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희는 남들에게 구박받는 데 익숙한 청계천 의류 공장 ‘청풍피복’의 직원으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지만, 선하고 반듯한 마음씨로 타인에게 가해지는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는 인물이다. 하지만 앞을 못 보는 ‘임영규’와 결혼해 살던 중 갓난아이인 ‘임동환’을 남겨두고 사라져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발견된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묻자 신현빈은 "목소리, 말투, 행동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초반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감독님과 함께 정영희가 어떤 사람일지를 오래 이야기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말을 굳이 하고, 그래서 불편한 정의로움 때문에 멸시당하는 인물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얼굴만이 아니라 움직임과 말투 속에서도 외모라는 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듣기 편하지 않은 목소리를 일부러 연습했지만, 곧 영규의 입장을 떠올리며 "앞을 보지 못하는 영규는 더 예민하게 목소리를 들을 텐데 불편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톤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후시녹음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현장에서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했고, 박정민에게 직접 "듣는 입장에서 어떤지 말해달라"고 부탁하며 목소리 톤을 조율했다고. 신현빈은 "이 사람이 말을 유려하게 하지 않고 머뭇거리더라도 결국은 다정하고 따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촬영 초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는 NG가 몇 차례 있었다. "얼굴이 나오면 안 되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피해야 하는 게 배우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또 재미있었다"고 그는 웃었다. 대신 정영희의 얼굴 사진은 촬영 전부터 참고했다고. "배우들 중에 정영희의 얼굴은 제가 제일 먼저 봤던 걸로 안다. 최종적으로 쓰인 얼굴은 백주상이 촬영한 장면에서 나온 것이지만 코 아래쪽은 제 얼굴이고 그 윗부분은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사진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그 사진을 먼저 보고 연기를 해보니 제가 알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이 주는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촬영이 유난히 어려웠더 장면이 있냐고 물으니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쉬웠던 장면이 있다"며 아기가 함께한 촬영을 꼽았다. "진짜 아기와 감정 신을 찍었는데 너무 놀라웠다. 울어야 할 장면에서 타이밍에 맞춰 울음을 터트리고, 울지 않아야 할 장면에서는 울지 않았다. 대화가 격해지자 양쪽을 번갈아 보다가 울음을 시작하더라. 그리고 컷을 하니 울음을 멈췄다. 아이가 엄마를 바라봐야 하는 장면이 있었으나 강제로 바라보게 할수 없어거 그냥 아이 얼굴에서 엄마 얼굴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자 했는데 아이가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엄마쪽을 쳐다보는 바람에 그 씬이 너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기도 했다. 배우 박정민은 이 아기배우에게 '이기고 싶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촬영 한지 1년 3개월 정도 지난 최근 무대인사 자리에서 다시 만난 아이는 극장 가득 찬 관객 앞에서도 의연하게 걸어와 배꼽인사도 하고 무대 인사가 끝난 뒤 객석으로 걸음을 옮겨 마치 팬서비스라도 하는 듯 보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으로는 "처음 영규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영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소박하지만 친절하고, 설렘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영규와 첫 대화를 나누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에서의 정영희의 감정을 설명했다.
작품 속 정영희의 죽음은 많은 관객들을 울분에 차게 했다. 그런 정영희의 마음에 대해 신현빈은 "마지막 영규의 고백을 듣기 전부터 아마 영희는 알고 있었을것. 영규와 영희가 서로에게 끌린 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영규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물이었고, 영희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감정은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고 두 인물의 갈등을 이해했다.
유독 오해와 편견을 많이 받는 인물인 정영희를 연기한 신현빈은 배우로서 오해나 편견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얼굴이 드러나는 일을 하다 보니 오해가 많을 수밖에 없고, 속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게 된다. 그렇지만 익숙해지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제가 아무리 억울하다 해도 정영희만큼 겪었겠나 싶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신현빈은 이번 작품이 자신에게도 특별한 도전이었음을 강조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는 배우로서는 단점일 수 있지만, 오히려 "새롭고 낯선 시도"였고 "귀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영희는 안아주고 싶고, 동시에 기대고 싶은 캐릭터였다. 남들의 편견과 멸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저도 의지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얼굴'은 지금 극장에서 상영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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