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에도 기대가 있었지만 손예진의 7년 만의 컴백작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기대치가 높았던 작품이다. 그는 "원래 미리의 분량이 적었음에도 감독님의 작품이기에 선택했다. 사실 그 작은 캐릭터가 색깔이 있어 보이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해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해도 캐릭터가 특별히 연기적으로 보여줄 만한 여지가 많지 않아 보였다. 대사나 상황이 임팩트가 있는 역할이 연기하기 더 쉬울 수 있는데, 잔잔한 캐릭터는 연기가 어렵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도 했고 7년 만의 연기 복귀라 더 욕심도 있었지만, 결국 감독님과 꼭 작업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병헌이 하는 연기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는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미리의 분량이 늘어나기도 했고, 하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며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를 설명했다.
원작에도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은 미미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미리의 분량은 더 늘어났다. 손예진은 "후반부는 물론이고 중간에 춤추는 장면도 원래 없었던 것 같은데 감독님이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써주셨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분량이 너무 적어 임팩트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십사 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박찬욱 감독 작품이니까 한 거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감독님이 그걸 지키기 위해 편집까지 고민하셨다고 하더라. 결과물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손예진은 "내가 너무 한 게 없는 것 같아 배우로서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음악이 들리고 이야기가 흘러가며 그림이 예쁘게 나오는 걸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봤지만 그곳의 극장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봤지만, 어제 아이맥스로 크게 본 게 처음이었다. 극장에서 크게 보니 역시 다르게 보이더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은 배우로서 안심되는 과정이었다. 그는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했는데 속도가 촉박하지 않았다. 한 번에 오케이를 내야 하는 부담이 없었고, 열 번이고 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집요하게 원하는 걸 끝내 해내고야 마는 스타일이라 스스로도 단련되며 여유가 생겼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지켜보며 한껏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조명과 미술, 세트 리허설 후에도 시간을 두고 다시 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로운 현장은 아니었다. 손예진은 "저는 대사를 대사 같지 않게 하는 연기를 선호한다. 띄어쓰기도 색다르게, 말투도 전형적이지 않게 하고 싶다. 그런데 감독님은 국어책을 처음 읽듯 한 단어 한 단어를 정확히 말하길 원했다. 장단음, 발음, 어떤 단어가 귀에 약하게, 세게 들리는지에 매우 민감하셨다"고 설명했다. 부부싸움 장면에서는 "저는 속사포 랩하듯 세게 내뱉었는데 감독님은 너무 귀에 박히지 않게 작게 해달라고 하셨다. 최근에 있었던 술자리에서 제가 감독님께 제 방식대로 대사했던게 더 어울렸을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감독님도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오면 어떤 버전이 더 좋은지 배틀해 보자고 하시더라"고 웃으며 전했다.

박찬욱 감독과의 첫 작업에서 얻은 것도 컸다. 그는 "작품을 하고 나면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이번엔 대사의 밀도를 다시 보게 된 것이 수확이었다"고 했다. 특히 이경미 감독이 각색에 참여하면서 "현실이 웃프게 다가오는 순간들, 진지한 상황에서 웃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너 예쁘잖아'라는 대사도 이경미 감독이 쓴 것인데,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현실감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런 방식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어쩔수가없다'는 국내 개봉 이전에 베니스 영화제와 토론토 영화제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특히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한 분야도 수상되지 않아 아쉬움을 안겼는데 손예진은 "현지에서 리뷰가 실시간으로 너무 좋아서 당연히 상을 받을 줄 알았다. 특히 이병헌이 연기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불발돼서 '에?' 하는 반응이었다. 상은 작품성뿐 아니라 사회적 상황, 심사위원의 시선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니까 아쉬움이 있었다. 대신 토론토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20대에 베니스에 갔다면 그냥 '여기가 베니스구나, 여기가 칸이구나' 정도였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도 낳고 공백도 겪고 난 뒤라 감독님과 함께 간 그 순간이 더 아름답고 뭉클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연기를 오래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신을 들어가면 괴롭다. 다만 이제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조금 더 여유 있게 연기를 바라보게 됐다"며 20대 시절과 달리 지금의 나이에서 느껴지는 연기에 대한 생각을 되짚었다.
손예진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연기하는 소중함을 느꼈다. 긴 공백 끝에 박찬욱 감독, 이병헌 배우와 함께한 경험은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하루아침에 해고된 뒤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는 이야기 '어쩔 수가 없다'는 9월 24일 개봉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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