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을 알아내기엔 엄청 짧은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동안 '진심을 느꼈다'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진심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은 아주 각별한 존재가 된다.
올 한해 iMBC연예 기자들에게 각별한 존재가 된 이들은 누가 있을까.
가수 백지영, 데뷔 25주년 미니앨범 '오디너리 그레이스' 발매 기념 인터뷰 "유쾌한 달변가가 진심으로 눈을 빛낼 때."
연륜은 이럴 때, 이렇게 백지영처럼 발휘하는 것인가 보다. 매체와 셀럽의 인터뷰는 시늉과 홍보의 장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안타깝지만 사람과 사람 간 대화보단 준비된 답변을 늘어놓는 연예인과 그걸 받아 적기만 하는 기자들의 업무 일환에 가까워진 요즘이다. 이럴 때 백지영과의 대화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어떤 모양새의 질문을 던져도 재깍 의중을 파악하고 쓸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농익은 말솜씨였다.
태도는 유쾌하다. 25년을 노래했으니 경력으로 치면 가히 압도적이다. 오래할수록 자신의 말이 곧 정답인 인터뷰이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백지영은 아직도 상대의 의견과 생각을 궁금해하고 참고한다. 기자 질문에 반문을 던져 상대의 생각과 감상을 묻기도 하며 삭막한 인터뷰 분위기를 풀어낸 역시나 대찬 그녀였다.
눈을 가장 빛낼 때는 음악 이야기 할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가 만들어 놓은 틀에 목소리만 제공한 가수들은 알맹이 빠진 대화에서 단번에 티가 난다. 전반을 두루 살펴 공을 들인 백지영은 어느 방향으로 찔러봐도 꽉 찬 답변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배너(VANNER, 태환 곤 혜성 성국 영광)의 미니앨범 발매 기념 인터뷰 "말주변 좀 없어도 괜찮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만 두 번, 도합 3번을 만나 인터뷰를 나눈 배너다. 사실 인터뷰 난도가 낮은 친구들은 아니다. 아직은 신인 축에 속해 능글맞게 너스레를 떨지 못하고, 답변에 신중을 기하느라 다소 굳은 자세로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는 편이다. 안면을 튼 기자를 발견하면 인사를 나누고 싶어 쭈뼛거리며 한참을 맴돌다가 마주하면 고개를 꾸뻑하고 우르르 도망치는 모양새다. 이러한 태도의 무게는 진심의 무게나 다름없다. 모두가 함께 모여 공들인 앨범을 설파하는 자리를 쉬이 여기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배너의 인터뷰 답변은 잔상이 길다. 여러 번 만나보니 매번 목표나 신조가 한결같아 더욱 믿음이 가는 이들이다. '피크타임'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우승해 무명 설움을 떨쳐내고 유명세를 얻은 케이스다. 서바이벌 우승 가수는 천편일률적으로 자기만의 세상에 갇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뚝 떨어진 달콤한 인기에 취해 주체하지 못하고 객관성을 잃기 쉬운 시스템이다. 반면 배너는 '알바돌' 수식답게 배고파본 아이들이다. 이 대목에서 도드라지게 티가 난다. 우승 후 달라진 일상을 물으면 "스태프들께서 과자를 준비해 주셨더라고요. 정말 감사해서 뭉클했어요"라고 말한다. 두 번 세 번 만나 똑같이 물어도 "오늘은 이런 걸 준비해 주셨더라고요. 우리가 뭐라고"란다. 사소하지만 주변을 살피는 심성과 감사할 줄 아는 진심이 묻어나는 답변이다.
배우 이종원의 '취하는 로맨스' 종영 인터뷰 "뜨거운 열정을 나눔할 줄 아는 사람"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 이종원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 한 해 ENA '취하는 로맨스'부터 시작해 MBC '밤에 피는 꽃', MBN '나쁜 기억 지우개'까지 총 3개의 작품에 주연으로 나서며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낸 이종원. 그는 세 작품을 모두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올해가 가기 전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약 50분간 진행된 인터뷰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50분 동안 이종원은 올 한 해 자신이 선보인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평소 자신의 생각과 고민거리들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선택한 배우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을지 꾸준히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본받아야겠다'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질문을 하더라도 그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마치 취재진도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마법까지 부릴 줄 아는 배우 이종원. 추운 날에 만났지만 50분 동안은 그의 나긋한 목소리와 뜨거운 열정으로 추위를 잠시 잊게 했다.
배우 오정세, 'Mr. 플랑크톤' 인터뷰 "연기로 소통하고 싶어"
넷플릭스 'Mr. 플랑크톤'에서 어흥 역으로 '이 시대 다시없을 순정남' 어흥 역을 연기한 오정세를 만났다.
이 작품에서 어흥 역으로 천연덕스럽고 맛깔난 연기를 펼쳐 시청자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한 오정세를 인터뷰를 통해 실제로 만나보니 수줍은 성격의 조용조용한 사람이지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누구보다 목소리가 커지고,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해지는 사람이었다.
"작품 재밌게 잘 봤다"라는 칭찬에 다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수줍어하더니, 어떤 점에서 가장 좋았냐며 역으로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본인은 이런 점들이 좋았다며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줬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직접 준비한 선물이 있다며 기다려 달라더니, 기자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편지와 제1146회차 복권 용지를 건넸다.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복권 용지가 담겨 있었고, 용지 뒷면에는 오정세의 사인도 들어가 있었다.
