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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박찬욱 “투자가 끊길까 두려워, 영화인도 고용불안 안고 산다” [영화人]

기사입력2025-10-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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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어쩔 수가 없다'로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iMBC 연예뉴스 사진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인 캐릭터와 경계를 허무는 도발적인 서사, 매혹적인 미장센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그는 제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까지 한국 최초로 칸에서 세 차례 본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거장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관객이 질문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 한국 중산층의 삶에서 최저선은 어디인지, 어느 정도 삶을 영위해야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이 남자가 지키고 싶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영화가 전작 '헤어질 결심'과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비교하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을 좋아한 사람이 이 영화도 좋아할 수 있을까? 보면서도 계속 '이게 정말 많이 다르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둘 다 좋아하면 좋겠죠. 말하자면 '헤어질 결심'으로 제 작품 세계에 입문한 분이라면 놀라고 그래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될 수 있겠고, 전부터 제 영화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당황할 이유는 없을 거다."라며 기존 팬층과의 마찰을 감수하겠다는 용기를 드러냈다.


박찬욱 영화 중 가장 가볍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제일 가벼운 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에 대한 인상은 사실 어떤 장면이 특히 강하게 박혔느냐에 많이 좌우된다. 만수가 아라에게 쫓기면서 뛰어내려오는 와이드 앵글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하면 가볍고 몸개그하는 영화로 기억될 수 있을 거고, 또 다른 장면, 만수 부부가 포옹하고 카운트다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면 가족 드라마로 심금을 울린다고 기억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소설 『The Ax』(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얼개를 간직한 채 인물들을 재해석해 배치했다. "소설은 미니멀하고 냉정한 구조를 띠지만, 영화는 맥시멀하고 뜨겁게 채우고 싶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모두에 의미를 주고, 유머와 블랙코미디를 섞어 절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박찬욱 감독은 "만수 가족의 시선이 더 담긴다는 점이 원작과의 다른 지점이다. 만수의 동기에서 가족이 크게 차지하는데, 독신이었다면 이랬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이병헌 배우의 말이 있다. 동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족이 그렇게 중요한데 범행 동기로만 작용하는 건 아쉽다. 그래서 가족 하나하나의 이야기도 들여다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로 갈수록 만수가 남편, 아빠로서 가족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균형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며 "각색하면서 미리, 아라, 그리고 AI라는 경쟁자 설정까지 새로 넣었다"고 밝혔다.

미리 캐릭터에 대해서는 "원작을 읽은 지 너무 오래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각색할 때 미리를 낙천적이고 현실적인 사람, 개구장이 같은 면을 가진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활동적이고 춤추고 테니스를 치는 사람. 처음 남편의 실직 소식을 들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주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일을 결국 알게 되는 건 원작에 없는 이야기다. 아들이 아는 것도 원작에 없다. 이게 전체 이야기의 큰 터닝포인트다. 만수의 노력은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인데, 그 일 때문에 오히려 가족이 자기를 밀어내게 된다면 다 헛수고가 된다. 각색할 때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후반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인물 구도가 바뀐다"고 밝혔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손예진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만수는 물리적으로 극단을 마주하게 되고 행동으로 많은 걸 표현하고 변화가 많지만, 미리는 집에만 있고 약간의 삽질 정도만 한다. 가만히 보고 몇 마디 하고, 전화 통화 좀 하고, 포옹하는 게 다였다. 그래서 훨씬 어려운 인물을 맡았다. 결국 미묘한 표정의 변화와 어조의 변화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한다. 감정은 만수 못지않게 복잡하고 딜레마가 엄청난 인물인데 표현 수단은 적다. 이병헌보다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 셈이다. 예진 배우가 얼마나 미묘한 표현의 대가인지 잘 보여줬다. 현장에서 잘했을 뿐 아니라 후시녹음할 때도 귀신같이 하더라. 후시녹음은 감독이나 배우나 하기 싫은 작업이다. 촬영 때 했던 걸 똑같이 재현하는 건 어렵다. 입모양도 맞춰야 하고, 현장에서 했던 걸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더 잘해야 한다. 이 기회에 연기를 더 끌어올려야 하는데 예진 배우는 너무 금방 끝냈다. 촬영 때보다 훨씬 잘했다. 미묘한 걸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프로답게 선수같이 능숙하게 해낸다. 오랜 노력과 연습, 준비의 결과지만 확실히 드러났다"고 칭찬했다.


박찬욱 감독은 예전 인터뷰에서 "당장 내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이후에 아무도 제 영화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 배우도 고용 불안 문제를 충분히 고심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해고에 대한 공포가 바탕이 됐다.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모두 인터뷰에서 해고나 실직에 대한 공감을 많이 표현했다. 박찬욱 감독은 "지금은 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예전에 해고 공포를 많이 느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잠재적인 고용 불안이 늘 있다. 저 역시 마찬가지다. 저예산 영화를 찍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가 더 안 될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겁이 난다. 그 공포가 영화의 큰 바탕이 됐다"고 털어놨다.

최근 연상호 감독이 자산을 털어 2억 5천만 원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같이 명성이 있는 감독이라면 이런 제작 방식은 고용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그는 "연상호 감독의 2억짜리 영화 같은 제작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류의 작업이 필요한 기획이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부산행'을 연상호가 그런 식으로 찍겠다고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저도 그런 스토리나 기획이 생기면 언제든 가능하다. 물론 배우에게 사정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연상호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BBC는 '어쩔 수가 없다'를 '올해의 기생충'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계급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중산층은 계급 전쟁을 다룬 건 아니지만, 중산층에 속한 사람이 어떤 욕망을 가지는지, 자기 생활 수준의 전락을 기를 쓰고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속물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다 비슷하게 살고 있고, 만수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살인을 할 정도인가 하는 건 다른 질문이다. 계급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믿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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