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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염혜란 "속살까지 드러났는데, 무기력한 남편 절망스러워" [영화人]

기사입력2025-10-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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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예술가적 기질과 현실적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아라’를 연기한 염혜란. 그는 남편 ‘범모’(이성민)를 향한 애정과 실망, 과거의 그리움과 냉혹한 현실을 오가는 복합적 감정을 담아냈다. '폭싹 속았수다', '마스크걸'로 2년 연속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염혜란은 ‘아라’라는 캐릭터가 처음에는 낯설고 두렵게 다가왔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작품을 박찬욱 감독님과 같이 한다는 게 떨리고 좋기도 하면서 두려움도 있었다. 제가 잘하면 모르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수용이다.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이미지가 있는데, 관객이 ‘아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연기를 이어가면서 그는 의외의 접점을 발견했다. "아라는 저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는 부분은 비슷했다. 저는 오디션으로 뭔가 된 작품이 거의 없다. 늘 전작이나 미팅을 통해 캐스팅됐다. 그런데 ‘아라’가 하는 말을 따라가다 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은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에 묻어뒀던 제 모습을 꺼내게 된 작품이라 더 소중하다."

박찬욱 감독과의 협업은 새로운 배움이었다. "'헤어질 결심'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 외의 작품은 강심장으로 봐야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감독님의 책, 사진집, 작품까지 다시 보며 공부하고 연구를 했다. 감독님의 작품은 상징과 은유가 많은데 저는 리얼리즘으로 접근해왔더라. 영화적 상상과 은유로 봐야 하는데 '나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보니 힘들었던 것 같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보니 더 좋아지더라."라며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며 "처음에는 감독님의 전작들을 떠올리며 색채가 강한 연출로 모든 걸 주관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에선 굉장히 신사적이고 열린 태도로 의견을 나누셨다. 유성희 미술감독의 힌트로 현장에 자주 놀러가서 작업 과정을 봤었는데 시나리오 초고부터 콘티, 현장 버전까지 과정을 지켜본 게 너무 소중했다. 항상 결과물로만 접하던 감독님의 작품을 과정으로 경험하면서 더 빠져들게 됐다. '나는 이런 게 필요하다'고 제안을 하시면 그에 대해 모든 스태프들이 자유롭고 전문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현장을 만들어 가시더라. 특히 ‘올드보이’ 팀이 다시 모인 현장에서 협업을 보는 건 경이로웠다"고 말했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대학로 시절부터 선망하던 이성민과는 첫 본격적인 부부 연기를 펼쳤다. "20년 전부터 대구에서 너무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서울로 왔다는 소문이 있었고 가서 직접 이성민의 공연을 봤었다. 그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번에 같이 연기하면서 단 한마디도 맞춰보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호흡이 맞았다. 자동으로 맞춰지는 호흡이 너무 좋았다. 제가 긴장할 때마다 '나도 어제 잠을 못 잤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큰 위안이 됐다. 선배님 혼자 전화하는 장면을 찍을 때 현장에 보러 갔었는데 누가 앞에서 대사를 쳐 주지도 않는데, 그걸 혼자서 저렇게 풍부하게 채워내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이병헌과의 작업은 유머와 즉흥성이 빛났다. "작은 대사 하나도 다 살려내신다. 뱀 장면에서도 원래는 와이프에게 걸려온 전화에 그냥 '전화 끊자'고 하는 거였는데, '잠깐 뱀에 물려서…'라고 하시는데 작은 것도 너무 재미있게 살려내셨다. 이성민과 이병헌은 제가 배드민턴 공을 떨어질 듯 쳐놔도 위로 올려서 살려주고 멀리 보내 놓으면 그 멀리서도 확 쳐 올려주시는 분 같았다. 모든 신을 마무리해 주시고 살려주시는 분이었다. 뱀에 물린 부분을 빠는 장면은 하면서도 굉장히 민망했지만 재미있는 장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산길 추격 장면에 대해서는 "제 발이 보이는 신은 신발 없이 스타킹만 신고 뛰었다. 현장에서 물론 바닥의 돌을 다 빼고 매트도 깔아주셨지만, 신발이 없으니 정말 힘들더라. '인류가 왜 신발을 발명했고, 그 덕에 수명이 늘었는지 절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씬도 호흡만으로 혼자 마무리하는 이병헌의 연기를 보며 감탄했다. 제 연기는 사실 모두 다른 분들이 마무리해줘서 나온 씬"이라고 말했다.

