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봄'은 10.26 대통령 시해 사건 당일에서 시작된다. 보안사령관인 전두광이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되는 것에서 시작해 12.12 군사반란 당일까지 9시간여의 공방을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김성수 감독이 맨 처음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너무 역사적인 정황이 잘 묘사되어 있었단다. 너무 잘 쓰인 시나리오여서 오히려 반란군의 승리의 기록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고 멋지고 근사한 악당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그래서 처음에는 이 작품의 연출을 고사했단다.
그러나 그로부터 10개월 정도 지난 뒤 용기가 생겼단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하는 게 아니니 그들의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그들이 승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이들에게 어떻게 맞섰는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그들이 무슨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영화 속에 보이는 침을 질질 흘리는 늑대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역사에서 벌어진 또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대단한 지혜와 안목, 역량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욕망과 본능과 개인의 영달에 의해 즉흥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를 끝내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를 밝혔다.
김성수 감독에게 12.12는 굉장히 사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김 감독은 "이 사건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때도 주변에서 왜 이렇게 이 사건에 관심이 많냐고 했었는데 제가 그날 총소리를 듣고 장갑차를 봤다"며 고등학교 3학년 때 엄청난 총소리를 듣고 놀라 친구 집 옥상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기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그날의 일이 어떤 상황인지 알수도 없었고 꽤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만 안고 살다가 이후 정보가 공개된 이후 사실을 확인하고는 "어떻게 9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는지 의아했다."며 김 감독은 고3때부터 가져왔던 오랜 궁금증과 숙제를 이제야 해결한 것 같다며 속내를 밝혔다.

12.12를 다룬 영화니 만큼 12.12에 대한 감독의 개인적인 견해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김 감독은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로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그때 승리한 쿠테타이기 때문에 처벌받을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그 누구도 고백하지 않더라. 지금까지도 그렇다. 당시 그 분들은 다 천수를 누리고 아주 잘 사시다가 대부분 돌아가셨고 자기들끼리 제대로 떡고물을 나눠 먹었다."며 반란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러며 "하지만 그들이 의기투합해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간들이라고 절대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다 욕망 때문에 모인 사람들. 그래서 자기들끼리도 의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기에 서로 설득하며 욕망 제임을 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했고, 그걸 영화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너희들 사실 이랬지?'라고 묻고 싶고 관객들에게도 제 생각을 설득시키고 싶었다."며 '서울의 봄' 속에서 반란군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김성수 감독은 "반란군으로 불리는 신군부들의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이 있다. 끝까지 맞서 싸웠던, 진짜 군인들인 진압군을 부각하면 이들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제대로 알릴 수 있겠더라. 조금 전형적이긴 하겠지만 산과 악이라는 쉬운 대립 구도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신군부 반란 세력을 움직인 탐욕과 이들을 막아야 하는 진압군 세력의 명분의 싸움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역사적 사실이라는 큰 배경만 가져오고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은 상상으로 만들어내며 다큐가 아닌 영화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음을 알렸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실제와 다르다. 전두광, 노태건, 이태신, 정상호 등의 누군가가 떠오르는 허구의 이름을 극 중 인물의 이름으로 썼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 영화가 실명을 쓰며 오랜 법정싸움을 하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름을 바꾼 거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제가 나름 12.12 기록에 있어서 전문가라 생각했는데 너무 역사적 정황이 자세하다 보니 사실의 묘사에 발목이 잡히는 기분이 들더라. 저는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욕망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당시를 재현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름을 조금씩 바꾸고 나니 시나리오도 잘 써지고 더 재미있어지더라. 역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걸 포기하는 대신 창작의 자유로움을 얻었다."며 이유를 밝혔다.
사실의 고증에서 살짝 비껴가며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전두광과 이태신 두 남자의 팽팽한 대결이 보인다. 이태신이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을 향해가는 장면에 대해 김 감독은 "우리끼리도 많은 의견이 있었다. 전두광에게 주먹을 날려야 한다, 총을 쏴야 한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지금 보시는 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대통령의 이름들은 사실대로 써도 되는데도 노태건, 전두광으로 이름을 바꾼 건 이유가 있다. 영화 속 전두광의 시간은 12월 14일로 끝나기 때문에 이후 전두광도 전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고 뻔뻔하게 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전두광은 이태신이 와서 '군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자격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순간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승리의 기쁨을 그 순간 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그 인간이 화장실이라는 개인적인 배설의 공간에 와서야 '그래도 내가 이긴 건데'라고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웃는 순간 그 인간은 악마가 된 거라 생각했다. 우리 현대사회에 굉장한 문제를 일으킨 그 악당이 탄생한 날이 저는 12월 12일 그 밤이라 생각한다. 그 장면의 연출에 그런 제 해석이 가미되었다."며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모두가 소름 끼쳐할 장면을 설명했다.
자신만의 상상과 해석을 가미해 만든 영화이지만 영화의 엔딩에는 12.12의 신군부의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다시 현실 속 사실로 돌아온다. 김 감독은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도 상상 속 영화에서 다시 역사적 출발점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12.12를 검색하면 그 사진부터 나온다. 저도 그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게 그들의 승리의 기록이다. 아마 자랑스러워하며 찍었을 사진인데 제 영화에서는 그 반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의 패배자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엔딩을 만들었다."며 영화의 엔딩에 담은 의미를 밝혔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은 11월 22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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