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심으로 불타는 지창욱과, 순수악으로 가득 찬 도경수가 제대로 맞붙는다. 다만 복수극의 참맛을 느끼려면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조각도시'다.

5일 디즈니+ 새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극본 오상호·연출 박신우)가 베일을 벗었다. '조각도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태중(지창욱)이 어느 날 억울하게 흉악한 범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모든 것은 요한(도경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향한 복수를 실행하는 액션 드라마.
지난 2017년 개봉된 영화 '조작된 도시'의 리메이크작이기도 하다. 지창욱은 두 영화 모두 주인공으로 서게 됐다. 이례적인 캐스팅이다. 박 감독은 "드라마화가 된다고 했을 때, 지창욱은 대본이 나오기 전부터 하겠다고 했다. 투자가 결정되는 동안 끝까지 기다려줬다. 이 작품에 애정을 보여주셨기에, 캐스팅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지창욱은 제작발표회 당시 "'조작된 도시'에서 맡은 권유라는 인물과 이번 시리즈의 박태중을 아예 연결 짓지 않고 연기를 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인물 설정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원작 '조작된 도시'에선 한량에 가까운 백수 청년, '조각도시'에선 선하고 근면성실한 배달부다. 지켜야 할 가족과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있다. 식물 키우기에도 능하다. 개미 한 마리 제대로 못 죽일 것 같던 주인공의 설정 탓인지, 돌연 강간살인범으로 몰려 나락에 빠지는 장면은 더 극적으로 비춰진다.
여러 변경점이 더 있다. 126분의 영화 러닝타임을 12부작 시리즈, 총 600여 분으로 늘리기 위해 여러 곳에서 살을 덧붙였다.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몰리게 되는 과정, 교도소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거의 동일하나, 다소 가볍고 만화적인 색채가 짙었던 원작과 달리 리메이크된 '조각도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내내 무거운 톤을 유지한다. 선하디 선한 태중에게 씌인 누명이라는 이 '황당한 재난'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조각도시'의 초반 스토리는 태중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번번이 절망에 빠뜨린다.

지창욱은 이러한 상황 연기에서 제 역할을 해낸다. 캐릭터의 개성과 본연의 매력을 꺼내는 데 애쓰기보단, 그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연기를 충실히 이행하려 한다. 주인공 태중으로서가 아닌, '조각도시'의 피해자 1인으로서 극한의 리얼리티를 뽑아낸 것. 마치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을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왜 이렇게까지 태중을 괴롭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쯤이면, 이따금씩 교도소 바깥에서 거들먹거리며 나타나는 요한의 모습이 비춰진다. 도경수가 연기한 요한은 작품의 최종 보스이자 흑막이다. 원작에선 주인공의 국선변호사가 흑막이라는 반전이 있었으나, '조각도시'는 처음부터 흑막의 정체를 밝히며 두 인물의 궁극적인 대립을 뻔하게 예고했다.
요한은 잔악무도한 사이코패스 갑부라는 설정. 높으신 분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무고한 이들에게 그 범죄의 누명을 씌우는 '조각가'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백일의 낭군님', 영화 '신과 함께' 등 도경수의 필모그래피에선 절대 찾아볼 수 없던 순수악 그 자체다. 이를 의식하듯 악인 연기에 제대로 힘을 준 도경수. 마냥 순수해 보이는 겉모습에 내면의 악함을 장착했다. 초반 분량에선 지창욱에 비해 비중이 크지 않아, 그가 얼마나 악한 인물인지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모두 악센트를 줬다.

힘을 너무 준 탓일까. 그간의 도경수를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약간의 어색함은 이빨 사이 잔가시처럼 남을 수도 있겠다. 연기의 톤과 설정이 대중에게 익숙한 클리셰를 크게 비틀지 않아, '두 얼굴의 악인'을 연기했던 여러 기성 배우들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다.
태중과 요한이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면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조각도시'의 초반부는 이 작품의 시놉시스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복수극의 외피를 썼지만, 교도소 바깥을 벗어나지 못한 태중의 '쇼생크 탈출' 혹은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탈출극에 가깝게 진행된다. 최종보스 요한과의 제대로 된 한판승부를 관람하려면 인내심이 꽤 필요하단 뜻이다. 탈출극과 교도소 내 세력 싸움은 역시나 어디서 본 듯한 평이한 스토리. 그 자체로 신선한 재미를 갖췄다기 보단, 태중을 극한까지 몰아넣기 위한 빌드업 장치로서만 활용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낳는다.
한편 박 감독은 "시리즈라는 매체의 매력을 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며 "매번 새로운 스테이지가 펼쳐진다"고 예고했는데, 4부 말미에는 마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연상케 하는 스테이지가 시작될 것이 예고돼 더욱 의문을 자아낸다. 또 한 번의 단조로움일지 아니면 영화와는 다른, 정말로 새로운 스테이지가 보는 재미를 살릴지 기대해 본다.
'조각도시'는 오는 11월 5일(수) 4개의 에피소드를 공개, 이후 매주 2개씩 공개되며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만나볼 수 있다.
iMBC연예 백승훈 | 사진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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