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희는 청계천 의류 공장 '청풍피복'에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살아가지만, 선하고 반듯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가해지는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는 인물이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임영규와 결혼해 갓난아이 임동환을 남겨둔 채 사라지고,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발견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신현빈은 작품에 대한 소회를 묻자 "영화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이번에는 극장을 찾는 감정 자체가 남달랐다. 이 정도 관객 수가 쉽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고, 자본 규모에 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닿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관객이 봐주셔서 저희도 예상 못한 순간들을 맞고 있다. 3주차 무대인사를 끝냈는데, 무대인사 하는 줄도 모르고 현장에서 발권한 관객들이 계셨다. 그게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다. 영화에 입소문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작과 캐스팅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전했다. "원작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용을 잘 몰랐다. 감독님이 실사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박정민이 할 것 같고, 권해효 선배가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제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고 자세한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감독님께 '얼굴이 안 나온다는 게 배우 입장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배우에게 얼굴이라는 무기가 한계이기도 하다'고 말씀드리며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배우에게 이야기 해보시라고 헀더니 바로 '어떻게 생각해?'라고 저에게 물어보시더라. 솔직히 흥미롭게 다가왔고, 이 역할은 흔하지 않은 시도라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검색도 해봤더니 실루엣이나 뒷모습만 나오는 캐릭터는 있었지만 얼굴의 선이 나오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방식은 거의 없더라.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새롭게 시도해볼 용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정영희라는 캐릭터에 대해 "우여곡절이 많지만 용감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그는 "남들의 편견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켜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동시에 안아주고 싶은 인물이었고, 또 기대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영규가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성공하려 노력한 인물이라면, 정영희는 정반대였다. 캐릭터의 단단함과 담대함이 저에게도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서는 "괴이'는 감독님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작품이었고, 제가 처음 함께한 건 '계시록'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 실사 영화이고 지금 하고 있는 '군체'가 세 번째 작품이다. 박정민은 이미 3작품째, 권해효 선배는 4작품을 연상호 감독과 해 오셔서 저는 '페르소나'라고 하긴 그렇지만 감독님이 늘 편하게 해주시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상황을 펼쳐주신다. 제가 망설이거나 고민할 때 빠르고 간결한 판단과 답을 주시는 게 좋다"고 신뢰를 드러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전했다. "'얼굴'에서 박정민과 권해효 선배가 1인 2역이자 2인 1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닮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닿는 부분이 생기더라. 박정민이 먼저 찍고 권해효 선배가 그것을 캐치해 연기했다고 들었는데, 같은 인물을 두 배우가 연기한 연결성이 분명히 있었다. 젊은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가 아들 역할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영화적 효과를 준다고 느꼈다. 만약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의 반응을 직접 접하며 느낀 점도 공유했다. "극장에서 두 번 보고 편집본은 세 번 정도 봤다. 최종본을 봤을 땐 마음이 먹먹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좋은 영화지만 대중적으로 좋아해줄지는 몰랐다.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제에서나 시사회에서 보니 관객들이 굉장히 편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느낌이더라.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저희는 러닝 개런티 같은 계산을 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상황이 계속 커지고 있다. 영화제가 늘어나고 관객들이 많이 봐주시는 것도, 무대인사가 3주까지 이어진 것도 다 감사하게 다가온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이 2.5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이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러닝 개런티를 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소규모 예산으로 제작된 점에 대해서는 "동아리가 영화 만든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정민 배우도 졸업작품 찍을 때 같다고 했는데 저도 예전 생각이 나더라. 거창한 꿈보다는 '우리끼리 재미있게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좋은 방향으로 크게 흘러간 것 같다. 박정민이 노 개런티로 참여한 것도 초반에 알게 됐다. 저도 노 개런티로 하고 싶었지만 전작에서 계좌가 노출돼 있어서 이미 출연료가 입금이 됐다고 하더라. 출연료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출연료와는 다른 차원의 금액이었다. 박정민 배우는 노 개런티로 출연한다는게 일파만파 퍼져서 부담스러워하기도 했지만, 다들 계산 없이 시작했다. 오히려 그 진심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현빈은 "정영희라는 인물은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만의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제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낯선 설정이었지만, 동시에 너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불의에 맞서고, 스스로를 지키는 정영희의 모습에서 저도 많은 걸 배웠다"고 덧붙였다.
'얼굴'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살아가는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어머니의 죽음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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