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인재의 요람, 새라여자고등학교'의 붙박이 1등 고인혜가 학교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다. 사건 발생 며칠 전 고인혜는 같은 반 나애리와 중요한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가 발각되었는데, 당시 고인혜는 협박을 당한 피해자였다는 게 밝혀져 협박을 한 나애리만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고인혜가 투신 자살을 한 것이다. "1등 부담감이 너무 컸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고인혜와 나애리의 부정행위를 밝혀냈던 새라여자고등학교의 동아리 '추리반' 5인방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고인혜의 투신 현장과 친필 유서와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다 이미 죽은 고인혜의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오자 깜짝 놀라며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여기까지의 스토리만 본다면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과 드라마, 영화의 흔한 도입부라 할 수 있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예능'이라는 장르라면 달라진다. 잘 설계된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의도대로 사건을 풀어가는 명탐정 대신 '대본 없는' 연기자들이 예측불허 상황을 만나고 그때마다 저마다의 캐릭터로 반응하고 적응하고 해결하고 나아간다. 이 부분이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게 되는 하나의 포인트다. 그런 예측불허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린 아마도 '추리반' 5인방 박지윤, 장도연, 재재, 비비, 최예나 중 한두 사람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혼자 다 하는 셜록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는 못 되지만 1/n 역할은 할 것이다, 이들처럼.
고인혜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죽은 고인혜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인혜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는 이는 누구일까. 무기정학 처분 받은 후 사라진 나애리의 행방은? 고인혜를 포함하여 새라여고 최우등반 S반 아이들이 먹는 초록색 알약 '완두콩'은 무슨 약일까. 30년 전 이 학교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의 진실은? 얽히고설킨 이 수수께끼들을 '추리반' 5인방은 123% 케미로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지인 추천으로 주말에 14화까지 몰아 본 티빙의 미스터리 어드벤처 '여고추리반(정종연, 임수정 연출)', 사실 정종연 PD의 다른 작품 '더 지니어스' 시리즈나 '소사이어티 게임', '대탈출'을 보지 못해서 별 기대 없이 봤다가 깜짝 놀랐다. 너무 재밌어서. 아쉬운 점은 학교의 비밀이 좀 빨리 드러난 것인데 남은 15화, 16화에 다른 반전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 아쉬운 점은 가끔 너무 보란 듯이 단서들이 나열되어 있거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조력자들이 등장하는 것이지만, 그 정도는 있어야 16부작으로 끝낼 수 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수사의 순서와 방향을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논리적으로 단서들 꿰는 데 탁월한 박지윤, 큰 키와 긴 팔과 긴 다리를 장비처럼 사용하고 팀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도연, 놀라운 관찰력과 기억력과 응용력으로 결정적 순간에 퍼즐 맞추는 재재, 특급 친화력으로 박지윤과의 20살 거리를 20cm로 좁혀 5인방이 동급생이라는 설정을 왠지 납득시키는 최예나, 다 좋다. 특히 좀 다른 관점으로 단서를 보고 직관적으로 상황을 정리,추리하는 래퍼 탐정 비비의 발견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가족들과 TV 보다 어떤 장면에서 어머니는 "다음 대사는 이거다"라고, 여동생은 "다음 장면에 OO가 나타난다"라고 하면, 정말 그렇게 이어질 때가 많다. 어느새 우리는 TV 프로그램의 설정과 규칙과 한계를 너무 잘 알고 그 익숙함이 편해졌다. 그런데, 그래서, 이제 좀 깜짝 놀라고 싶다. TV가 그어놓은 선을 한 발짝 넘어보고 싶다. 예상 밖의 이야기, 예상 밖의 전개, 예상 밖의 캐릭터로 세상의 모든 의외성을 만나고 싶다. 이 '여고추리반'에서 살짝 보았다. OTT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여고추리반 시즌2' 가자.
iMBC연예 이연실 | 사진제공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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