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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의 제왕' 김갑수, '장수배우'로 길이 남을 '단명배우' [인터뷰M]

기사입력2024-04-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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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갑수가 '눈물의 여왕'을 통해 또 한 번 엄청난 파급력을 과시했다. '단명배우'라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보물이다. 경력, 나이, 권위, 사욕은 제쳐두고 작품의 극적 효과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다. 배우는 작품의 도구로 쓰인다는 진리에 순응할 줄 알기에 '명배우'라는 표현이 걸맞다.

iMBC 연예뉴스 사진

김갑수는 최근 iMBC연예와 만나 '눈물의 여왕(극본 박지은·연출 장영우)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눈물의 여왕'은 퀸즈 그룹 재벌 3세이자 백화점의 여왕 홍해인(김지원 분)과 용두리 이장 아들이자 슈퍼마켓 왕자 백현우(김수현 분), 3년 차 부부의 아찔한 위기와 기적처럼 다시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다.

극중 김갑수는 퀸즈그룹의 회장 홍만대를 연기했다. 최고 권위자다운 냉철함과 단호함, 말미에는 유일하게 의지했던 모슬희(이미숙 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고 느끼는 복잡다단한 심경까지. 김갑수의 열연은 시청자의 몰입을 도왔고, 작품 전체의 밀도를 높였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김갑수는 1977년 극단 현대극장 1기로 데뷔해 40년 이상 활동한 노장이다. 젊은 시절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지만, 비교적 어린 연령층 시청자들에게는 '빨리 죽는 배우'로 더욱 익숙하다. 작중 숱하게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 그는 이번 '눈물의 여왕'에서도 어김없이 단명했다. 이와 관련 김갑수는 iMBC연예에 "마지막을 연기할 때 죽음을 선택할지, 살아서 해결하는 것을 선택할지 고민이 많으셨을 것이다. 작가님이 죽음을 택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라고 말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작품 전체 흐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배우 본인의 입장만 살폈을 때엔 분명 속상할 법한 일이다. 김갑수는 "때론 주변에서 '이번에는 안 돌아가시냐' 묻더라. '안 죽는다'고 하면 섭섭해하더라. 내가 죽어야 사람들이 뭔가 시원해하더라. 묘한 상황이지 않나. 심지어는 이게 콘셉트이자 이미지가 되어 맥주CF에서도 죽는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에 '단명배우'라고 누군가 수식어를 붙였다. 처음에는 기분 나빴다. 하필이면 단명이라니. 하지만 이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내 역할인 것 아니겠나"라고 전했다. 그의 말대로 극중 주요 역할의 죽음은 작품의 환기구 역할을 한다. 반환점이 되거나 때로는 극적인 효과를 줘 몰입도를 높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갑수는 나무보단 숲을, 제 욕심보단 전체의 흥행을 위해 도구로 쓰이길 자처하는 셈이다.

배우 외길 47년, 모순되게도 단명 배우를 자처했더니 장수 배우로 자리 잡았다. 아집을 버리고, 주어진 바 사력을 다하니 절로 명예와 일감이 따라온 셈이다. 그렇다고 허투루 마구잡이 죽음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는 "시청자가 판단하는 거다. 보는 이들마다 시선이 다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죽기 직전 그 인물의 감정이다. 그 심정이 어떨까 싶다. 대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죽음을 맞이할지 상상하고 몰입해 본다"고 귀띔했다.

