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생활 2>의 제1부 ‘사춘기’ 편에서는 사춘기 자녀의 성의식을 살펴보며 그들과 허심탄회한 섹스토크를 해보자는 의욕적인 시도를 통해 ‘아이의 사생활’을 햇볕에 전면 노출시키는 것이 적극 권장되었다. 그리고 이 섹스토크 과제를 위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비장하게 등장했다. 부모들은 조마조마 콩닥콩닥 자녀들을 불러 모아놓고 섹스토크를 처음으로 시도해본다. 그런데 이내 시도는 일장연설 혹은 훈계나 취조로 변질된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니 아이는 묵묵부답일 수밖에. 그게 아니면 민망하고 부끄러워 서로 얼굴 보길 피하며 키득키득 웃다가 끝난다. 섹스토크, 어른들끼리도 민망해하는데 그것도 자기 자식과 하라니 이럴 수밖에.
대화가 대화처럼 성립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이 프로그램에선 ‘내 아이만은 섹스 절대불가’라는 부모의 고집스런 열망 때문이라 한다. 모든 결론은 쉽게 말해 ‘섹스하지 마라’니 그런 전제를 두고 대화를 나눠봤자 막힌 일방통행일 뿐이라는 것. 그렇다면 ‘내 아이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지는데 이때 획기적 소도구로서 나온 것이 ‘성행위준비물배낭’이다. 배낭의 의도는, 아예 내 아이도 섹스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후 그렇다면 어떤 것을 준비시켜서 내보내는 게 도와주는 것일까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부모들은 허걱 하다가 이내 기본 피임기구를 비롯해서 각종 분위기메이킹 도구와 위생용품, 여벌의 속옷에 이르기까지, 마치 캠프 배낭 바리바리 싸 보내듯 신이 나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브레인스토밍이자 시뮬레이션일 뿐이니까. 하지만 누가 진짜로 저런 성행위준비물배낭을 마련해서 대기시킬 것이며, 또 어느 자식이 저걸 매고 “잘하고 오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문 박차고 나갈 것인가.
아쉬운 것은 본 프로그램이 부모자식 간의 ‘접점’은 보여주지 못하고 부모 측의 개선 가능성만 잠깐 보여주고(그것도 대부분 자조적 반농담식이었다) 끝났다는 것, 그리고 못 다한 대화를 대신하듯 뜬금없이 섹스배낭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접점’이 마련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자식의 입장에선 정기적으로 자기 부모와 섹스 얘기 따윈 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마치 남편에게 외간남자에 대한 흑심을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칭찬해주지 않으리라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 잘 아니까 말이다. 물론 내 연애 문제에 대해서도 그다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왜냐? 그것은 ‘나의 사생활’이기 때문이고 사생활은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길 원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이때 ‘나 이래봬도 탁 트인 부모야’라는 것을 자식에게 어필하기 위한 기발한 섹스배낭 같은 소도구는 사춘기 자녀의 은밀함이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까? 자녀의 섹스조차도 부모들이 ‘관리’하고 ‘보조’하려 들면 얼마나 김샐 것이며 얼마나 사생활은 묵사발이 될까. 자식이 부모에게 “오늘 밤 우리 조용히 말썽 안 피고 놀 테니까 두 분이 원 없이 섹스하세요”라고 하면 어디 내키던가. 숨어서 몰래 하는 맛이 최고지.
자식이 원하는 것은 매뉴얼에 따른 섹스토크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 부모가 이해해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진취적이고 공감 능력이 충만한 언동이다. 성의식만 탁 트이면 뭣하랴, 기타 다른 의식들이 일관적이지 못하면 더 큰 불신으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나라엔 “난 좋은 부모야”라는 자위를 도와주는 ‘부모들만의 잔치’가 너무 많다.
예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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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대화처럼 성립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이 프로그램에선 ‘내 아이만은 섹스 절대불가’라는 부모의 고집스런 열망 때문이라 한다. 모든 결론은 쉽게 말해 ‘섹스하지 마라’니 그런 전제를 두고 대화를 나눠봤자 막힌 일방통행일 뿐이라는 것. 그렇다면 ‘내 아이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지는데 이때 획기적 소도구로서 나온 것이 ‘성행위준비물배낭’이다. 배낭의 의도는, 아예 내 아이도 섹스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후 그렇다면 어떤 것을 준비시켜서 내보내는 게 도와주는 것일까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부모들은 허걱 하다가 이내 기본 피임기구를 비롯해서 각종 분위기메이킹 도구와 위생용품, 여벌의 속옷에 이르기까지, 마치 캠프 배낭 바리바리 싸 보내듯 신이 나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브레인스토밍이자 시뮬레이션일 뿐이니까. 하지만 누가 진짜로 저런 성행위준비물배낭을 마련해서 대기시킬 것이며, 또 어느 자식이 저걸 매고 “잘하고 오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문 박차고 나갈 것인가.
아쉬운 것은 본 프로그램이 부모자식 간의 ‘접점’은 보여주지 못하고 부모 측의 개선 가능성만 잠깐 보여주고(그것도 대부분 자조적 반농담식이었다) 끝났다는 것, 그리고 못 다한 대화를 대신하듯 뜬금없이 섹스배낭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접점’이 마련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자식의 입장에선 정기적으로 자기 부모와 섹스 얘기 따윈 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마치 남편에게 외간남자에 대한 흑심을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칭찬해주지 않으리라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 잘 아니까 말이다. 물론 내 연애 문제에 대해서도 그다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왜냐? 그것은 ‘나의 사생활’이기 때문이고 사생활은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길 원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이때 ‘나 이래봬도 탁 트인 부모야’라는 것을 자식에게 어필하기 위한 기발한 섹스배낭 같은 소도구는 사춘기 자녀의 은밀함이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까? 자녀의 섹스조차도 부모들이 ‘관리’하고 ‘보조’하려 들면 얼마나 김샐 것이며 얼마나 사생활은 묵사발이 될까. 자식이 부모에게 “오늘 밤 우리 조용히 말썽 안 피고 놀 테니까 두 분이 원 없이 섹스하세요”라고 하면 어디 내키던가. 숨어서 몰래 하는 맛이 최고지.
자식이 원하는 것은 매뉴얼에 따른 섹스토크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 부모가 이해해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진취적이고 공감 능력이 충만한 언동이다. 성의식만 탁 트이면 뭣하랴, 기타 다른 의식들이 일관적이지 못하면 더 큰 불신으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나라엔 “난 좋은 부모야”라는 자위를 도와주는 ‘부모들만의 잔치’가 너무 많다.
예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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