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에게 경찰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40년 전 실종된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 얼굴조차 몰랐던 어머니가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임동환'은 아버지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4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청계천 의류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의 기억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 비포 스크리닝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2018년 쓰고 그린 첫 그래픽노블 '얼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으로 뾰족뾰족했던 태초의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의 귀환이라 할 만한 작품인 셈.
이 작품은 독립영화라는 설이 있었다. 연상호 감독이 독립영화를? 알고 보니 그만큼 소규모 자본으로, 개인 돈과 제작사의 돈 2억 규모로 영화를 만들어서였다. 요즘 같은 고물가에 쟁쟁한 배우, 스태프와 일하면서 제작비 2억의 영화라니. 그런 의미에서도 많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연상호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기대치가 높지만 여기에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등이 출연한다. 연상호 감독과 함께 작품을 자주 한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이들 배우들은 다른 작품에서도 주인공 역할을 하는 배우들인데, 심지어 박정민은 노 개런티로 1인 2역을, 신현빈은 얼굴이 한 번도 보여지지 않는 역할을 기꺼이 자처했다.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받으며 한국보다 캐나다에서 먼저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이는 영화 '얼굴'은 여러 의미에서 궁금해진다.


▶ 애프터 스크리닝
영화의 엔딩을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40년 만에 백골로 발견된 어머니의 죽음이 진짜 타살일까를 궁금해 했고, 무엇 때문에 타살당했을지 합당한 이유를 얻어내려고 따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타살이고 범인이 누구인지, 어쩌다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범인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고백에 몇 배나 더 큰 놀라움과 충격, 경악을 하게 된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이 '부산행'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연달아 크리처물과 장르물로 쏟아져 나오면서 솔직히 "아이디어와 시작은 좋았지만 그게 전부"라는 아쉬운 평가를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에서 늘 반짝였던 아이디어들이 항상 사회에 대한 질문과 문제 제기였다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의 화살촉은 사회가 아닌 인간 본연의 마음을 향해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끌고간 스토리텔링은 정말 좋았다. 103분의 러닝타임으로 짧은 편이지만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따라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괜히 '연상호의 초심'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눈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없고, 마음의 눈이 열려있느냐 닫혀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시각장애인임에도 아름다운 글씨를 새기는 전각장인이 된 인물과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과 자격지심, 트라우마가 추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인물이 현재와 과거, 아버지와 아들, 혹은 나와 또 다른 나로 반추되는 설정은 관객들의 머리속을 어지럽게 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씬 이야기나 캐릭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깝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박정민과 권해효가 얼마나 깊이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얼굴이 아닌 목소리와 행동으로도 좋은 연기를 펼쳐낸 신현빈의 저력도 알 수 있었다.
고작 20여 명의 스태프만으로도 70년대의 모습을 재현해 낸 걸 보면 한국 영화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좀비, 크리처, 사이비 종교, 화려한 VFX 없이도 이렇게 숨 막히는 미스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연상호 감독에게 엄지 척!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얼굴'은 9월 11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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