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장은 서울 자가, 대기업 정규직, 부장 직급이라는 흔히 말해온 성공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좌천과 조직 개편, 평가 압박 앞에서 한순간에 흔들리는 모습은, 견고해 보였던 안정 역시 얼마나 취약한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극 중 김부장은 결국 서울을 떠나 경기도 월세 집으로 이주하고, 대기업을 그만두며 전 직장 동료와 함께 세차장 사업을 시작한다. 방송 말미 타이틀 속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이라는 수식어가 하나씩 지워지고, 마지막에 '김부장 이야기'만 남는 장면은 "직함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남는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응축했다. 시청자들이 종영 후 "이 시대에 안정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무엇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 이유다.
작품의 몰입을 강하게 만든 핵심에는 배우들의 현실 연기가 있다. 류승룡은 자존심과 공포, 체념과 분노 사이에서 흔들리는 중년 가장의 감정선을 큰 사건 없이도 촘촘하게 쌓아올렸다. 회의실에서 눈치 보는 순간의 미세한 표정 변화, 집 앞에서 담배 한 모금 뒤 고개를 떨구는 짧은 호흡 하나에도 캐릭터의 서사가 응축되어 있다는 평가다. 김부장의 아내 역을 맡은 명세빈 역시 과잉을 배제하고 절제된 호흡으로 현실적인 삶의 무게를 표현하며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탱했다. 시청자들은 "배우들의 현실감을 살린 연기 덕분에 더 아팠다", "우리 가족 같아서 눈물이 났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공감 여론은 세대와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40~50대 직장인들은 "우리 아버지 이야기 같다", "내 현실이 그대로 담겼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인사평가에 흔들리는 자존감, 책임감과 생계 사이에서 소진되는 감정이 생생하게 포착되면서 이들에게는 잔인할 만큼 현실적인 거울로 작동했다. 한 시청자는 "회사 다니는 내 친구도 저 김부장처럼 느끼고 있을까 봐 숨이 막혔다"고 적었다.
젊은 직장인들에게도 이 작품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기업 경험이 없더라도 "계급은 달라도 생존 방식은 같다"는 반응처럼, 회사라는 조직의 냉혹한 구조를 누구나 체감하게 만들었다.
물론 비판도 존재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부장은 어쨌든 상위 중산층 아닌가", "진짜 위기의 최전선은 계약직·하청·취준생들이고, 가진 사람이 주인공인 서사"라는 지적이 공존했다. 공감의 폭과 한계를 모두 드러낸 셈이다. 그럼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끝내 남긴 한 문장은 동일했다. "회사 안에서 우리는 모두 불안하다."
방송 성과 역시 설득력이 있다. 이 드라마는 첫 방송에서 전국 기준 약 2.9%의 시청률로 출발해, 최종회에서 7.6%(수도권 기준 8.1%)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다. 단순한 토론 소재를 넘어, 대중적 관심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다.
이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직장인 게시판에서는 퇴직 준비, 재테크 실패, 인사평가 스트레스, 가장의 자존감 등 현실 문제를 다시 꺼내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드라마를 보며 퇴직 시나리오를 처음 그려봤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가장의 역할을 떠안고 있는 친구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단순한 위로나 감정 소비가 아니라, 직장인의 정체성과 노동의 의미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산업적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그동안 국내 드라마 시장은 주로 20·30대를 핵심 타깃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김부장 이야기'는 중장년 서사 역시 충분히 파급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OTT 시대에 세대별로 분절된 시청 패턴 속에서도 교차 공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중년 직장인 서사는 흥행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뒤흔든 사례가 됐다.
결국 '김부장 이야기'가 남긴 질문은 단순하지만 깊다. 직함과 자산, 주소지가 모두 사라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가.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던 삶 뒤에 숨겨진 균열과 흔들림을 드러내며, 한국 직장 사회가 오랫동안 덮어왔던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 이 드라마는 종영 이후에도 한동안 기억될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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