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의 직업을 뭐라 소개하면 좋을까.
그는 코미디언이고 작가이고, YG엔터테인먼트와는 크리에이터로 계약했다. 여타 개그맨들처럼 방송사 공채 개그맨 출신도 아니고, ‘SNL코리아’의 방송작가로 데뷔해 SNS에 올린 짧은 글들이 ‘유병재 명언’으로 화제가 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말하는대로’와 같은 명사 강연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무한도전’ 식스맨에도 도전했으나 안타깝게 떨어졌고, 이후에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눈치 많이 보는 캐릭터로 각종 예능에서 소비되다가 소극장에서 혼자 공연하는 토크콘서트인 ‘블랙코미디’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유병재는 방송가에서 예능인으로 쓰임을 받는 예능인이면서도, 스스로 판을 만들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이며, 누가 써주는 대본이 아니라 직접 쓴 대본으로 1시간 30분짜리 공연도 이끌 수 있는 작가이며 코미디언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요즘 유병재와 관련해서 제일 재미있는 공간은 유병재의 개인 인스타그램이다.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두줄 명언들(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 듣는 순간 기분 나쁜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 / 걱정거리를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다 없어지던데 등등)과는 달리 인스타그램은 유병재 혼자 만든 ‘재미’들은 아니다. 유병재의 팬들이 유병재에게 보내는 웃긴 사진과 메시지들을 유병재가 캡처해서 인스타그램에 공개한다. 일종의 ‘만만하면서도 편한 연예인’이라는 유병재 이미지를 한껏 활용해 귀여워하면서도 약올리고, 놀리는 각종 메시지들을 유병재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자기의 인스타그램 개그 소재로 활용한다.
거기다가 ‘유병재 그림 그리기’ 대회까지 열어서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의 그림을 받았다. 그림은 당연히 전혀 잘 그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개성과 얼마나 웃긴가, 소울이 있느냐가 평가 대상이다. 컴퓨터에 그림판이 있거나,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누구나 유병재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 어린애부터 그림 전문가, 게임 캐릭터를 만드는 초초초 전문가까지 모두 ‘유병재 그리기’에 참여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병재그리기대회를 검색하면 이 대회에 참여한 이들의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미 2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물론 그림들 중에 유병재를 만화책 미소년처럼 미화한 그림은 없다. 거의가 유병재의 ‘웃기고 슬픈’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그렸다. 다들 유병재를 놀리고 재미있어하는데, 그 대상자인 본인이 만든 판이기에 어떤 마음의 거리낌도 없이 즐겁게 놀릴 수 있는 것이다. 유병재 본인조차도 ‘발바닥에 그린 유병재 얼굴’을 자기 인스타그램에 재밌다며 올릴 정도다. 이 '유병재그리기대회'는 28일 저녁 9시 유튜브에서 품평회가 열릴 예정이다.
유병재가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조차도 유병재는 자신을 깎아내리며 매니저 형을 더 연예인화해서 웃음을 준다. 팬들 앞에서도 낯을 가리고, 매니저 형 없이는 옷가게도 못 가고, 혼자 밥도 못 먹는, ‘내성적인 사람 중에서도 왕중왕’이라는 유병재의 모습은 그가 SNS에서 유지해왔던 캐릭터와 동일시되며 연장선에서의 웃음을 준다.
사실, 유병재의 개그는 웃음 뒤에 씁쓸함을 동반한다. 그 씁쓸함이 그의 코미디를 ‘블랙 코미디’로 만드는 요소다. 다행히도 그가 놀리거나 비웃는 것은 항상 자기 자신이거나, 자기보다 힘이 센 권력자들이다. ‘말하는 대로’에서 조카와의 대화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치풍자’를 했던 것처럼 그의 정치풍자는 보통의 개그맨들의 그것처럼 정치인을 뭉뚱그리거나 추상화하지 않는다. 비판과 풍자, 조롱의 대상을 구체화하고 명확히 해서 웃음을 준다. ‘넌 나쁜 짓 했잖아. 넌 힘 쎄잖아, 넌 내가 놀린다고 크게 잘못되는 거 없잖아’ 싶은 힘 있는 대상이 그의 풍자 대상이다.
넷플릭스에 올라와있는 ‘유병재 블랙코미디’의 첫 장면은, 미래에서 온 우주복 입은 양현석이 ‘현재의 양현석-유병재의 YG엔터테인먼트 계약 장면’을 말리려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미래의 양현석은 ‘안돼, 계약하면 안돼’를 외치지만 그 계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책장에서는 ‘내 사업 망치기’와 같은 비즈니스 서적이 툭 떨어진다. 아마도 이 방송의 첫 장면도 유병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소속사 사장님과 본인, YG엔터테인먼트조차도 그의 풍자대상이다. 사실 그가 YG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서 회사와 얼마만큼의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는 미지수다. 딱히 YG에서 도움을 받은 것도 없어 보이고, YG 역시 유병재라는 크리에이터 덕분에 크게 이득이 된 것이 없어 보인다(최근 YG에서 만든 예능 프로그램들 중 유병재가 작가로 참여한 것은 ‘블랙코미디’외에 없다). 유튜브 유병재 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영상들 역시 별 다를 게 없다. “우리 집 고양이를 소개할게요”라며 고양이 5마리를 촬영하는데, 고양이들은 죄다 그의 소개와는 달리 행동한다. “얘는 개냥이에요”라는데 절대 옆으로 안 오는 고양이, “얘는 참 얌전해요”라고 소개하는데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고양이. 이 집에서 유병재 말을 듣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은 귀여운 고양이 사이에서 “이 집에서 제일 못생긴게 자기”라며 스스로를 놀리는 유병재의 농담만이 웃음을 준다.

유병재는 ‘무한도전’이 밀어준다거나, 어느 프로그램에서 크지 않았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치고 나갈 정도의 배포도 없고, 토크쇼에서 남의 말을 낚아채는 등의 기술이 없다. 다만 혼자서 1시간 정도 무대 위에서 스탠딩코미디를 할 수 있고 에세이를 모아서 '블랙코미디'라는 책 한권을 낼 수 있는 ‘작가’로서의 능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SNS를 통해 쏟아내고, 기꺼이 스스로 조롱의 대상이 되길 괘념치 않는 단단한 멘탈이 지금의 유병재를 만들었다. SNS와 유튜브로 스스로 판을 만들어 성장하는 유일무이한 크리에이터, 지금의 유병재다.
iMBC연예 김송희 | 사진 유병재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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