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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뒤흔든 금발의 아이콘, 브리지트 바르도 사망

기사입력2025-12-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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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iMBC 연예뉴스 사진
iMBC 연예뉴스 사진

2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은 성명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가수이며 재단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브리지트 바르도 여사의 별세를 무한한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재단은 "그는 명망 높은 연기 경력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과 에너지를 동물 복지와 재단 활동에 헌신하기로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정확한 사망 시점과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바르도는 어린 시절 발레를 전공하며 다져진 신체 표현력으로 주목받았고, 15세에 패션 잡지 모델로 데뷔했다. 1952년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56년 로제 바딤 감독의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로 기존의 정숙한 여성상을 깨며 'B.B'라는 애칭과 함께 유럽의 마릴린 먼로로 불렸고, 헝클어진 금발과 육감적인 실루엣은 이른바 '베이비 돌' 열풍을 낳았다. 장 뤽 고다르의 '경멸'(1963) 등 약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1950~60년대 프랑스 영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성기 한복판이던 1973년, 바르도는 40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나의 젊음과 미모를 남자들에게 주었으니, 이제 나의 지혜와 경험을 동물들에게 주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스크린을 떠났다. 이후 1986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을 설립하고, 모피 반대 운동과 고래 사냥 금지, 유기동물 보호 등 동물권 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은퇴 후 행보는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왔다. 바르도는 동물 복지 이슈에 대해 강경한 발언과 행동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를 강하게 비판해 국내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시에 무슬림 문화 비판과 정치적 발언 등으로 인종차별 혐의 유죄 판결을 여러 차례 받으며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물의 생명권을 공적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평가 역시 분명하다.

사생활에서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거쳤으며, 1992년 네 번째 남편 베르나르 도르말과 결혼 생활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올해 10월 병원 입원 소식이 전해지며 건강 악화설과 사망설이 돌기도 했다.

'세기의 육체파 배우'에서 '동물 권리의 수호자'로, 스크린의 신화에서 행동하는 운동가로 삶의 방향을 바꾼 브리지트 바르도. 패션계의 '바르도 네크라인'부터 자유 연애의 상징, 그리고 동물권 담론에 이르기까지 그는 단순한 배우를 넘어 시대의 감수성을 바꾼 문화적 아이콘으로 남았다. 논란과 찬사가 교차한 91년의 생애는 이제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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