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준익 감독은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화법으로 작품과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에 이어 두 번째로 흑백 영화에 도전했다. "'동주'때는 저예산 영화여서 흑백의 질감이 저렴하게 느껴졌을 것. 하지만 '동주'가 성과가 있어서 '자산어보'에도 과감하게 흑백으로 시도했다. 특히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만들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단 한번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라며 "흑백이라 색감이 없으니 질감으로 모든 디테일을 표현했다. 미술, 분장, 세트 등 전반에 걸쳐 질감을 살리기 위해 섬세하게 구현했다. 특히 자연의 환경을 담아내는데 신경을 썼다"라는 말로 흑백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컬러 영화 만큼이나 풍성한 느낌과 생동감이 드는 영상을 만들어 낸 비결을 밝혔다.
워낙 쟁쟁한 영화들을 만든 거장인데다 두 번째 흑백 영화인 만큼 노하우나 자신감이 있었을 것 같지만 이준익 감독은 의외로 "시작은 자신이 있었는데 찍다보니 소심해지더라."라는 고백을 했다. "영화의 흥행에서 망하면 불안감이 공포로 몰려오고, 그 다음 영화의 행보에 치명적인 굴곡을 겪는 걸 여러번 해 봐서 영화를 찍을때 마다 정말 괴롭고 힘들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생긴대로 산다고, 창작자의 기질이 있으니 눈 딱 감고 가는거다."라며 영화의 흥행여부에 따라 여러차례 마음 고생을 해 왔으며 그걸 감내하며 작품을 만들기에 매번 불안감을 보약삼아,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더 열심히 찍는다는 속내를 털어 놓는다.
매번 영화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이준익 감독은 "저의 바램을 구체화 하지 않은다. 바램을 구체화해서 된 적이 없다. 대부분 바램대로 안 되더라. 저의 바램보다 그 이상 훌륭한 영화로 남아서 '나는 그정도는 아닌데...' 싶기도 하고, 반대로 '이 정도는 아닌데. 너무하네...' 싶기도 하다."라며 영화의 흥행 성적표를 받아들이는 심난한 마음을 이야기 했다.
이렇게 아픈 속내를 드러내긴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자신만의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어떤 영화는 스코어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서 다른 영화가 범접할수 없는 자기만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동주'가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는 것 같고, 그래서 생긴 자신감이 있다. '자산어보'도 5년 뒤, 10년 뒤에 인정받고 자리를 잡는 그런 영화가 되면 좋겠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존 인물을 그려낸 사극이지만 '자산어보'는 소소한 섬 사람들의 이야기로 유쾌한 접근 방식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기존 사극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었고 그래서 감독의 연출이 더욱 돋보였던 대목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유쾌함이야 말로 관객과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유쾌함이 목적일수는 없다. 유쾌함을 수단으로해서 뭔가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부터 클라이막스를 가장 묵직하게 던지기 위해 수 많은 유쾌함을 가져오는 걸로 구조를 만들었다."라며 연출의 방향을 이야기했다.
수 많은 작품에서 '사건' 보다는 '사람'에 집중해온 이준익 감독이다. 정약도 있는데 왜 정약전을 선택했는지 '목민심서'도 있는데 왜 '자산어보'를 선택했는지 그만의 이유가 궁금했다. "보통 사극이라 하면 거대한 사건, 정치적 이슈나 전쟁, 영웅 이야기가 쉬운 접근법이다. 저도 그렇게 해봤는데 나이가 들고 영화를 찍을수록 사건보다 사연에 더 관심이 가더라. 그리고 가공된 설정보다 일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대에서는 로맨스나 드라마 같이 일상이 소소하게 표현되는게 많은데 왜 사극에서는 그런게 없을까? 그런 궁금증이 일었고, 사건보다 사연, 일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며 '자산어보'의 배경을 밝혔다.
이어 "5년쯤 전에 '서학'이라는 제목으로 천주교 신자의 박해에 대해 기획을 했었다. '자산어보'에서 아주 잠깐 등장하는 황서영의 토굴 이야기다. 그런데 황서영이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서 더 끌어낼 이야기가 없더라. 2시간 안에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는 인물을 찾다보니 정약전이 있었다. 더 많이 알려진 정약용과 '목민심서'가 있지만 그 책과 전혀 다른 의도로 쓰여진 책이 '자산어보'라는 걸 알게되서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선택하게 되었다"라며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기획 변경 과정을 이야기해 귀를 쫑긋하게 했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 이 기사를 읽는다면 영화의 장면들과 매치되어 이준익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재미있게 여겨질것이다. 정약전이나 [자산어보]가 약간 허들처럼 느껴질 관객도 있겠지만 이준익 감독의 이번 작품은 '강추'다. 흑백의 놀라운 풍성함을 스크린으로 꼭 느껴보시길 바란다.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자산어보'는 3월 31일 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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