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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예능 늦둥이, 그들의 과거

기사입력2009-11-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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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가에서는 ‘옥체는 편안하신지’ 너무나도 궁금한 부실 아저씨들이 예능 늦둥이로 거듭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쉽게 지치고 말귀 못 알아듣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인 이들. 그런데 이들이 한때는 꽤나 잘나가던 사람들이었단다. 예능의 중심에 선 초라한 아저씨들의 화려했던 과거는 어땠을까? 

 





김태원

‘할머니’ 캐릭터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진정한 예능 늦둥이. 우연찮게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겨진 예능의 끼를 만천하에 드러내면서 예능 섭외 1순위 스타가 되었다.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서 맡은 할머니 약골 캐릭터로 강세. 지금이야 긴 머리 주체 못해 웃음을 사고 빌빌대고 있지만, 한때 김태원은 가장 잘나가는 카리스마짱 기타리스트였다.



그는 1986년 록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당시 부활은 기타리스트 김태원과 보컬 이승철이 투 톱을 이루고 있던 상황이었다.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의 노래가 히트를 치며 부활 1, 2집은 인기 앨범이 되었다. 인기를 얻자 이승철은 부활에서 나와 솔로가수로 독립했다. 김태원과 이승철의 이름을 같이 언급하는 것은 바로 당시 상황 때문이었다. ‘이승철이 인기를 얻자 그룹을 버리고 혼자 솔로로 나와버렸다’는 김태원의 주장에 맞서 이승철은 ‘모두 오해다’라고 밝히고 있는 상황. 여전히 김구라를 위시한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김태원과 이승철의 결별이 여전히 재미있는 소재다. 부활 3집을 위해 영입한 보컬 김재기는 ‘사랑할수록’이란 곡을 녹음한 뒤 앨범 발매 직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2002년 부활 8집 발표 당시 이승철이 다시 보컬로 참여하기는 했다. 이때 인기를 얻은 곡이 바로 <내조의 여왕>으로 다시 한 번 빛을 본 ‘네버엔딩 스토리’다.



‘김태원은 카리스마 넘치는 기타 실력 외에도 감성적인 작곡 실력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사랑할수록’ ‘네버엔딩 스토리’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소나기’ ‘회상’ ‘Lonely Night’ 등이 김태원의 대표곡. 그 외에도 240여 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상당한 기간을 암울하게 보내야 했다. 대마초를 피워 구속돼 수감생활을 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기타를 손에서 놓았다. 노숙자 생활을 했던 상황을 고백하기도 했을 정도.



<라디오스타> ‘기러기밴드’ 특집에 기타리스트로 등장하여 솜씨를 발휘하나 했더니 알코올 중독 탓인지 손 떨림 증세에 ‘연주 안 하고 기타에 손 그냥 올려놓기’ 퍼포먼스만 주구장창 보여주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부활 앨범을 발매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부활의 전국투어를 위해 <샴페인>에서 하차하는 등 카리스마 음악인으로 재기하려고 노력 중이다.


 





유현상

한여름에도 땀 뻘뻘 흘려가며 검정 가죽 재킷을 입고, 가성 샤우팅 창법으로 ‘Up in the sky’를 부르던 유현상. 1970년대 사계절, 사랑과 평화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 1980년대 록 그룹 백두산의 보컬로 영입되었다. 1986년 백두산 1집, 1987년 백두산 2집을 발표하며 당시 부활, 시나위와 함께 록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갔다. 하지만 2집 활동 후 유현상은 백두산에서 탈퇴하고 독립한다.



그 이후는 충격의 연속이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이지연의 제작자로 나서며 ‘난 아직 사랑을 몰라’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같은 히트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이후 록 보컬리스트에서 과감히 트로트 가수로 전향, 트로트 곡 ‘여자야’ ‘갈 테면 가라지’ 등을 선보이게 된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1991년 13살 연하의 수영선수 최윤희와 결혼을 발표한 것. 최윤희는 1980년대 아시아대회를 석권했던 ‘아시아의 인어’라 불리던 인기 수영선수이자 국민여동생이었다. 미녀와 야수 수준을 넘어 혹자는 ‘현재로 따지자면 김연아와 김구라의 만남’으로까지 얘기할 정도다. 당시 결혼식도 한 절에서 몰래 치르면서 더 이슈가 되었다.

올해는 20여 년 만에 백두산 원년 멤버들이 모여 백두산 4집을 발표했다. <세바퀴>에서 잠깐 선보인 ‘반말마’가 수록된 앨범이다. 


 



 



최양락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반짝 인기를 누릴 때만 해도 다시 뜨나 보다 했다. 하지만 과거와 확 달라진 방송생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버림받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숟가락 들이밀며 떠밀려가지 않으려 고군분투 중. 재미있게도 현재 최양락이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이 모두 과거 한때 황금기를 구사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것. SBS에서 정형돈과 함께 출연하는 <괜찮아U>는 전국 특산물 소개 코너. 종영했지만 Mnet <최양락의 닷까지Z> 역시 알까지 해설가로 날리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화려한 과거는 현재의 밥그릇까지 챙겨준다.



