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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은 400번의 구타

기사입력2008-12-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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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시작하기도 전부터 토론장은 달아올랐다. ‘400회’라는 강렬한 숫자는 ‘연말’이라는 특수한 시기와 맞물려 ‘특집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가수 신해철 등 그동안 <100분 토론>을 빛낸 논객들이 회동한다는 소식에, 진행자 손석희 아나운서가 ‘직접 섭외’한 방송인 김제동이 신고식을 치른다는 뉴스까지 더해져 궁금증은 극에 달했다. ‘목요일 밤 12시’라는 ‘안구에 충혈을 일으키는’ 방영 시간도 학생, 직장인 시청자의 충성심을 가로막지 못했다.

 


기념일인 데다 연말이기까지 한 최적의 조건은 ‘2008 대한민국을 말한다’라는 결산형 주제로 한 편의 버라이어티 토크쇼처럼 화려하게 진행됐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나경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전병헌 민주당 국회의원, 제성호 중앙대 법대교수, 전원책 변호사, 이승환 변호사,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가수 신해철, 방송인 김제동.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아홉 명의 ‘스타 패널’들이 시청자가 뽑은 2008년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형식에 방청객 또한 역대 시민논객들로 채워져 자축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100분 토론> 400회 특집은 두 시간 동안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선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2008년의 이슈들을 패널들이 하나씩 알아맞히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랭크쇼’를 적용시켜 발랄함마저 풍겼다.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마시고, 자세부터 풀어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팽팽히 나뉜 패널들의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완화시켜 보려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쇼’는 시작됐다.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여유로움은 온데간데없이 ‘<100분 토론> 첫 출연’의 어색함으로 한껏 얼어 있는 김제동에게 첫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왜 이렇게 저에게 무거운 짐을….” 당황한 듯한 김제동이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이슈로 ‘금융위기’를 꼽았고,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이슈 1위를 바로 맞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첫 출연에 첫 질문부터 이렇게 잘 맞혀 주시면…, 금융위기를 맞혀서 박수 받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것 같습니다.” 손석희 아나운서의 뿌듯함이 묻어나는 멘트가 이어진다. 연예인으로서 느끼는 금융위기에 대해 김제동은 “처음부터 아픈 곳을 찌른다”며, “행사와 방송이 몇 개씩 줄어들고 있다”는 재치 있는 답변과 함께 “금융위기와 같이 위에서부터 발생하는 위기들은 하층부터 친다는 것이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는 날선 멘트도 잊지 않았다.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2위로 뽑힌 ‘쇠고기 파동과 촛불정국’ 이슈부터는 보수와 진보의 의견 차이에 일순간 불이 붙었다. “촛불정국의 1차적 책임은 정부 여당에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통의 부재와 정보의 왜곡 및 과장이 있었던 것이 안타까우며, 쇠고기 추가협상을 얻어 내며 잘 마무리되었다”는 나경원 의원의 말에, 진중권 교수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시위와 집회가 발생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지 못하고 주동자를 색출하려고만 한 현 정부에게 한계를 느꼈다”고 받아쳤다. 이에 나경원 의원은 “주도의 여부를 떠나 불법 시위 자체는 처벌해야 한다”며 의견을 이어 갔고, 금방 공연을 마치고 온 듯 현란한 무대의상을 그대로 입고 참석한 신해철은 “합법이고 불법이고를 떠나 현 정부의 포용성이 부족하고 국민에게 대단히 위협적으로 비친다는 것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북한산에 올라가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를 이야기한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시위에 유모차 끌고 참여한 주부들을 수사한 것은, 민주주의의 성숙성과 차별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고 거들었다.



