는데 그런 과정을 알면서 작업을 하니까 더 행복하고 재미있더라. 이렇게 많은분들이 도와주시는 데 그걸 모르고 했었나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다. 이번 작품에서 ‘기정이를 잘 해내고 싶다’가 아닌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다. ‘기생충’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 속에 잘 스며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번 영화에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인터뷰도 하게 돼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고 신난다.
Q.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힘든 시기가 있었던건 몰랐다.
A.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쉬려고 마음먹고 쉰 건 아니었다. 작품이 들어오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쉬다 보니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되더라. 쉬는 동안 몸과 마음을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 저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를 공백기간 동안 배웠던 것 같다. 연기를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봉감독님께 연락이 왔었다. ‘기생충’을 하면서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너는 왜 항상 신났냐고 하실 정도로 너무 행복했다.
Q. 칸에 다녀온 소감은 어땠나?
A. 영화를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안았는데 이런 작품을 만나게 돼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칸에 갔다온 게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진을 보면 신기하다. 다 가족같은 분위기여서 레드카펫을 걸을 때는 긴장이 안되었는데 지금 와서 사진을 보니 떨리더라. 많이 감사하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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