최양락은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에 당선되며 코미디계에 입문했다. 그가 출연한 대표적인 개그 프로그램으로는 ‘네로 25시’ ‘괜찮아유’ ‘최변호사, 김변호사’ ‘고독한 사냥꾼’ ‘남과 여’ ‘알까기’ 등이 있다. ‘네로 25시’와 ‘남과 여’에서 함께 출연했던 팽현숙과 1988년 결혼했다. 유행어로는 ‘괜찮아유~’ ‘물론~ 있지요’ ‘나는 봉이야’ ‘알까~기 정말 잘 까는군요’ 등이 있다. 

 





이봉원

줌마테이너의 선두주자 박미선의 ‘속 썩이는 남편’ 이봉원. 각종 사업을 말아먹느라 TV에 뜸했던 이봉원은 요즘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전의 개그감을 되살리고 있다. 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로 데뷔를 했고 ‘시커먼스’ ‘동작 그만’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시, 시 시커먼서’ ‘아, 아 아르바이트’ 등의 유행어가 있으나 유행어보다는 어수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동작 그만’의 ‘곰팽이’ 캐릭터로 더 유명하다.


 



윤종신


주워먹는 개그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윤종신. 2008년 11집 앨범 <동네 한 바퀴>를 발매하며 여전히 가수임을 입증했으나 현재는 테니스선수 전미라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 ‘패밀리가 떴다’의 힘없는 어르신, ‘라디오스타’의 막말 진행자로 더 유명하다. 공중전화 요금이 십 원짜리 두 개이던 1990년 그룹 015B의 객원가수로 등장해 ‘텅 빈 거리에서’ ‘친구와 연인’ 등의 노래를 불렀다. 1991년 1집 솔로앨범을 발표했고, 그동안 가수로 인기를 얻었던 곡은 ‘팥빙수’ ‘너에게 간다’ ‘너의 결혼식’ ‘내 사랑 못난이’ ‘오래전 그날’ 등이다.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많이 탁해졌지만 데뷔 당시만 해도 윤종신은 모두가 알아주는 미성가수로 유명했다.


 



김국진

1991년 KBS 대학 개그제를 통해 데뷔했다. ‘밤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자장면 시키신 분’ ‘여보세요’ ‘오 마이 갓’ ‘사랑해요’ ‘희안하네’ 등의 무수한 유행어를 만들었다. 국진이빵을 출시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함께 출연했던 이윤성과 결혼하였으나 몇 달 후 협의 이혼한다. 이혼 후 프로골퍼가 되겠다며 골프장에서 두문불출하고, 팻채널의 대표이사를 맡는 등 방송가를 떠나게 된다. 몇 년 만에 ‘라디오스타’를 통해 데뷔하여 이혼전문 진행자로 자리매김했다.



김국진은 이미 데뷔 초인 1992년 ‘감자꼴 4인방 사태’로 잠시 방송을 떠나게 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KBS는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 김수용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들을 메인으로 기용했는데 이를 시기한 선배 개그맨들의 방해로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MBC로 자리를 옮겼으나 역시 선배들이 방송국까지 찾아와 행패를 놓는 바람에 한동안 미국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 


 



임예진

한때 ‘국민여동생’이라 불렸던 인기배우였던 임예진. 그 한때는 물론 꽃 같은 여고생 시절이던 1970년대 중후반이다. 데뷔작은 중학교 2학년 때 출연한 영화 <파계>로 비구니 역을 맡기 위해 삭발을 감행했다. 하이틴 스타로 입지를 굳힌 대표작은 1976년의 <진짜 진짜 잊지마> <진짜 진짜 좋아해> 등이다. 당시 영화에서 임예진의 상대 남고생으로 인기가 높았던 이는 이덕화와 전영록. 1980년대 초반 성인 연기를 시작했으나 워낙 단발머리 교복 입은 국민여동생의 이미지가 강한 탓에 연기 변신을 하지 못하고 얼마간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바퀴>에서 각종 분장 개그를 선보이고 온갖 구박을 받는 천덕꾸러기 캐릭터로 변했다. 1974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 외에 게스트로 각광받는 ‘겉절이’들로는 성대현, 김종진, 이상민, 고영욱, 성진우 등이 있다. 성대현은 1995년 ‘상심’이란 곡으로 데뷔한 3인조 남성그룹 R.ef의 멤버였다. 보컬 실력이 안 돼 팀 해체 후에도 솔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요즘은 예능으로 먹고 산다. 김종진은 4차원 게스트로 유명한 이승신의 남편이다. 1988년 그룹 봄여름가을겨울로 데뷔했으며 대표곡으로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떤 이의 꿈’ 등이 있다.



한때 신정환도 몸담았던 혼성그룹 룰라는 1994년 1집 음반을 발매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룰라는 몇 번의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고 있는 중. 1995년 발표한 룰라 3집 곡 ‘천상지애’는 표절 논란이 일어 이상민이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현재 이상민과 고영욱은 과거를 폭로하는 스타일의 토크로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성진우는 1994년 ‘포기하지 마’를 선보이며 등장한 솔로 남성가수. 태진아가 발탁하여 가수가 되었으나 트로트를 권유하는 태진아를 떠나 한동안 가수활동을 접었다. 이후 ‘딱이야’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이지현 기자 | 사진 TVian | 사진제공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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