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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기 식으로 봐줬으면 좋겠다”<파주> 박찬옥 감독 인터뷰

기사입력2009-10-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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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본 사람들은 기대하고 본 사람들은 잊지 못한다. 지금 <파주>는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영화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찬옥 감독은 평소처럼 말하는 시간보다 말과 말 사이가 훨씬 길었고, 생각에 잠긴 듯한 무표정도 여전했다. 그러나 질문에 대해 반문할 때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얼핏 새 작품을 막 내놓은 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Q. 부산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하던데, 기분이 어땠나.

A. 사람들이 극장 앞에서 기다렸다 배우가 나타나면 막 다가가려고 할 땐 남의 일 같고 ‘아, 정신 산란해’ 그랬는데(웃음) 정작 나랑 같이 일하는 배우들한테 사람들이 열광해 주고 성원해 주니까 너무나 바보같이 기분이 좋아지더라.(웃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Q. <질투는 나의 힘> 이후로 6~7년이 지났다. 공백기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나.

A.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에 다니면서 2년 정도 단편영화를 찍었다. <파주> 시나리오는 2005년도에 썼다. 그러니까 2007년쯤에는 완성이 돼야 하는 건데 한 2~3년을 기다린 거다. 다른 영화를 찍으려는 시도도 안 했다. 지금도 그 시간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다. 기다리지 않고 버리고 새 작품을 찍어도 될 시간이었으니까.





 





Q. 왜 그런 건가.

A. 약간 낙천적인 성격도 있고, 게으른 탓도 있고.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제작이) 완전히 좌절이 되면 포기를 하겠지만 약간의 여지는 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먼저 접는 게 쉽지는 않았다. 사실은 자기가 스스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영화, 시간이 오래 가도 지루해지지 않고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만한 모티브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Q. 촬영 현장에서는 즐거웠나.


A. 옛날에는 혼자 하는 게 더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현장에 가면 좀 아이 같아지는 것 같다. 스탭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이번 영화는 집에서 출퇴근하듯이 찍지 못하고 숙소에서 단체로 생활하며 찍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한테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좋았다. 촬영 전체가 여행 같았다.




Q. 이선균은 술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서우도 술을 잘 마신다던데, 함께 술도 마셨나. 


A. 마신 적 있다.(갑자기 재미있는 듯 웃음) 연말 즈음에 같이 일을 하기로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새벽 서너 시까지 술을 마셨다. 그날 밤에 눈이 참 많이 왔는데 사람이 술을 많이 먹으면 천진스러워질 때가 있지 않나. 그날 갑자기 누군가 산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나랑 촬영감독, 이선균, 서우, 이렇게 넷이 술집 근처 뒷산을 막 걸어올라갔는데 서우는 아마도 갑자기 이 새벽에 왜 산에 올라가야 되는 건지, 나이든 사람들과 놀다 보니 별 이상한 짓을 다 해야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웃음)





Q. 서우를 캐스팅할 때 이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는 배우가 될 거라고 예상했나.


A. 남들이 곧 그럴 것이다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은 내겐 없다. 어찌 보면 남들이 보는 걸 나도 봤다고 생각한다. <미쓰 홍당무>를 보고 나서 아, 저 배우 참 생생하다, 살아 있다고 느꼈다. 서우가 맡은 은모 역은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를 따로 구분할 생각이 아니었고, 그러자면 20대 초반의 배우를 써야 하는데 20대 초반이라면 연기력 면에서 누구를 캐스팅하더라도 다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Q. 함께 일해 보니 어땠나.

A. 서우는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정해진 동선대로 움직여 준다. 촬영감독이 놀랄 만큼. 그렇다고 해서 인형처럼 수동적이냐, 그렇진 않다.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표현을 한다. 저런 얼굴, 저런 표정들은 어떻게 나오는 건지 싶은 그런 생생함이 있다.




Q. 파주라는 공간에 영감을 받아 거기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에 파주가 어울렸던 건가.

A. 약간 동시다발적인데 파주가 먼저였던 건 아니다. 사람이 먼저였고, 그런 생각을 할 때쯤에 어떤 한정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Q. <파주> 예고편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거의 SF처럼 느껴질 정도로 안개가 짙게 깔린 데서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더라.