고추잠자리 시퀀스는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 장면은 음악도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 갔다. 단순히 합을 맞추는 액션이 아니라 개싸움처럼 보여야 했고, 동시에 성적인 긴장감도 묻어나야 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지만 결과물을 보니 웃기면서도 강렬했다. 완성본을 보니 카메라 워킹이 명장면을 완성했다. 세트를 뜯어내고 재세팅하며 찍은 장면이라 모든 스태프의 공이 다 모인 순간이었다."라며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의 노력이 만들어 낸 명장면이라고 이야기했다.


염혜란은 특히 그 장면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가장 절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그 장면에서 어깨가 흘러내려 속살이 드러나는데,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디테일이라고 생각했다. 대본에도 '아라가 구원을 바라보듯이 범모를 쳐다본다'라는 지문이 있었는데, 저는 단순히 바라보는 것보다 '이런 상황에서 속살까지 드러나는데, 남편은 쳐다만 보고 있다'는 무기력함이 더 아라를 절망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쇼파에 가만히 앉아서 쳐다만 보는 남편의 시선이 구원으로 다가오기보다, 오히려 더 싫고 더 절망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어 "저라면 차라리 어깨가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몸이 드러나는 게 불편하기보다, 그렇게까지 드러나는데도 아무것도 못 하는 남편의 무력감이 극대화돼야 아라의 감정이 선명해진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장면은 단순한 노출을 넘어, 관능과 무기력, 부부 관계의 균열을 동시에 드러내는 중요한 순간이 됐다.

염혜란이 연기한 아라의 역할은 극의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라는 영화 초반에 '남편이 죽고 울부짖는 여자'의 역할을 요구받았지만 오디션에 실패했다. 첫날 상복을 입고 오디션을 보러 가고, 돌아온 뒤에는 '남편이 죽고 울부짖는 연기를 하기엔 너무 팽팽한 거지'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진짜로 남편이 죽고 울부짖는 여자의 역할을 연기로 완성한다. 영화 전반에 흩뿌려진 단서들이 하나로 맞물린다."라며 설명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 "첫 등장에서 입었던 상복이 연상되도록 브이넥의 옷을 입는다. 그리고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를 올려 묶어 첫 등장의 이미지와 연결지었다. 그토록 떨어졌던 오디션에 오르는 듯, 경찰과 마주한 장면에서 무대에 오르는 각오로 아라는 준비된 대사와 제 경험을 덧붙이면서 오디션에서 못했던 연기를 완성시킨다. 갑작스럽게 권총 질문이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즉흥으로 풀어갔다. 카메라 무빙이 제 쪽으로 '쑥' 들어올 때는 아라의 머릿속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 과정을 두고 "맨날 그 장면 때문에 오디션에서 떨어지던 인물이 마지막에는 그 장면을 기깔나게 해낸다. 준비 반, 즉흥 반으로 만들어낸 순간이 결국 아라라는 인물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남편이 죽고 울부짖는 여자의 역할을 단순히 연기로 소화하는 게 아니라, 삶을 써서 해낸 거다."

촬영을 끝내고 나서도 이번 작품은 여전히 그를 공부시키는 영화로 남았다. "GV에서 감독님의 설명을 들으면 '아, 저런 의미였구나' 하게 되고, 다시 대본을 펼치게 된다.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끝나고 나서도 저를 계속 공부시키는 작품이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믿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CJ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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