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는 묘한 매력이 있다. 뭔가 엉성하고 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한번 더 보게 되고 연기가 좀 어설픈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캐릭터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드라마의 소재가 음식이라는 것이 시청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한 요인이 될 것이며 더불어 경쾌하고 감각적인 배경음악과 배우들의 이미지가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하지 않나 싶다. 요리와 요리사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니 역시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상담자는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드라마이다. 특히 까칠한 셰프 역을 맡은 이선균과 사랑스러운 요리사가 된 공효진은 눈부신 배우의 이미지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연기자라 삶을 이야기하는 데 누구보다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사실 <파스타>는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삶에 관한 몇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첫째, 자신감은 행복의 원천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서유경(공효진 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당당히 일어서는 용감한 여성이다. 사춘기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아들을 편애하는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는 것도 부족해 주방엔 여자 따위 필요 없다며 틈만 나면 성질을 부리는 셰프 밑에서 굽실거려야 하는 그녀이지만 자유롭게 화도 내고 슬퍼도 하고 기뻐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인다. 아직 꼬시는 기술이 부족하다지만 이미 짝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한 걸 보면 그녀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사랑을 체득한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타고난 자원과 당당함을 통해 얻은 성취들이 더욱더 그녀를 자신감 있는 여성으로 성장시켜 결국 셰프를 꼬시게 되지 않을까.
둘째, 상처는 인간을 단순화시킨다. 예전에 어느 강의에서 접한 사례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늘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며 매사에 위축돼 있던 한 청년에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게 하고 상담자가 매주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바보다’라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상담자의 입을 통해 듣게 한 것이다. 몇 주 동안 상담자의 지독한 욕을-물론 자신이 쓴 글이긴 하지만-참고 듣던 그는 어느 날 드디어 폭발해 화를 냈다고 한다. 아마도 살면서 처음으로 화를 내본 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게 되고 자기비하적인 생각도 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선균이 연기하는 까칠남 최현욱 셰프가 현재 보여주는 단 하나의 삶의 방식은 ‘화를 내는 것’이다. 정말 불쾌할 때는 물론이고 당황해도, 걱정되고 불안해도, 놀랍고 맘에 들어도 화를 낸다. 앞에 언급한 청년처럼 그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상처로 복잡한 감정을 통제하고 단순화시킨 그를 치유할 인물은 아마도 자기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한 서유경이 아닐까 싶다.

셋째, 사랑과 권력을 동일하게 차지할 수는 없다. 흔히들 남녀관계에서도 권력다툼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기질이 센 두 남녀가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 기가 센 남자는 부드러운 여자를 만나게 되고 반대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은 스폰지처럼 자신을 받아주는 남성을 만나게 된다. 다행히 인간이 가진 욕구의 우선순위가 서로 달라서 각자의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짝을 찾아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배신한 오세영은 요리사로 성공한 후 최현욱에게 돌아가 못다 이룬 사랑을 이루려 애쓰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는 사랑과 권력 중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턱대고 욕심만 부렸다간 상처만 더 받게 될 것이다.
실존주의 심리치료 이론에서는 삶의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는 것을 치료의 핵심으로 본다. 그러고 보면 상담자는 요리사보다는 서유경이 3년 동안 끈질기게 버텼던 주방보조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우리 각자는 내 삶을 어떻게 요리하고 있는가. 까칠한 셰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조언들을 주의 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iMBC연예 이계정(칼럼니스트) |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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