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고아성에 대한 이종필 감독의 애정은 영화 '파반느'를 둘러싼 10년이라는 긴 시간만큼이나 깊고 선명했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이야기하며 고아성을 향한 신뢰와 감탄을 여러 차례 숨기지 않았다. "'삼토반' 이전, 무려 10년 전부터 함께 준비해 온 작품"이라고 운을 뗀 그는 "그 긴 시간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을 같이 탐방하기도 하고, 을지로 어딘가의 노포 호프집을 헌팅도 함께 하며 밤새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며 오랜 시간 축적된 호흡을 떠올렸다. 그만큼 '파반느'는 감독 자신에게도, 고아성에게도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각별한 영화였다.
무엇보다 이 감독이 가장 오래 붙들고 고민한 지점은 주인공 '미정'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였다. 원작에서 핵심 설정으로 작동하는 "못생긴 여자"라는 표현을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는 꽤 오랜 시간 답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처음 한동안은 이 여자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알아내는 게 고민이었다. 그림도 그려보고 인터넷에 '못생긴 여자'를 검색해보기도 했는데, 어느 날 새벽에 그러고 있는 저를 보니 자괴감이 들더라. '내가 이걸 하려고 영화를 한다고 했나' 싶었다"는 그의 말에선 창작자로서의 처절한 고뇌가 느껴졌다.
그 막막했던 고민을 단번에 풀어준 사람이 바로 고아성이었다. 이 감독은 "그즈음 만난 고아성 배우가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배우님은 너무 예쁘다. 당신은 너무 예쁘지 않냐'며 만류했는데, 아성 배우가 가만히 있다가 '저는 이 인물의 눈을 표현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 한마디는 미정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다음날 새벽 그 말을 곱씹다가 그동안 해왔던 고민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핵심은 못난 얼굴이 아니라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 초라한 마음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성 배우는 바로 그 사람의 눈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미정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시각적인 장치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시나리오와 영화 어디에도 '못생겼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넣지 않았다. 대신 그가 붙잡은 것은 "어둠 속에 방치된 전구" 같은 이미지였다. "저에게 미정은 오랫동안 꺼져 있었던 전구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필라멘트가 있고, 전기만 들어오는 대로 점점 밝아져서 아름다워지는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그 빛을 고아성의 눈에서 봤다. "아성 배우의 눈은 그 필라멘트를 이야기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영화 속 미정은 갑작스럽게 변신하지 않는다. 안경을 벗거나 화려하게 꾸미는 식의 전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머리를 묶고 조금 더 단정해지고, 아주 미묘하게 밝아지는 과정을 택했다. 이 감독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얼굴을 찍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는 고아성이 구현한 미정의 얼굴과 눈빛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실제로 이종필 감독은 고아성의 연기 폭에 대해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고아성 배우는 이만큼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상황에 맞춰 요만큼만 할 때가 있다. 그 조절이 정말 대단하다"고 평했다. 과장하거나 감정을 밀어붙이는 대신, 인물의 미세한 진폭을 정확히 조절할 줄 아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지금도 많이 사랑받고 믿고 보는 배우지만,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마땅한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장에서의 기억도 남달랐다. 이 감독은 문상민이 처음 사무실에 와서 고아성과 가볍게 리딩을 하던 날을 떠올리며 "아성 배우가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요'라는 장면을 읽다가 갑자기 대사를 잇지 못하고 막 울었다. 왜 우냐고 하니까 '몇 년을 혼자 읽었던 대본인데 문상민 배우가 경록으로 나타나 같이 읽어주는 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던 작품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고아성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촬영하는 내내 어떤 동지 같은 마음이 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꿈꿨던 것을 한 장면 한 장면 찍고 있다는 감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고아성의 진심은 이 감독을 울렸다. 이 감독은 "몇 년 전에 어떤 감독님이 해준 얘기가 있다. 고아성 배우에게 멜로 영화를 제안했는데, 아성 배우가 정중히 거절하면서 ''파반느'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이 영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다른 영화를 하면 아마 이 작품을 못 할 것 같고, 저는 멜로는 '파반느'로 꼭 시작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더라. 그 얘기를 뒤늦게 듣고 정말 감동했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촬영 종료 후 고아성이 건넨 엽서 한 장에 대한 일화도 잊지 못했다. 이 감독은 "다 끝나고 배우가 뭔가를 줬다. 다음날 열어봤더니 예전에 첫 미팅을 마치고 근처 책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천 원짜리 종이였다고 하더라. ''파반느'를 너무 하고 싶어서 간절해서 부적처럼 사서 가지고 다녔어요. 이제는 돌려드릴게요'라는 내용이었다"고 전하며, 당시의 울컥했던 심경을 밝혔다.
영화 속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 역시 배우와의 협업 속에서 더 날카로워졌다. 미정이 세라에게 맞서는 엘리베이터 장면의 대사 "너만 특별하다는 착각을 버려"는 이 감독과 고아성이 함께 고민한 끝에 탄생했다. 원래는 다른 대사였지만, 반복을 피하고 싶어 고민하던 끝에 공동 각본 작업을 한 손미 작가가 보낸 문장이었다. 이 감독은 "그 문자를 처음 봤을 때 나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허걱했다"며 웃은 뒤 "그 대사를 아성 배우가 했고, 거기서는 또 다른 결로 확 치고 나가더라. 고아성 배우의 진짜 모습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이종필 감독은 '파반느'를 고아성과 함께 준비해온 10년의 시간 자체를 가장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영화를 공개한 뒤에는 이젠 이걸 보내야 되는구나 하는 아쉬움도 있었고, 동시에 우리가 잘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다시 한번 고아성이라는 배우를 향해 진심을 보탰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진심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영화 '파반느'는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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