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난 김혜윤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 속 은단오와 꼭 닮았다. 역할명 하나 없는 쪽대본 분량의 조연에서 촉망받는 신예로 주목받기까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 엑스트라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나아가 주인공이 되고자 발구르기 하는 모습이 말이다. 원동력을 묻자, 열등감을 꼽는 김혜윤은 전작 '스카이캐슬' 속 강예서와도 비슷하다.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채찍질해 바라는 바를 달성하는 모양이다.
Q. 뛰어난 성적으로 작품을 마친 소감 부탁한다.
A. '무사히' 잘 마쳤다고 표현하고 싶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나의 첫 주연 작품이라 부담이 컸다. 중심을 잡고 모든 역할들과 소통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책임감도 따른 작품이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잘 마쳤다.
Q. '무사히'라는 표현은 버거웠던 인상도 주는 말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A. 이전 작품들보다 확실히 분량이 방대하게 늘어났다. 근본적으로 체력관리가 정말 힘들더라. 잘 분배했어야 하는데, 중간에 지쳐버린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하나 배우고 간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더라. 체력적으로 지치니 관리를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작품에 임하기 전 연기를 위해 운동도 나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6개월 장기간을 주연으로 선봉장에 서기에 내가 부족한 건가 싶어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쓰러지기 싫더라.
또 있다. 원작의 부담도 컸다. 기존의 웹툰이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이고, 내용도 단순하지 않았다. 드라마로 변했을 때의 리스크가 따랐다. 초반에 제작진이 '원작과 내용이 다르니 보지 말라'더라. 헷갈릴 수 있다는 생각에 원작을 참고하지 않았다.
Q. 반대로 가장 흐뭇한 성과는?
A. 김혜윤의 인기가 높아졌다기보다는 은단오라는 캐릭터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게 가장 기쁘다. 흐뭇하더라. 뜻밖의 곳에서 기쁨을 얻기도 했다. 바로 '은단오 덕분에 활력을 얻었다'는 반응이다. 본인의 삶이 피폐하다고 느끼던 와중 '어쩌다' 은단오를 발견해 응원받았다더라.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게 감사하다.
개인적으로는 애교를 배웠다는 게 참 기쁘다. 전작 강예서 역할이 워낙 애교 없는 성격이라, 이번에는 차이를 줬다. 그게 그대로 김혜윤에게도 번졌나 보다. 말투에 애교가 조금 묻어난다더라. 부모님이 최근 육 개월 만에 만났는데 부담스러워하시더라.(웃음) 또 있다. 작품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이전에는 나의 역할 밖에는 살피지 못했지만, 이제는 작품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려 애쓴다.
Q. 시청자가 은단오의 에너지에 매료된 만큼 연기한 본인도 배운 점이 있을 텐데?
A. 공감했고, 평소 내 신념에 대한 확신을 얻고, 또 한 번 배웠다. 누구나 다 본인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현실은 조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철석같이 믿고 살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 은단오는 포기하지 않는다. 주체적으로 바꿔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그랬다. 엑스트라 시절이 있었다. 지지 않고, 긍정했다. 눈 앞에 작은 욕심 하나씩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사 한 줄, 역할명, 설정 등 사소한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노력했다. '스카이캐슬'을 만났고, 이어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만났다.
Q. 은단오 연기가 칭찬받은 가장 큰 이유는 1인3역에 가까운 완급조절이었다.
A. 스테이지(만화 속 세계)의 조연 은단오, 쉐도우(현실)의 은단오, 능소화의 사극 연기까지 해야 했다. 내가 헷갈리면 보는 사람들까지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중심 잡았다. 일부러 다르게 연기하려 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시대적 상황이 다르고, 내 앞에 놓인 사람들이 다를 뿐 어차피 한 인물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Q. 야무지게 바라는바를 얻어내는 모습이 '스카이캐슬' 강예서와도 흡사하다.