오정세는 "1등 당첨되면 소속사로 연락달라"면서 "밥 한 번 사라"고 재치 있게 말해 웃음을 안겼다. 그나저나, 복권 결과는 '낙첨'이었다.
배우 남윤수 '대도시의 사랑법' 종영 인터뷰 "'굳은 심지'가 여전히 눈에 밟힌다"
티빙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주연으로 나선 남윤수. 퀴어 소재 드라마 출연 부담도, 그로 인해 쏟아진 악플도 전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그는 담담하면서도 여유롭게 인터뷰에 임했다.
그런 남윤수의 눈이 잠시 흔들리던 순간은, 자신이 연기하던 때를 회상할 때였다. 키스신 비하인드를 물으니 그렇게 세상 천진할 수 없다. 그때 문득 '아이 같은 눈망울과 미소가 참 잘 어울리는 배우다' 싶었다.
해당 인터뷰는 그가 아버지에게 신장을 기증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 처음으로 취재진들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작품을 거리낌 없이 선택한 배우의 심지를 이 지점에서도 눈여겨볼 수 있었다. 장기 기증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소신과 분명한 확신이 서려있었다. 1997년생, 나이 27세 남윤수에게 느낀 바였다.
배우 고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종영 인터뷰 "그의 매력을 텍스트에 오롯이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
작품에선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극을 내내 지배했던 형사 노상철이 바깥 세계에선 180도 뒤집힌 '깨발랄' 고준이 됐다.
그의 유머러스함에 기자들의 손은 잠시 노트북을 떠나 애써 웃음을 참는 입으로 향했다. 배우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리드하는 모습도 보였다. 라운드 인터뷰 마지막 시간대였던 탓에, 예정된 시간을 조금 더 넘겨 진행될 수 있었다.
최근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도 출연한 고준. 기안84에 버금가는 기행(?)을 펼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인터뷰에서 봤던 그 '날 것의 매력'에 함께 빠져 즐기게 된 것이 기쁘다.
영화 감독 셀린송 '패스트 라이브즈' 인터뷰 "작품에 대한 정성어린 설명에 N차 관람욕구도 절로 생겨"
셀린송 감독을 삼청동에서 만났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셀린송 감독이었다. '넘버 3'을 만든 송능한 감독의 딸이면서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 가서 겪어온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그는 한국말이 매끄럽지 않았다. 약간의 선입견으로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려니 생각했지만 인터뷰 내내 짧은 한국어였지만 최대한 정확한 의미의 단어를 선택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감동했다. 영화 감독들은 시나리오도 직접 쓰는 경우가 많기에 영화속 대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을 것. 영화를 설명하는 단어를 고르는데도 고심하는데 대사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작품의 장면마다 심지어 바람의 방향과 그 바람으로 흩날리는 치맛자락의 흐름까지 의미를 부여해 촬영했다는 설명에 이 감독이 얼마나 자기 작품에 깊은 애정과 영혼을 담았는지가 느껴지더라. 많은 감독을 만나왔지만 자기가 만든 작품에 들인 정성과 애정을 이렇게 잘 전달하는 감독은 처음이었다. 감독의 태도 때문에 내가 그냥 넘겼던 장면도 다시 곱씹게 되고, 감독의 자세한 설명 덕에 영화를 몇 번 더 보면서 장면 속 숨은 의도와 메시지를 찾아보게 되더라. 몇 시간이고 가능하다면 더 영화에 대해,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배우 탕웨이 영화 '원더랜드' 인터뷰 "러블리의 의인화, 인간 탕웨이에게로 한 발짝"
남편 김태용 감독의 영화 '원더랜드'로 오랜만에 부부가 작업을 한 탕웨이다. 2년 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출연하고 국내외 영화제에 참여하며 여러차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탕웨이였다. 하지만 매 번 중국인 통역사를 대동한 순차 통역 탓에 그녀에게 할당된 발언 시간은 국내 배우보다 훨씬 짧았고 그래서 그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탕웨이에 대해 '우리나라 감독과 결혼까지 했고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한국말이 이렇게 서툴수가 있나?'며 서운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더랜드'를 통해 만난 탕웨이는 까칠했던 시선을 단박에 지워내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도 탕웨이는 자신이 하는 말이 정확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통역되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며 자기가 예를 든 말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 게 좋을지를 통역사와 함께 상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단어의 사용에 따라, 뉘앙스에 따라 분위기가 좋았을 때 했던 말도 활자로 바뀌면 곡해될 수 있고 오해 받을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아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몇 배 더 신경써서 표현하려 했다.
그녀의 노력 속에는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조화로운 배려와 설명을 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에 대한 한국 대중의 정서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인간이자 여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소탈하고 유머러스하게 드러내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에 긍정적인 호기심과 애정이 많은 외국인의 시선도 숨기지 않는 탕웨이였다. '색,계' '만추' 때 만큼 매끄럽고 젊지 않았지만 흐릿하게 주름이 보이는 얼굴인데도 '아름답다,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탕웨이. 이런 사람이라면 그를 통해 우리 문화를 중국에 전달하는 것도, 그를 통해 중국의 문화를 엿보는 것도 거부감이 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쁘고 똑똑하고 유머러스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다 갖춘 사람이었다.
iMBC연예 김경희, 이호영, 장다희, 백승훈 | 사진 iMBC연예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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