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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 형님, 노래 말고 말을 해요, 말을!

기사입력2009-11-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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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가 따로 있는 여주인공에게 무한 순정을 바치며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남자 캐릭터. 일명 ‘서브남주’로 분류되는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는 여심을 흔들며 안방 극장에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상반기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와 <꽃보다 남자>의 지후 선배(김현중)부터 다시금 시작 된 ‘키다리 아저씨’의 행렬은 최근 <미남이시네요>의 신우 형님(정용화)과 <천하무적 이평강>의 에드워드(서도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여주인공이 곤란에 처할 때마다 아무 조건 없이 달려와 ‘몰래’ 도와줄 뿐 아니라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그녀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고, 이상하게 고백은 안 하고 질질 끌다가 다른 남자에게 선수를 빼앗기는, 자존심도 벨도 없는 남자들이다.

 




 


그런데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주기만 하는 ‘서브남주’에게 키다리 아저씨라는 애칭이 붙은 것은 왜일까. 1912년 발간된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고아소녀 주디가 고마운 후원자를 부를 때 쓰는 이 명칭은 ‘조건 없이 숨어서 도와주는 전형적인 좋은 남자’를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는 드라마 속 그들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남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주디가 친구 샐리의 오빠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자 강권으로 샐리의 집에 놀러 가지 못하게 했으며, 주디가 아플 때에는 장미꽃을 보내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금화를 보내 자신을 어필했다. 무엇보다 ‘저비스’ 본인이 직접 주디의 앞에 나타나 그녀에게 학교 소개를 받으며 차까지 마시고, 주디가 ‘저비스 씨는 멋진 분인 것 같아요’라고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를 본인이 받아보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리고 결국 주디는 저비스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우리의 신우 형님은 어떠한가. 그는 미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면서도 자신이 도와준 것을 그녀가 모르게 하는 이상한 치밀함을 보인다. 특히 미남의 ‘명동 순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옷을 사주고, 맛집까지 함께 가면서도 뒤만 따라다닌다. 고백은 언제나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느라 뜸들이다 선수를 뺏긴다. 신우 형님의 사랑법은 그 대상인 미남이 아닌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떨리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마도 신우의 대본에는 ‘혼잣말’이라는 지문이 깨알같이 쏟아질 것이다. 미남이 가고 나면 “한 발짝만 왔으면 됐는데”라고 혼잣말 하고, 미남은 오지도 않았는데 거울에 대고 “내 고백에 놀라지 말아야 할 텐데”라고 읊조린다. 속마음은 언제나 미남이 못 알아듣게 에둘러 표현한다. 그의 혼잣말은 여성 시청자를 위한 방백(관객만 듣는 독백)에 가깝다.

 




 


사실 미남이 태경을 좋아하게 된 것은 태경이 여러 차례 그녀를 곤경에서 구해줬기 때문이다. 태경은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도 미남의 옆에서 허물을 가려주었고 미남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며 “역시 형님은 좋은 분이십니다”라고 말한다. 또, 그녀는 팀 내에서 비밀을 홀로 알고 있는 태경만이 기댈 장소라고 생각한다. 수녀를 꿈꿨던 희생정신 투철한 미남이 자신을 도와주는 태경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남의 비밀을 먼저 알고 도와준 것은 신우인데도 말이다.

 


신우는 심지어 ‘전 바보예요’라고 노래까지 부른다. 일명 ‘고백송’이다. 노래 가사만 봐도 신우의 외사랑이 안타깝게 끝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데, “바보라서 그런가 봐/ 아프게 해도 괜찮은가 봐/ 못난 사랑이라 놀려대도 어쩔 수 없는 바보라서/ (중략) 그녀가 사랑할 사람 올 때까지, 이렇게 그녀 곁에서 있을 뿐이야/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녀를 사랑하니까 난 바보라서”란다.

 


키다리 아저씨들은 언제나 그래왔다. 그들은 ‘키 180cm 루저’ 여부와 상관없이 항상 말을 못하는 남자들이었다. 그러니 ‘수건남 신우염’을 앓고 있는 누나들은 속이 탈 수밖에. 신우 형님, 노래 말고 말을 해요, 말을! 말 못하겠으면 노래에 ‘미남’이 이름이라도 넣든지. 김송희 기자 |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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