A. 은단오도 강예서도 김혜윤 안에서 만들어낸 인물들이라 교집합이 분명 있을 것이다. 두 인물 모두 짜증스러운 모습이 있다. 평소 내가 짜증 내듯이 자연스럽게 연기했다.(웃음) 사실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내는 짜증의 톤(?)은 강예서와 더 비슷한 게 사실이다. 은단오는 투정에 가까운 짜증 아닌가. 과장이 있지만 강예서가 더욱 실제 성격에 가깝다.
Q. 로운, 이재욱과의 로맨스 호흡이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장 분위기는?
A. 로운과 이재욱 모두 첫 만남 대본 리딩 당시부터 호흡이 잘 맞는 걸 느꼈다. 만나 인사 나눈 뒤 바로 대사를 주고받는데도 '티키타카'가 오고 가더라. 워낙 철저히들 자신의 역할에 빠져 현장에 온 것이다. 나이 또래가 비슷한 배우들이라는 점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소통이 더욱 수월할 수박에 없지 않나. 서로 바라는 행동이나 설정이 있으면 바로바로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간 작품이다.
Q. 로운, 이재욱 모두 키 190cm에 가까운 장신이다. 어려움 없었나?
A. 아주 힘들었다.(웃음) 그 키들이 흔한 키는 아니지 않나? 지나가다 마주쳐도 한번 더 돌아보는 키다. 초반에는 두 사람이 적응이 안됐다.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오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너무 늘어나 놀라기도 했다. 상자를 항상 밟고 올라서고, 상대는 매너다리를 해야 하는 수고가 따랐다. 미안하기까지 하더라. 나 때문에 낮은 굽의 구두를 신기도 했다. 고개가 아프고 목도 뻐근해지더라.(웃음) 다행히 나와 상대 역할들이 키 차이가 많이 나는 것에 많이들 '설렘'을 느끼시더라.
Q. 로운, 이재욱은 어떤 배우였나?
A.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 아주 좋은 상대 배우들이었다. 본받을 점이 많다. 가장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많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체력도 나보다 좋더라. 두 사람 모두 지치지 않고 나를 격려했다. 정확히 말해 지쳤지만, 내색 않고 주변을 살핀 배우들이다. 성숙한 배우들이다.
Q. 좋은 자극이 됐다는 말인가?
A. 누구에게나 배울 점을 찾는 편이다. 분명 배울점이 다들 있다.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다르게 말하면 열등을 느꼈다. 항상 난 타인에게 열등을 느끼고,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버리고 싶은 열등은 아니다. 이게 내 성격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남들이 앞서는 것을 보면 욕심난다. 스스로에게 너무 각박한 잣대를 들이미는 게 아니냐고 걱정들을 하실 정도지만, 이로 인해 얻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지키고 싶다.
Q. 그렇게 독하게 세운 다음 계획은 뭔가.
A. 교복을 벗고 싶다. 성인 연기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 나이에 맞는 스물 세 살을 연기해보고 싶어졌다. 더 나이 많은 역할은 아직 그려지지 않는다. 대학생 역할이 욕심난다.
Q. '스카이캐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로 연타를 쳤다. 올해의 김혜윤을 표현하고, 내년의 김혜윤을 그려보자면?
'스카이캐슬' 오디션 당시 나름 연기의 지침을 겪었다. 막연하고, 정해진 일이 없어 불안하던 때다. 배우일지를 매일 쓰면서 하루 한편 영화를 찾아봤다. 어느새 돌아보니 작품에 투입됐고, 더 나아진 김혜윤이 있었다. 이후 기운이 이어져 '어쩌다 발견한 하루'와 만난 것이다. 작품에 몰입해 잠시 지친 심신을 달래고, 더욱 힘내 앞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돌아보니 '한여름밤에 꿈' 같은 한 해를 보냈다. 내년에는 꿈 아닌 현실, 진짜 내 걸로 만들어 더 자라나겠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제공=sidus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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