노장의 노련함은 후배들을 아우르는 태도에서도 빛을 발한다. 김갑수는 꼰대가 아니다. 보상심리를 버리고, 악습을 끊어내려 노력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내가 출연한 현장은 다 재밌다. 권위적인 거 싫어한다. 아무리 나이 어리고 작은 역할을 하는 배우도 배우다. 다 지기 연기 세계가 있는 법이다. 연기를 했는데 이 상황과 맞지 않거나, 틀렸으면 연출진이 말해야 한다. 그 외에는 이야기하는 거 아니다. 다 개성이 짙은 게 바로 배우다. 우는 연기가 다 똑같으면 그게 재미다.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있는 모양새다. 너무 현장에서 지적하고 참견하면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확신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그가 연기를 배우던 팍팍한 시절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됐다. 이러한 환경에 녹아들어 순리대로 따르는 것 역시 그가 지향하는 자세다. 김갑수는 " 내가 그리 살았다고 똑같이 생활하지 않는다. 난 깨버렸다. 촬영 현장은 굉장히 디테일하고 스트레스가 크고 예민한 곳이다. 조그만 소리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대사 하나에도 곤두선다. 고압적인 분위기가 팽팽한 장소인 셈이다. 쉬는 시간에라도 다 잊어버리고 농담하고 장난치자는 게 나의 마인드다. 하루종일 긴장할 수는 없는 셈이다. 그런 걸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장면 연기 딱 끝나면 재밌게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월권은 자제한다. 연출진의 권한은 연출진의 권한이며 까마득 후배라도 나름의 연기 철학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그다. 김갑수는 "이제 막 시작하는 후배들은 나에게 '작품 보면 딱 나오시죠?'라고 하더라. 뭐가 나오나. 난 너하고 똑같다고 한다. 그 누구도 경험자는 없다. 똑같이 대사를 외우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며 "사실은 연기자 입장에서는 전체 작품 중 내가 나오는 부분을 보면 된다. 내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그걸 내가 다 알아서 뭐 하겠나. 몰라야 한다. 그걸 다 알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집중해서 내 상황과 인물의 엑기스를 확실히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기자에게 연기는 회사원에게 업무나 다름없다. 감정 소모가 엄청난 일이기에 심신을 달래기 위한 명료한 분리도 필수다. 47년의 노련함은 이럴 때 발휘된다고. 김갑수는 "난 그냥 그 순간은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에는 집중하고 파고들었다. 빠져나오는 것도 참 오래 걸렸다. 마치 그 인물이된 것처럼. 그 순간엔 사실이지만, 연기일 뿐인 거다. 컷소리가 나오면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더라.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나도 언젠가 그럴 때가 있었다. 연기를 못하겠더라. 너무 감정 소모가 크니까 힘들더라.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내 감정도 다스리지 못하는 인생에서 극중 허구의 인물을 이렇게까지 표현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버렸다. 몸과 마음이 지친 순간이었나 보다. 참 묘하게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고 전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그 와중 책임감은 끝까지 손아귀에 쥐고 간다. 김갑수는 늘 시청률을 살피고, 전체의 분위기를 고려한다고. 이유를 물으니 "책임감이다. 그래도 내가 이 작품에 일조를 했으니까. 주인공이든 아니든. 내가 참여한 작품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작품은 괜찮은데 시청률 별로면 정말 속상하더라. '사람들은 대체 뭘 보는 거야'라면서 분위기를 풀어준다. 재밌다 싶으면 문자를 돌린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욕심은 없다. 어릴 때에는 액션, 근엄한 왕 등 욕심을 냈다. 다 지나가니까 그런 욕심은 없다. 1년에 한편씩 꾸준히 좋은 작품을 즐거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며 "이순재, 신구 선생님처럼 오래오래 연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대사가 잘 외워질지 모르겠다. 제일 문제는 그거다. 갈수록 젊었을 때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갑수는 드라마 '원효대사'를 시작으로 '이차돈' '미늘' '적색시대' '태조왕건' '무인시대' '회전목마' '영웅시대' '해신' '토지' '부활' '맨발의 청춘' '연개소문' '연애시대' '개와 늑대의 시간' '밤이면 밤마다' '대왕세종' '추노' '타짜' '그들이 사는 세상' '파트너' '아이리스' '신데렐라 언니' '성균관 스캔들' '전우치' '최고다이순신' '하녀들' '블러드' '미스터션샤인' '슬기로운의사생활' '스위트홈' '지리산', 영화 '금홍아금홍아' '번지점프를 하다' '장화홍련' '똥개' '돌려차기' '잠복근무' '태풍' '악마를보았다' '공범' '강철비'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iMBC 이호영 | 사진출처 F&F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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