A. 파주가 실제로 그렇다. 나도 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앞이 1~2m 정도밖에 안 보일 정도의 안개를 경험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눈을 평생 못 봤는데 영화를 통해서 그걸 경험하듯이 이 영화를 본 사람 중 몇몇은 이런 안개를 한 번도 경험 못 해봤을지도 모를… 그런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Q. 그 안개가 낀 파주라는 공간이, 인물의 성격을 형성하거나 상징하는 바가 있는 건가.

A. 파주라는 공간에 대해서 상징성이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부산에 살면 부산의 영향을 받는 거고 서울에 살면 서울의 영향을 받는 거고, 사막 지대에 살면, 혹은 런던처럼 비가 많이 오는 그런 데 살면 그런 곳의 영향을 받는 일반적인 정도다.




Q. 철거투쟁 이야기가 나오니 후일담 영화라는 평도 나오고 용산참사 이야기도 나온다. 

A.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그렇진 않다. 출발은 이런 거다. 어떤 남자가 다같이 하는 어떤 일의 핵심 인물인데 거기에 참여하는 여자가 하나 있다. 그 다같이 하고 있는 일을 여자가 망쳐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가 대의를 선택할 것이냐, 개인적인 선택을 할 것이냐를 결말에 넣고 싶었다. 그때 다같이 하는 일을 뭐로 할까 고심했다. 처음에는 무슨 해양연구소의 핵심인물을 남자 주인공으로 할까 했는데(웃음) 그건 너무 예산도 많이 들 것 같고 접근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여러 가지 다른 걸 찾다가 철거투쟁으로 하게 된 거다. 운동권 인물을 그리거나 후일담 영화를 찍으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용산참사하고는 상관이 없다. 시나리오는 그 훨씬 이전에 쓰여진 거니까.

 


 





Q. <눈사람>이라는 드라마를 봤나. 형부와 처제가 사랑하는 이야긴데.

A. 아, <눈사람>? 약간 봤다. 당시엔 배우들이 참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원래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자매가 아니라 남맨데 주인공의 누나가 죽고 매형과 이 남자가 같이 지내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남자 역은 양동근에게 맡기려고. 그런데 <질투는 나의 힘>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할 거 같아서 자매로 바꿨다. 자매로 바꾸니까 아, 이거 형부 처제 이런 얘기 하겠네… 그런 생각을 잠시 하루 정도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할 거냐 말 거냐, 하지 뭐 그렇게 된 거다.




Q. 그럼 애초부터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떠올린 게 아니라 같이 지내게 된 사람들 간의 감정이 중요했던 건가.

A. 그렇다. 유사 가족 관계, 그게 먼저였다. 남매든 자매든.




Q. 그래선가. 메이킹 영상 보니까 “너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대사에 대해 물어본 게 나오던데, 30% 정도는 남녀감정이고, 70%는 불쌍한 사람이 불쌍한 사람에게 하는 얘기다, 라고 했다. 둘 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A. 나도 그런 걸 퍼센테이지를 나눠서 말할 필요를 못 느꼈는데, 그냥 시나리오 땐 자연스럽게 사람 대 사람으로 좋아하는 것과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둘이 언제부터 사랑했냐, 성적인 사랑인가 아닌가 자꾸 분리해서 묻더라. 그렇게 딱 분리될 수 있는 건 아닌데, 하도 그렇게 물어보니까 그냥 대답한 거다.




Q. 그 대사가 들어간 장면을 36시간 촬영했다던데. 이선균 인터뷰를 보니까 OK가 났는데 이선균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 마음에 들 때까지 찍으라고 했다고 하더라. 결국 고른 것은 나중에 찍은 거였나.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나.

A. 그렇다. 나는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 없어, 라는 말은 육체적으로 피로하고 정신적으로도 차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거다, 얘가 멀쩡한 상태면 계속 자기 속을 자제하고 있었을 텐데 농성한답시고 약간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긴장을 계속 유지하면서 물대포도 맞고 이런 일상적이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여러 번 했는데 그 느낌이 뭔지를 배우가 정확히 잡기 어려워했다. 근데 아닌 게 아니라 촬영이 길어져 피곤하고 힘드니까 지금 말하는 상태의 이 기분이 뭔지를 알겠다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찍었다.




Q. 지금 <파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만들 때는 ‘인상 깊은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한 편의 영화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자기 식으로 봐주길 바란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정보를 안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근거해서 영화를 봐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별생각 없이 한번 봤으면 좋겠다.

김지현 기자 ㅣ 사진 조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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