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드라마에 대한 리뷰는 ‘요즘 <***>라는 드라마가 화제다’라는 말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시작하지 못하겠다. <태양을 삼켜라>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수목드라마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화제는커녕 보기 싫다, 재미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들을 보면 이런 현상도 이해가 된다. KBS <파트너>는 내용적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법정드라마는 한국에서 안 된다’는 법칙을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으며, MBC의 <혼>은 이제 막 출사표를 던졌을 뿐이다. 이 시점에서 <태양을 삼켜라>가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일종의 어부지리인 셈이다. 드라마 시청자들이 40대 이상 남자들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다.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안 되냐고? 천만에. 이 드라마는 단지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일 뿐이다.
<태양을 삼켜라>에는 ‘특별기획’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어 있다. 그에 걸맞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인>의 제작진들이 다시 뭉쳤다는 홍보 문구도 있고, <태양의 서커스> 본 무대를 처음으로 직접 촬영했다거나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 아프리카 올 로케이션을 감행했다는 보도자료도 보인다. 1회 전에 방영된 <태양을 삼켜라 스페셜>에는 이 모든 ‘대작지향적인 것’에 대한 자화자찬이 가득했다. “진짜로 돈을 많이 썼어요!”라거나 “진짜로 고생했어요!”라거나 “이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우와!” 같은 뉘앙스였다. 내가 삐뚤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걸 보면서 나는 ‘이 드라마 좀 보고 싶은데?’보다는 ‘제발 그만 좀 징징거려라’ 따위의 생각만 들었다. 가뜩이나 왜 드라마 방영 전에 ‘스페셜’ 따위를 방영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서 그랬나.
아니다, <태양을 삼켜라>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이유는 촌스럽기 때문이다. 촬영도 촌스럽고 이야기도 촌스럽다. 촌스러운 것도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고 진정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포장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촌스럽다.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이건 상식의 문제다. <태양을 삼켜라>의 기획의도는 ‘미니시리즈 기획이 표류하고 있다’로 시작된다. 곧이어 ‘대안은 강한 스토리’ ‘현대사의 상처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인물들의 사실감 있는 묘사’ 같은 문장들이 등장한다. 제작자는 ‘제주도민의 삶을 제대로 다루겠다’는 내용으로 인터뷰도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개연성도, 리얼리티도 심지어 볼거리도 부족하다. 1967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주도한 제주도 국토건설단에서 모티브‘만’ 빌려온 <태양을 삼켜라>는 국토건설단에 끌려온 깡패 아버지와 해녀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정우(지성)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다. 제주도 최고의 권세가 장 회장(전광렬)과 그의 아들 태혁(이완)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태혁 때문에 정우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수현(성유리)이 ‘태양의 서커스’의 멤버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다. 문장이 이상해도 이해하길 바란다. 이 이야기들 자체가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엮기보다는 따로 이야기하는 게 더 낫다.
실상 이 드라마는 구조 자체가 어설프다. 모든 걸 제 마음대로 하는 태혁은 왜 하필 정우에게 수현의 마음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는가. 정우는 왜 수현에게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바치는가. ‘태양의 서커스’와 <태양을 삼켜라>는 제목의 유사성 외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 장 회장은 정우의 친부인가. 그 비밀의 열쇠를 쥔 수창은 왜 7회에서 싱겁게 죽어버리는가. 제주도 동네 백수들이 어떻게 미국으로 밀입국하자마자 라스베이거스 VIP 경호원을 맡는가. 아프리카 풍경은 어째서 <동물의 왕국>보다 더 볼 게 없나. 스케일만 크면 시청자들이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을 줄 알았나. 그건 오만이 아닌가. 게시판만 좀 둘러봐도 소소한 칭찬 속에서 이런 불평들이 쏟아진다.
이제까지 <태양을 삼켜라>의 제작진은 끊임없이 <올인>을 언급했다. “<올인>의 성공을 재현하겠다”부터 “<올인>만큼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겠다”까지 <올인>이 <태양을 삼켜라>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 <올인> 역시 어설픈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올인>의 성공이 그야말로 시대적이었다는 사실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2003년은 충무로의 호황이 드라마 시장으로 유입되던 시기였다. <가을동화>가 퍼뜨린 한류 덕분에 드라마 시장이 글로벌해질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가능한 시기였고 덕분에 온갖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도 가능한 시기였다. 비자 제한 조치로 미국 여행도 그리 쉽지 않았으므로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안방에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본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게 된 이병헌이 TV에 출연한다는 화제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제주도가 드라마 주요 배경으로 소개된 영향도 있었다. 게다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 <로비스트>가 이미 <올인> 같은 구식 드라마의 실패를 증명했지만 <태양을 삼켜라>는 그 과정을 충실히 따른다. 이유가 뭘까. 과욕 때문이다. 노스탤지어 때문이다. 내용 없이 ‘가오’만 잡기 때문이다. 달라진 감수성에 대한 분석 없이 안일한 채로 머물기 때문이다. ‘미니시리즈의 위기’ 운운한 기획의도는 ‘요즘 것들은 말이야~’로 시작되는 안일한 계몽주의를 보는 것 같고, <태양을 삼켜라>를 보고 있으면 ‘내가 한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꼰대들의 레퍼토리를 듣는 기분이다. 그런 점에서 <태양을 삼켜라>야말로 진정한 남자 드라마다. 남자 드라마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 구태의연한 남성성이 지겨울 따름이다. 글 차우진 l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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