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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박희순 "불안감을 코미디로 포장, 역시 박찬욱" [영화人]

기사입력2025-09-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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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에서 여전히 좋은 연기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배우 박희순을 만났다.

iMBC 연예뉴스 사진

배우 박희순은 제지 회사의 반장 '최선출'로 등장한다. SNS 속에서는 잘나가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비치지만, 술과 자연에 집착하며 외로움을 감추는 인물이다. 주인공 만수(이병헌)와 가장 닮은 듯한 존재이자, 동시에 그의 질투와 불안의 투영체다. 박찬욱 감독이 "박희순 배우가 감정 기복이 크고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밝힌 대로, 박희순은 넓은 감정의 폭을 오가며 선출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박희순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로 강한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그는 망가지고 흔들리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감독님이 제 강점을 보여주기보다 새로운 걸 끌어내려고 하신 거라 생각한다. 변신에 목이 말라 있던 차라서 반가웠다"라며 이 작품을 통해 헐렁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을 기뻐했다.

박희순은 이 캐릭터를 "만수를 거울로 보는 듯한 인물"이라 말했다. "감독님의 첫 주문이 만수와 닮은 희생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게 선출이었다. 알코올 문제,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 폭력성까지 닮아 있다. 머리 가르마 방향만 달랐지 헤어스타일도 만수와 똑같았다. 체형이나 나이도 비슷하고, 얼굴도 길고. 감독님은 저를 캐스팅한 이유를 '이병헌과 비슷해서'라고까지 하셨다. 서로 거울을 마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이 중요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부터 토론토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언론시사까지 수차례 영화를 본 박희순은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는 "처음에는 코미디가 강하게 다가와 웃다가, 두 번째 볼 때는 짠함이 밀려왔다. 세 번째부터는 감독님의 의도가 숨어 있는 곳곳을 해석하게 됐고, 네 번째는 시니컬하게 '정신 차려, 어쩔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웃은 장면이 세 명이 처절하게 뒤엉켜 싸우는 '고추잠자리' 장면이었다고. "그런데 그 장면을 두 번째 볼 때는 눈물이 났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저러고 있을까 싶어 짠했다. 네 번째 영화를 볼 때는 믿었던 손예진마저 범죄의 동조자가 되는 씁쓸함이 더 크게 와닿았다"라며 영화를 볼 때마다 각기 다른 인물에 시선이 가고 같은 장면을 놓고도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박희순은 선출이라는 캐릭터를 위계질서 속에서 처세술로 살아남으려는 인물로 해석했다. 그의 첫 등장에서 만수의 얼굴도 보지 않고 사라지는 게 시나리오였으나 "그렇게 가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술 좋아해도 모르는 사람이 술 한잔 하자고 집에 들일 리 없지 않냐"며 얼굴을 확인하고 돈을 쥐여주는 장면을 제안했고, 그대로 수정됐다. 그 장면에 대해 그는 "상사가 곤란하면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처세술이 우선인 사람이지만, 다시 돌아와 돈을 주는 대목에서 인간적인 미도 묻어났다.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람이 어떻게 직장에서 살아남는지 생존 전략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 많은 배우들이 대사 한마디에도 신경 써서 연기했다고 하지만 박희순의 애드리브는 인상적이었다. "유튜브에서 제지업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는데, '존나 좋아'라는 감탄사가 있었다. 그런 선출의 영상을 만수와 미리가 함께 보며 '상스럽다'고 말하는 대사로 이어졌는데, 이런 이미지를 연결 짓기 위해서 후반부 만수와 술 마시는 장면에서 즉흥적으로 '존나 미안해'라고 애드리브를 넣었다. 감독님이 의외로 좋아하시더라. 대사 하나하나에 민감한 분인데 술 취한 상태의 표현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라며 박찬욱 감독의 의외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다양한 감정을 대변한다. 박희순은 여러 감정 중 '불안'을 강조했다. "영화를 관통하는 감정은 불안이다. 실직했을 때나 하기 전이나, 다시 이 업계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내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모든 걸 꼬이게 한다. 선출도 겉으로는 호기롭게 보이지만 사실 가장 움츠러들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배우라는 직업에도 겹쳐봤다. "배우는 정규직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보장도 없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늘 조심스러운 직업이다.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다"라며 자신의 삶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에 영화에 특히나 쉽게 감정이입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만수가 선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만 그렇게 만수가 꿰차고 들어간 현장은 AI를 대신하는 임시직이었다. 선출이 계속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AI를 대신하는 임시직 일을 했었어야 하는 것. AI 기술이 연기와 영화계에 끼칠 영향을 묻자 그는 "AI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내가 하지 않은 영상을 AI로 만들어 보여주는데 깜짝 놀랐다. 광고나 드라마도 영향을 받을 거다. 그래서 더더욱 감정 연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정교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AI도 흉내 낼 수 없는 연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만수가 충치를 뽑을 때 놀라는 모습 같은 표정은 AI도 흉내 못 낼 것"이라는 농담을 더해 웃음을 안겼다.

인터뷰 말미, 박희순은 이번 작품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불안을 코미디로 포장한 실험 같은 작품"이라고 정리했다. "감독님은 직관으로 다 보여주지 않고 생각하게 한다. 겉은 코미디지만 안에는 거대한 공포와 섬뜩함이 있다. 불안을 견디는 시대, 배우로서도 그 불안을 안고 연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게 '어쩔 수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 아닐까."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9월 24일 개봉해 지금 상영중이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매니지먼트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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