시작부터 형성된 보수와 진보 패널의 대결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세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대변인을 자처한 나경원 의원의 방패가 진중권 교수와 신해철을 앞세운 진보의 창과 맞부딪치며 서슬 퍼런 불꽃을 일으키는 양상이 초반의 버라이어티적 자축 분위기를 날카롭게 베어 내고 여느 때 못지않은 격론을 만들어 냈다. 이밖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 ‘최진실을 비롯한 연예인 잇단 자살’ ‘숭례문 화제’ ‘멜라민 등 중국산 먹을거리 파동’ ‘금강산 피격사건과 관광 중단’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베이징 올림픽 7위’ 등이 시청자가 뽑은 10대 이슈로 선정되어 지난 1년을 되돌아보게 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오한숙희 여성학자, 방송인 김구라, 김미화, 유재석 등의 축하 메시지 영상 후 시작된 2부에선 기존의 자유토론 형식으로 돌아가 ‘이명박 정부 1년 평가와 전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12월 19일 이명박 정부 1주년을 맞아 <100분 토론>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6.5%가 ‘잘했다’, 43.2%가 ‘보통이다’, 49.7%가 ‘잘못했다’고 답했다. 이 결과를 두고 펼쳐진 토론에서는 앞서 1부에서부터 대립 양상을 보인 한나라당 대 민주당,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졌다. “아직 1년밖에 안 됐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간”이라는 한나라당 측과 “장기적인 전망이 부재하고 강압적”이라는 반대측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은 새벽의 평온함을 깨트릴 정도로 거셌다.






어록 열전, “국회가 유해매체다”


이날 기억에 남을 어록 또한 여럿 탄생했다. ‘최진실을 비롯한 연예인 잇단 자살’ 이슈에서 사이버모욕죄에 대한 찬반 논쟁 중 신해철은 “욕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데, 악플이 많이 달리는 저로서는 이미 영생의 길에 도달했기 때문에 사이버모욕죄는 필요 없다”는 말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올해 자신을 화나게 한 뉴스를 이야기하는 순서에서는 이날 국회에서 일어난 여야의 폭력적인 대립 상황을 두고 “엉뚱한 동방신기나 비의 앨범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할 게 아니라 국회 자체를 유해 장소로 지정하고 뉴스에서 차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해 또 한 번 쓴웃음을 짓게 했다.

 



유시민 전 장관도 이명박 정부 1년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요즘 젊은이들 개념 있다, 이런 얘길 잘 하는데, 정부도 진짜 개념 정부가 돼야 한다. 지금 정부는 한마디로 아무 개념 없이 막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는데, 내년에는 좀 더 잘 정리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진중권 교수는 “대통령은 두뇌고 국민은 사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두뇌 속에 삽 한 자루밖에 없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통렬한 비유를 선보이기도 했다. 

 


2008년의 버라이어티한 이슈들을 돌아보기에 두 시간은 부족해 보였다. 손석희 아나운서도 힘에 부칠 정도로 좁혀지지 않고 감정적으로 치닫는 양측의 접전과 아홉 명의 패널들이 빠져든 ‘삼천포의 늪’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한 해를 정리하고 <100분 토론> 400회를 기념하는 이번 특집 방송은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 정부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는 자리로 시원함과 섭섭함을 동시에 남기고 막을 내렸다. 1999년 10월에 시작해 9년 동안 두 번의 대선후보자 토론을 치렀고,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민감한 이슈들을 쟁점화한 MBC <100분 토론>은 각 공중파 방송사들이 하나씩 꿰차고 있는 시사토론 프로그램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시사토론’의 엄숙함에 젊은 감각을 덧입혀 대담한 주제와 날카로운 언쟁의 스펙터클함을 선사했다. 또 냉철한 카리스마로 뜨거운 설전을 이끌고 정리하는 손석희라는 아이콘은 <100분 토론>을 특화시키는 커다란 요소로 작용했다.

 


9년 간 <100분 토론>이 날린 ‘400번의 구타’가 한국사회와 토론 문화를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집 방송으로 2008년을 마무리한 <100분 토론>은 두 주의 휴식기를 갖고 2009년 401회로 새롭게 시작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방향을 모색해 보는 성숙한 토론의 장으로서 <100분 토론>이 앞으로 800회 특집, 1000회 특집까지 지속될 수 있길 바란다. 정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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